Analysis of information sources in references of the Wikipedia article "관구검" in Korean language version.
이는 魏가 公孫氏를 멸망시킨 다음 幽州刺史 毌丘儉을 보내어 고구려를 칠 때(244~245) 그 예하의 玄菟太守 王頎가 夫餘에 온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王頎가 夫餘에 들른 것은 高句麗 원정의 길에 올랐을 때가 아니라 그것이 완료된 후 回軍할 때의 일로 보는 설도 있다. 즉, 高句麗의 東川王을 北沃沮에까지 추격한 王頎는 間島 지방에서 瑚爾喀河(牧丹江) 유역으로 진군하여, 그 서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小白山系의 산맥을 넘어 夫餘가 자리잡고 있는 阿勒楚喀 평야를 거쳐 오늘날 撫順市가 있는 玄菟郡治로 개선, 歸陣하였다는 것이다. (池內宏, 「曹魏の東方經略」)그러나 王頎가 동북 滿洲의 密林 지대를 크게 迂廻, 夫餘를 거쳐 歸陣하였다는 데는 反論도 있어(和田淸,「魏の東方經略と扶餘城の問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參考文獻≫李基白·李基東 共著,『韓國史講座』(古代篇), 1982.池內宏, 「曹魏の東方經略」『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12, 1930.和田淸,「魏の東方經略と扶餘城の問題」『東洋學報』32卷 3號, 195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이는 魏가 公孫氏를 멸망시킨 다음 幽州刺史 毌丘儉을 보내어 고구려를 칠 때(244~245) 그 예하의 玄菟太守 王頎가 夫餘에 온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王頎가 夫餘에 들른 것은 高句麗 원정의 길에 올랐을 때가 아니라 그것이 완료된 후 回軍할 때의 일로 보는 설도 있다. 즉, 高句麗의 東川王을 北沃沮에까지 추격한 王頎는 間島 지방에서 瑚爾喀河(牧丹江) 유역으로 진군하여, 그 서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小白山系의 산맥을 넘어 夫餘가 자리잡고 있는 阿勒楚喀 평야를 거쳐 오늘날 撫順市가 있는 玄菟郡治로 개선, 歸陣하였다는 것이다. (池內宏, 「曹魏の東方經略」)그러나 王頎가 동북 滿洲의 密林 지대를 크게 迂廻, 夫餘를 거쳐 歸陣하였다는 데는 反論도 있어(和田淸,「魏の東方經略と扶餘城の問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參考文獻≫李基白·李基東 共著,『韓國史講座』(古代篇), 1982.池內宏, 「曹魏の東方經略」『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12, 1930.和田淸,「魏の東方經略と扶餘城の問題」『東洋學報』32卷 3號, 1950.[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