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of information sources in references of the Wikipedia article "금강반야바라밀경" in Korean language version.
금강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이후 금강경은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금강경오가해』가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게 한결같은 견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번역은 조선 세종 때 시작해 성종 대에 완성된 『금강경삼가해』를 꼽을 수 있으며, 세조 때 한계희, 노사신 등이 왕명을 받고 번역한 『금강경언해』와 『금강경육조언해』 등도 있다.
이후 한글로 번역된 금강경이 역사에서 다시 등장한 것은 1924년 용성 스님의 『상역과해금강경』으로 근대적 금강경 번역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이어 신소천 스님을 비롯해 권상로, 해안, 청담, 탄허, 광덕, 월운, 무비, 진오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이 금강경에 대한 해설서를 잇따라 썼다
동아시아에 금강경이 확산된 것은 402년 구마라집이 이를 번역하면서부터다. 이후 보리류지, 진체, 달마급다, 현장, 의정 스님 등에 의해 다양한 번역이 이뤄지고, 특히 선종에서 소의경전으로 간주되면서 금강경은 동아시아 최고의 경전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서기 150년 전후에 성립된 금강경은 그 원명의 뜻처럼 금강석과 같은 단단하고 완벽한 반야의 지혜로 모든 이원(二元)의 분별과 집착을 끊고 피안에 도달하는 경전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런 까닭에 금강경은 일찍이 인도의 아상가나 바수반두 등이 해설서를 쓰기도 했으며, 이후 금강경의 범어 원전 사본은 중국, 티베트, 일본 등에 전해졌다. 또 지금은 영어, 불어, 독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인들이 금강경을 읽고 있는 상황이다.
소의경전이란 종단의 근본경전을 말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다.
<금강경>을 독송하면 업장(業障)이 소멸된다는 말은 <금강경>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고(듣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지혜로워져서 업으로부터 해탈하게 된다는 뜻이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
“수보리야, 항하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항하가 있다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항하의 수만 하여도 셀 수 없이 많겠거늘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수보리야, 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이르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칠보로써 저 항하강 모래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가 얻는 복덕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이 복덕이 앞에서 말한 복덕보다 더 뛰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