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viets Groomed Kim Il-Sung for Leadership Vladivostok News, January 10, 2003 : The Soviet officer [Grigory Mekler] found out that Kim, who then commanded a Korean battalion, had borrowed his name from the previous commander. Kim's predecessor, highly respected by Korean guerrillas, was killed in action.
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 / 第5 討伐成果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20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 1로군 조직표에 나오는 X 표시가 된 이름은 사살되거나 투항한 사람을 뜻한다.
아래 책들에도 위와 동일한 동진공화국 조각 명단이 나온다.
송남헌(宋南憲, 1914-2001), 解放 三年史 1945 – 1948, (서울, 까치, 1985) p.39 古下宋鎭禹 傳記 독립을 향한 執念 (東亞日報 社, 1990년 5월) p.221
최영희(崔永禧, 1926-2005), 격동의 해방 3년,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6) p.6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2, (서울, 나남, 1996) 2권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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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per Becker, "Rogue Regime : Kim Jong Il and the Looming Threat of North Korea"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p.51 : As Kim's nom de guerre was widely associated with an older guerilla who had performed legendary feats, many suspected him of being a complete fraud, so the next step was to build up Kim's image. "We elevated him into the status of a hero to bolster his work as a leader of Korea," Vassin said. "We had to prove he was a real person, the tiger of Mt. Paektu. We had to find his relations at the village of Mangyoungdae. We also had to discredit the information put out in South Korea that he wasn't the real Kim Il Sung. We had to prove he was an active fighter who had liberated the motherland."
한재덕(韓載德), 金日成將軍 凱旋記 : 빗나는 革命家의 집Archived 2018년 8월 20일 - 웨이백 머신 p.84 - 『문화전선(文化戰線)』, 창간호,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 이듬해 간행된 한재덕의 저서 『金日成 將軍 凱旋記』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의 같은 글에는 김영환이란 가명을 썼다는 말이 삭제됨. 한재덕(韓載德), 김일성(金日成)을 고발(告発)한다 (27) 1962.06.01 동아일보 2면 [1959년 한국으로 귀순 후 쓴 글] 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시대정신, 2006.04.15) p.134.
(김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가짜 김일성 자유아시아 방송 RFA 2010-09-28 '김일성 항일투쟁 진위'공개토론 1989.08.15 한겨레신문 7면 : 서 교수는“‘김일성 가짜론’가운데는 4인설·3인설·2인설 등 여럿이 있는데 내 논문과 책들을자세히 읽을수록 결국 1인설에도달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金日成匪 討伐詳報」 만주국군(満州国軍) 기관지(機関誌) 월간(月刊) 『철심(鐵心)』 1937년 11월 15일號 (滿洲國 治安部 參謀司 調査課編) pp.70~75.
東邊道討匪行 / 從軍記者團 만주국군(満州国軍) 기관지(機関誌) 월간(月刊)『철심(鐵心)』1937년 5월호 (満州国治安部,治安部参謀司第二課 編) pp.98~114 : 제6사장 김일성은 모스크바 공산대학 출신으로 30세 미만의 청년이란 풍문이었다하며 동변도에서는 제일 큰 세력이라고도 적혀 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6권의 16장 5절 "소탕하에서의 일행천리"에도 이 기사를 인용하며 김일성이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나왔다고 한 것을 비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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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연구소 (2008). “"김일성"”.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21일에 확인함.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발행인= (도움말)
한재덕(韓載德), 金日成將軍 凱旋記 : 빗나는 革命家의 집Archived 2018년 8월 20일 - 웨이백 머신 p.84 - 『문화전선(文化戰線)』, 창간호,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 이듬해 간행된 한재덕의 저서 『金日成 將軍 凱旋記』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의 같은 글에는 김영환이란 가명을 썼다는 말이 삭제됨. 한재덕(韓載德), 김일성(金日成)을 고발(告発)한다 (27) 1962.06.01 동아일보 2면 [1959년 한국으로 귀순 후 쓴 글] 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시대정신, 2006.04.15) p.134.
한재덕(韓載德), 김일성 장군 개선기(金日成 將軍 凱旋記)Archived 2017년 8월 18일 - 웨이백 머신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 p.240 (부록 p.40)에 혜산사건 판결서 (惠山事件 判決書)를 번역 소개하면서 6사장 김일성 부대가 함흥 74연대 육군 소좌(少佐) 김인욱(金仁旭) 부대와 교전한 것으로 밝힘.
(김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가짜 김일성 자유아시아 방송 RFA 2010-09-28 '김일성 항일투쟁 진위'공개토론 1989.08.15 한겨레신문 7면 : 서 교수는“‘김일성 가짜론’가운데는 4인설·3인설·2인설 등 여럿이 있는데 내 논문과 책들을자세히 읽을수록 결국 1인설에도달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한재덕(韓載德), 金日成將軍 凱旋記 : 빗나는 革命家의 집Archived 2018년 8월 20일 - 웨이백 머신 p.84 - 『문화전선(文化戰線)』, 창간호, 북조선예술총연맹(北朝鮮藝術總聯盟) 1946.7.25 ; 이듬해 간행된 한재덕의 저서 『金日成 將軍 凱旋記』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의 같은 글에는 김영환이란 가명을 썼다는 말이 삭제됨. 한재덕(韓載德), 김일성(金日成)을 고발(告発)한다 (27) 1962.06.01 동아일보 2면 [1959년 한국으로 귀순 후 쓴 글] 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시대정신, 2006.04.15) p.134.
한재덕(韓載德), 김일성 장군 개선기(金日成 將軍 凱旋記)Archived 2017년 8월 18일 - 웨이백 머신 (平壤, 民主朝鮮出版社, 1947.11.20) p.240 (부록 p.40)에 혜산사건 판결서 (惠山事件 判決書)를 번역 소개하면서 6사장 김일성 부대가 함흥 74연대 육군 소좌(少佐) 김인욱(金仁旭) 부대와 교전한 것으로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