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무오사화 [戊午士禍]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은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에 따라 훈구 대신들이 권세가 높아지고 재산을 모으면서 부정부패와 폐단이 일어 성종 때 김종직(金宗直)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 정계로 진출하였다. 사림파는 3사(三司:司諫院 ·司憲府 ·弘文館)의 언론직(言論職) 및 사관직(史官職)을 차지하면서 훈구 대신의 비행을 폭로·규탄하고.(이하생략)
[네이버 지식백과] 사화 [士禍]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훈구파와 사림파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대립과 반목이 점점 심각해졌는데, 1498년(연산군 4) 두 파는 정면충돌을 하였으며, 그 결과 권력을 쥐고 있던 훈구파의 일격에 사림파는 패배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오사화 (조선왕조실록2, 2015. 7. 15., 이성무).....이극돈은 전라감사로 재임하던 시절에 세조비 정희왕후의 상을 당했는데, 이때 국장에 쓰일 향을 바치기는커녕 기생을 끼고 놀기에 바빴다.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모든 비리를 사관이었던 김일손이 사초에 낱낱이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