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종 23년(1441) 7월 23일 1번째 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원손을 낳아 대사면령을 내리다. ,[2] 세종 23년(1441) 7월 24일 1번째 기사. 왕세자빈 권씨가 졸하여 조례(弔禮)를 행하다
[3], 세종실록 세종23년(1441년) 4월을미(양력 5월 19일),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적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라는 측우기에 관한 첫 기술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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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아일보 1957년 2월 8일, 정부가 1957년 2월 제19차 국무회의에서 5월19일을 발명의 날로 정한 것은 문종이 측우기를 발명했다는 기술이 음력 4월29일(양력 5월19일)에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유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