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annica ] War of the Bavarian Succession........There was little fighting, because each force was concerned with cutting its opponent’s communications and denying it supplies. Hence contemporaries nicknamed the war the “potato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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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 바이에른 계승 전쟁.....프리드리히는 작센을 동맹자로 삼고 보헤미아로 진격해 황제가 직접 이끄는 신성 로마 제국 군대와 맞섰다. 양측은 서로 상대방의 통신과 보급을 차단하는 데 관심을 쏟았기 때문에 실제 전투는 거의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를 7세 [Charles VI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프랑스의 왕(재위 1422~1461). 잔다르크의 도움으로 대관식을 올렸으며 백년전쟁을 끝내고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중략)..백년전쟁이 끝나고 샤를 7세는 국가를 부흥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15개 기사 군단을 설치하여 약 6천 명의 상비군을 확보였으며 제후들이 사설 군대를 양성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1445년에는 기병대를, 1448년에는 보병대를 창설하여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7년 전쟁 - 18세기의 세계대전 (전쟁사, 함규진).....30년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독일의 여러 영방들이 각자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다. 유럽의 서부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동부에서는 러시아가 국가권력을 강화하며 국력을 한창 끌어모으고 있던 상황에서 중부 유럽은 ‘군웅할거’의 구심력 공백지대가 된 것이다. 자연히 이 지역 내부의 잦은 갈등에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개입과 세력 확장을 노린 동맹관계 형성이 이어지면서, 18세기 전반기의 유럽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점철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이센 왕국 (독일사, 2005. 4. 28., 권형진, 위키미디어 커먼즈).....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의 대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 1세(1649~1705)로부터 1701년에 프로이센의 왕위를 인정받게 되면서, 프리드리히 1세는 프로이센의 국왕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를 겸하게 되었다. 왕국이 된 프로이센을 유럽 열강의 대열로 진입시킨 인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1688~1740)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쟁 속에 성장한 감자 - 역사 속의 감자 (감자, 2004. 9. 17., 전수미)......유럽에서 감자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해준 계기는 바로 전쟁이다. 감자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통해 성장했고 전쟁의 역사를 따라 전세계로 전파되었다..(중략)...1778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의 전쟁은 감자전쟁으로 유명하다. 두 나라는 적의 주요 식량자원인 감자를 차단해서 병사들을 굶주리게 하는 작전으로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했다.
Gaston Bodart.Losses of life in modern wars, Austria-Hungary and France. Vernon Lyman Kellogg, trans. Oxford: Clarendon Press; London & New York: H. Milford, 1916, p. 37.
Carlyle, Thomas.History of Friedrich II of Prussia called Frederick the great: in eight volumes. Vol. VIII in The works of Thomas Carlyle in thirty volumes. London: Chapman and Hall, 1896–1899. p219.......Carlyle's more moderate estimate lies at about ten thousand Prussian and probably another ten thousand Austrian d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