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of information sources in references of the Wikipedia article "반야심경" in Korean language version.
‘심(心)’은 일반적으로 심장(心臟)으로 번역되는데,
보시]는 재시(財施) · 법시(法施) · 무외시(無畏施)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재시는 자비심으로서 다른 이에게 조건 없이 물건을 주는 것이고, 법시는 다른 사람에게 부처의 법을 말하여 선근(善根)을 자라게 하는 것이며, 무외시는 스스로 계를 지켜 남을 침해하지 않고 다른 이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 주는 것이다. ~~~ [지계]는 부처가 제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하여 설정해 놓은 법규를 지키고 범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여, 가지가지 선을 실천하고 모든 중생을 살찌게 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 첫째 복인(伏忍)으로,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주1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만 참아서는 안 되며,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주2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분노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 둘째 유순인(柔順忍)으로, 사람이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이 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 셋째 무생인(無生忍)으로,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이다. ~~~ 넷째 적멸인(寂滅忍)으로, 이것은 부처의 지위에 있어서의 인욕행이다. ~~~ [정진]은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항상 부지런히 닦아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다는 생각과 닦을 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정(精)은 순일무잡(純一無雜)을 의미하고 진(進)은 용맹무퇴를 말한다. 이 정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과 입으로써 부지런히 착한 일을 닦고 배우며 실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뜻을 항상 진리에 머무르게 하여 모든 생각이 착한 진리를 떠나지 않게 정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밖에도 사정진(事精進)과 이정진(理精進)이 있는데, 사정진은 세간사주3와 출세간사를 막론하고 그것을 한번 이루려고 결심하였으면 그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진은 악한 생각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서 여러 사람이 이롭고 나에게도 좋은 일이거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기어이 성취하도록 노력, 정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정]은 수행인이 반야의 지혜를 얻고 성불하기 위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며, 생각을 쉬는 것을 의미한다.~~~육바라밀 중 마지막의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라 하며, 다른 5바라밀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반야는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진옥스님 / 여수 석천사 주지 (“반야심경은 부처님의 오도송이거든요.
한글 반야심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조금 다른 관점에서 원자 속의 핵과 전자의 크기 관계와 거리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원자핵이 축구공이라고 가정하고 서울 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 놔 두자. 그러면 전자는 수원쯤에 떠다니는 먼지 한 알이다. 그리고 시청부터 수원까지를 반지름으로 하는 이 지역은 축구공과 먼지 한 알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원자의 대부분은 허공이다.
661년 후배였던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중국으로 바로 떠날 수 있는 황해의 당항성으로 향합니다. 날이 저물어 무덤 주변에서 잠을 자다 갈증을 느껴 주변에 있는 물을 아무 생각없이 달게 마십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다시 잠이 든 후 아침에 일어나보니 잠결에 마신 그 시원했던 물이 사실은 해골에 괴어 있는 썩은 물인 것을 알게 됩니다. 곧 구역질을 하게 되지만, 원효는 그 순간 깨달음을 얻습니다. 결국 해골 물이나 갈증을 해소했던 물이나 매한가지라는 것.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라는 이른바 ‘일체유심조’를 터득하게 됩니다.
유마거사는 문수보살의 문병을 받고 병이 든 이유를 설명했다. “아득히 먼 과거부터 생사를 거치면서 중생이 병들었기에 나도 따라서 병이 든 것입니다. 그러니 중생이 치유된다면 나도 따라서 치유될 것입니다. 만약 중생이 이 병과 고통을 벗어난다면 모든 보살들도 다시는 병이 없게 됩니다. 자식이 병들면 부모도 병들고 자식이 나으면 부모도 낫습니다. 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낫습니다.”
사리불 존자의 어머니는 슬하에 4남3녀를 두었는데 모두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장남이 되어서 동생들을 모두 출가하게 만든 존자에 대하여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이~~~남이 주는 밥찌꺼기나 먹는 자, 시큼한 쌀죽도 버리지 않고 먹는 자, 이상스런 사람들과 함께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국자 뒤나 할고 다니는 자여! 너는 이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팔십만 냥이나 되는 거대한 재산을 버렸단 말이냐? 너는 우리 집안을 아주 망쳐 버린 자다. 어서 이 음식이나 먹어라!”
백은이 앉아있던 아궁이가 꽤 좁았나 봅니다. 아니면 백은이 딴 생각 하느라 잊고 있었던 걸까요. 당시 그의 몸은 반 정도가 처마 밖으로 나가 있었습니다.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 백은의 반신이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반면 아궁이 앞쪽의 반신은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반은 젖고, 반은 마르고. 처음에 백은은 그걸 몰랐습니다. 뒤늦게 그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크게 깨쳤습니다.~~~=백은은 종횡무진 법문을 쏟아내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한 거사를 만났습니다. 그 거사가 백은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께서 정말 깨쳤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한 손만으로 소리를 내보시오!" ~~~ 그때 내가 한 손을 들면 어찌 될까요.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소리를 낼 수 없을까요. 맞습니다.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동생이 소리를 내고, 친구가 소리를 내고, 이웃이 소리를 내고, 자연이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소리가 실은 ‘나의 소리’가 됩니다. 그게 ‘불이(不二ㆍ둘이 아님)’에 담긴 놀라운 이치입니다.~~~깨달음을 얻은 백은 선사가 주석하는 절 아래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은 이가 있었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격노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대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버티고 버티던 처녀는 결국 “아이 아빠는 백은 선사”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당장 절로 찾아갔습니다. 백은 선사에게 삿대질하며 따졌습니다. “직접 키우라”며 아이를 절에다 맡기고 내려갔습니다. 그때 백은 선사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런가”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젖 동냥을 해서 아이를 키웠습니다. 1년이 흘렀습니다. 처녀는 자초지종을 고백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웃의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처녀 부모는 절로 찾아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그때도 백은 선사는 “아, 그런가”라고 대꾸할 뿐이었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다시 아이를 안고서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사리불의 어머니 이름이 사리(Sari)였고 그 아들(putra)이니까 사리푸트라가 된 것인데
『금강경』은 『반야경』의 앞부분에 속해 있으며, 『반야심경』은 뒷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이 두 경전은 600 권이나 되는 『반야경』의 핵심만을 간추려 요약한 경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반야심경』은 260자 (字)라는 짧은 글로 『반야경』의 사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금강경』은 『반야경』의 앞부분에 속해 있으며,『반야심경』은 뒷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에서 마음을 닦아 나가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해석해 본다면, “가는 이여!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가는 이여! 저 언덕으로 온전히 가는 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반야바라밀이란,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깊고도 수승한 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나[아(我)]라는 소견 가운데에 예순 두 가지 소견을 낱낱이 포섭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수보리야, 이 깊은 반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을 낱낱이 포섭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사람이 죽으면 명근(命根)이 없어지는 까닭에 다른 감각기관이 전부 따라서 없어짐과 같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모든 바라밀이 전부 따르는 것이다. 『대품반야경』 등학품 제 63 ~~~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을 지칭하는데, 마지막의반야바라밀은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육바라밀의 실천을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으로 마가다(magadha) 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컫는다.
금강경은 아상을 죽이는 가르침이며, 화엄경은 개성을 살리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