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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세사 연구자 박한제(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원 왕조의 대표적 도성인 장안성이 한족 고유의 전통에 호족[胡族]으로 불리던 선비민족의 정복에 의한 '호한체제(胡漢體制)'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호한체제'는 청말 학자 진인각도 주장한 것으로 저자가 중국 중세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독창적 용어로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도 주목받았다. 3세기 후한 말 이후 선비족이 중원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한족을 정복했고 수·당(隋唐)은 그 정복의 결과라는 이론이다. 당은 한족 국가로 알려졌지만 선비족 일파인 탁발족이 세운 국가이고, 수·당 황제들은 혈통으로 따져볼 때 70% 이상은 호족(胡族)의 피가 섞였다고 한다.
성명 양견(楊堅). 묘호 고조(高祖). 후한의 학자 ·정치가 양진(楊震)의 자손으로 서위(西魏) 12대 장군의 한 사람인 수국공(隋國公) 양충(楊忠)의 아들. 홍농화음(弘農華陰:陝西省 渭南縣) 사람이라고 자칭하나, 사실은 한인(漢人)이 아니고 선비족(鮮卑族)이거나 선비족과의 혼혈인 무장(武將)집안 출신인 듯하다.
서위(西魏) ·북주(北周) 시대에 활약한 이호(李虎)의 손자이다.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무장으로, 아버지 병(昞)이 일찍 죽자 7세 때 당국공(唐國公)의 작위를 이었다.
서위의 '호성재행' 시기에 당실 이(李)씨는 대야(大野)씨라는 호성(胡姓)으로사성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실 양씨(楊氏)도 보육여(普六茹)로 사성되었다. 대부분 중국 학자들은 그들이 한족 혹은 몰락 한족이라고 하지만, 그 자체가 본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한족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수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581-604). 이름은 양견(楊堅)이고, 묘호는 고조(高祖)다. 후한의 학자 양진(楊震)의 자손으로, 수국공(隋國公) 양충(楊忠)의 아들이다. 홍농(弘農) 화음(華陰) 사람이라 하는데, 한인(漢人)은 아니고 선비족이거나 선비족과의 혼혈인 무장 집안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는 한인(漢人)의 후예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가문에는 화북 지방 호족(胡族)의 피가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비족 계통이었던 그는 서위와 북주 때 당국공(唐國公)이 되어 활약한 이호의 손자다.
서위(西魏)와 북주(北周) 때 당국공(唐國公)이 되어 활약한 이호(李虎)의 손자다. 선비족 계통의 무장으로, 아버지 이병(李昞)이 일찍 죽자 7살 때 당국공 작위를 이었다.
중국 중세사 연구자 박한제(74)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원 왕조의 대표적 도성인 장안성이 한족 고유의 전통에 호족[胡族]으로 불리던 선비민족의 정복에 의한 '호한체제(胡漢體制)'적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호한체제'는 청말 학자 진인각도 주장한 것으로 저자가 중국 중세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독창적 용어로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도 주목받았다. 3세기 후한 말 이후 선비족이 중원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한족을 정복했고 수·당(隋唐)은 그 정복의 결과라는 이론이다. 당은 한족 국가로 알려졌지만 선비족 일파인 탁발족이 세운 국가이고, 수·당 황제들은 혈통으로 따져볼 때 70% 이상은 호족(胡族)의 피가 섞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