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백과] 김효원 [金孝元]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1574년(선조 7년) 이조정랑으로 있던 오건(吳健)이 자리를 옮기면서 김효원을 이조정랑으로 추천하여 천거되자 척신 윤원형의 문객(門客)이라는 이유로 심의겸(沈義謙)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결국 김효원은 이조정랑에 등용되었지만 이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심의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김효원의 후임으로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沈忠謙)이 이조정랑에 천거되자,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형제인 척신이라는 이유로 이를 강하게 배척하였으며 심의겸과 심충겸에게 인신공격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건저문제 [建儲問題]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이산해는 그 약속을 어기고, 선조가 특히 사랑했던 후궁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결탁하여, 인빈에게는 정철이 왕세자 책봉을 청하면서 인빈이 낳은 왕자인 신성군(信城君) 후(珝)를 죽이려 한다고 모함하였다. 인빈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선조는 크게 노하여 정철 등이 왕세자 책봉 문제를 건의하자 정철의 벼슬을 깎고, 윤두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백유성(白惟成)·유공진(柳拱辰) 등 서인을 모두 외직(外職)으로 쫓아버렸다. 동인은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으로 일어난 기축옥사(己丑獄事) 때 정철에게 원한을 품어, 건저문제를 서인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