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一曰閼川楊山村南今曇嚴寺長曰謁平初降于瓢嵓峯 是為及梁部李氏祖奴礼王九年置名及梁部夲朝太祖天福五年庚子改名中興部波潛東山彼上東村屬焉 ”(첫째는 알천양산촌이니 그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이다. 촌장을 알평이라 일컬으며 처음에 표암봉에 내려왔으니, 이가 곧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노례왕 9년(서기 32년)에 급량부라는 이름의 부(部)를 두었는데 본조(本朝)의 태조 천복(天福) 5년 경자년(庚子年, 940년)에 이름을 고쳐 중흥부(中興部)라 하였다. 파잠(波潛)·동산(東山)·피상(彼上)·동촌(東村)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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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 혁거세 거서간 條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이에 앞서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을 이루고 있었다.)
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 혁거세 거서간 條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 觜山珍支村 或云干珍村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 ” “첫째는 알천양산촌이고, 둘째는 돌산고허촌, 셋째는 취산진지촌 혹은 간진촌이라고도 하였다. 넷째는 무산대수촌, 다섯째는 금산가리촌,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인데,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一曰閼川楊山村南今曇嚴寺長曰謁平初降于瓢嵓峯 是為及梁部李氏祖奴礼王九年置名及梁部夲朝太祖天福五年庚子改名中興部波潛東山彼上東村屬焉 ”(첫째는 알천양산촌이니 그 남쪽은 지금의 담엄사이다. 촌장을 알평이라 일컬으며 처음에 표암봉에 내려왔으니, 이가 곧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노례왕 9년(서기 32년)에 급량부라는 이름의 부(部)를 두었는데 본조(本朝)의 태조 천복(天福) 5년 경자년(庚子年, 940년)에 이름을 고쳐 중흥부(中興部)라 하였다. 파잠(波潛)·동산(東山)·피상(彼上)·동촌(東村)이 여기에 속한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二曰 突山高墟村長曰蘇伐都利初降于兄山是為沙梁部梁 讀云道或作涿亦音道鄭氏祖今曰南山部仇良伐麻等烏道北迴徳等南村属焉称今曰者 太祖 所置也下例知”(둘째는 돌산고허촌이니 촌장을 소벌도리라 일컫으며, 처음에 형산에 내려왔으니 사도부‘梁’을 ‘도’로 읽는다. 또는 ‘涿’이라 쓰지만 역시 음(音)은 ‘도’이다.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 일컫는데 구량벌 · 마등오 · 도북· 회덕 등 남촌(南村)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은 ~라 일컫는다’고 하는 것은 태조가 설치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四曰觜山珎支村一作賔之又賔子又氷之長曰智伯虎初降于花山是爲夲彼部崔氏祖今曰通仙部柴巴等東南村屬焉”넷째는 취산진지촌빈지, 빈자 또는 영지라고도 한다이니, 촌장을 지백호라 일컫는다. 처음에 화산에 내려왔으니, 이는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통선부라 일컫는데, 시파(柴巴) 등 동남촌이 여기에 속한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三曰茂山大樹村長曰俱 一作仇禮馬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是為漸梁一作涿部又牟梁部孫氏之祖今云長福部朴谷村等西村屬焉”(셋째는 무산대수촌이니 촌장을 구례마(俱禮馬 또는 仇禮馬)라 일컫는다. 처음에 이산(伊山, 개비산(皆比山)이라고도 한다)에 내려왔으니 이는 점량부(漸梁部 또는 漸涿部)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장복부라 일컫는데, 박곡촌 등 서촌(西村)이 여기에 속한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五曰金山加里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長曰祗沱一作只他初降于明活山是爲漢歧部又作韓歧部裴氏祖今云加徳部上下西知乃兒等東村屬焉”(다섯째는 금산가리촌지금 금강산 백률사의 북쪽 산이다이니, 촌장을 기타지타라고도 한다라 일컫는다. 처음에 명활산으로 내려왔으니, 한기부(漢歧部 또는 韓歧部)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가덕부라 일컫는데, 상하서지 · 내아 등 동촌(東村)이 여기에 속한다.)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條 “六曰 明佸山 髙耶村 長曰 虎珎 初降于 金剛山 是爲習比部薛氏祖今臨川部 勿伊村 仍仇旀村 闕谷一作 葛谷 等東北村屬焉”(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인데, 촌장을 호진이라 일컫는다. 처음에 금강산으로 내려왔으니,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임천부인데, 물이촌 ·잉구미촌 · 궐곡갈곡이라고도 한다 등 동북촌(東北村)이 여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