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교육 (Korean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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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상훈 2013, 223쪽: "1940년대에는 모든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 교육이 금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의 자의식과 깊이 연관된 민속학은 우크라이나 전통문화에 접근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우크라이나 민속에 관한 일련의 주제들은 연구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막혀 있었다'" 안상훈 (2013년 6월). “우크라이나 민속학 동향에 관한 고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이후를 중심으로-”.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28 (2). (구독 필요). 
  • 안상훈 2013, 223쪽: "1991년 독립이후 우크라이나 민속학은 사회적 필요성과 함께 그리고 국가의 정책에 부응하며 발전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생 독립국인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가 고유의 문화적 자주성과 정체성 확보를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삼았고 새로운 국가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상실하고 역사의 분리, 단절을 경험했던 우크라이나 민속학계도 새로운 국가 건립을 위한 초석으로서 민족역사 창조와 문화유산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민속 연구자들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민족사 연구, 우크라이나 문화의 역사적 연구와 같은 주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안상훈 (2013년 6월). “우크라이나 민속학 동향에 관한 고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이후를 중심으로-”.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28 (2). (구독 필요). 
  • 안상훈 2013, 223쪽: "우크라이나 민속 연구자들은 과거 우크라이나 민속학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시대에 탄압받았던 민속학적 현상들에 대한 재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의 동질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민족문화에 관한 자료를 재발굴 하는 작업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안상훈 (2013년 6월). “우크라이나 민속학 동향에 관한 고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이후를 중심으로-”.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28 (2). (구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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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chula & Oleksii 2018, 32쪽: "On the eve of the perestroika processes, it has achieved the most significant results, namely: ensuring equal access to education; the growth of the network of secondary schools; an increase in the compulsory duration of general education (from 7 years to 8 years, up to 10 - 11 years of secondary school, from 3 years to 4 years of elementary school)" M. Ia. Kichula; K. B. Oleksii (2018년 10월 25일). “Ukrainian educational reforms: brief history review” (PDF). 《Science and Education a New Dimension. Pedagogy and Psychology》 (영어) 75 (181):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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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주 2022, 186쪽: "우선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서 실시된 교육정책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바로 이웃한 자카르파트 주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1717—1780) 치하에서 보통교육과 고등교육의 혜택을 받은 것43과 대조적으로, 북동 부코비나 일부 지역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했던 체르닙치 주 대부분은 소수민족어로 실시되는 보통교육을 도입하지 못했다.<sup44"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김병호 2023, 26쪽: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로마노프 왕조보다 상대적으로 발전된 민주적 정치체제를 보유했고, 중산층 위주의 시민사회 육성을 강조했다. 특히 시민들이 나서 절대왕정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등을 확산하려 했던 유럽의 분위기 속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민족주의 감정을 고양하고 자국의 언어와 문화를 교육하는데 힘쓸 수 있었다. 이후 러시아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동부보다는 서부에서 주로 나타난 것은 서부 사람들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유연한 제국주의 안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보존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김병호 (2023). “우크라이나의 잠재력 훼손 요인과 당면 과제: 역사 속 우크라이나의 부정적 유산 극복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42. 
  • 정영주 2022, 186쪽: "러시아제국이 통치한 체르닙치 주 일부지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계는 물론이고 몰도바계나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도 러시아어로만 가르쳤기 때문이다.45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제국에서 보통 교육 자체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김병호 2023, 26쪽: "이에 반해 로마노프 왕조는 정치단체나 결사의 설립을 금지하는 등 우크라 이나 동부에서 자치권을 크게 제한했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억압했다. 서부 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개별적인 민족 집단으로 인식됐지만 동부에서는 민족 적 자립보다는 러시아의 이류시민으로서 ‘소(小) 러시아주의(Little Russianism)’가 확산됐다.46)" 김병호 (2023). “우크라이나의 잠재력 훼손 요인과 당면 과제: 역사 속 우크라이나의 부정적 유산 극복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42. 
  • 김병호 2023, 26쪽: "동부에서 우크라이나어는 러시아어의 방언 정도로 취급돼 별도로 학습할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김병호 (2023). “우크라이나의 잠재력 훼손 요인과 당면 과제: 역사 속 우크라이나의 부정적 유산 극복을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42. 
  • 정영주 2022, 183쪽: "우크라이나사, 수학, 생 물학, 지리학, 물리학, 화학은 크림타타르어, 몰도바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로도 시험을 치를 수 있다.34 그러나 2011년과 2018년을 비교해 보면, 물리를 제외한 나머지 5과목은 루마니아어로 시험을 치르기 를 희망한 학생의 수가 줄었다.35 우크라이나 고등교육과정 중에서 루마니아어를 채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학수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초중고부 터 우크라이나어로 배우기를 희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우준모 2011, 279쪽: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지난 20년 간 우크라이나어의 보급 확대를 통해 인종적 민족주의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민의 통합적 정체성을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우준모 (2011년 1월). “우크라이나의 국가성 모색”. 《동서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3 (1). 
  • 우준모 2011, 279쪽: "이에 대하여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지속적으로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와 더불어 국가의 공식언어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준모 (2011년 1월). “우크라이나의 국가성 모색”. 《동서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23 (1). 
  • 정영주 2022: "우크라이나 중앙 및 지방 정부는 루마니아계 주민들과 교육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루마 니아어 출판과 방송을 지원하는 한편, 이들에게 우크라이나어를 가르치고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어 교과서를 출판하여 보급하고, 우크라이나어 교사들에게 연수 기회를 부여하며, 학생과 교사들에게 온라인 우크라이나어 학습과정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주 민들도 상당하여, 국어교육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루마니아계 주민들 일부는 국어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국어를 학습하여 대학에 진학하거나 특수교육을 받아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과반은 대학진학에 뜻이 없거나 우크라이나의 비전을 믿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우크라이나어를 습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정영주 2022: "2017년 체르닙치의 루마니아계 공동체는 이 지역에 우크라이나어 학교를 신설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정부에 요청했다. 우크라이나어 학교가 루마니아어 공동체의 모어로 소통할 권리를 훼손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41"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정영주 2022, 176쪽: "반면 그리스,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포함한 비(非)슬라 브계 주민들의 경우, 민족 본연의 언어와 문화는 우크라이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하지만 헝가리계, 루마니아계, 몰도바계 주민들처럼 같은 피와 언어, 역사,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와 이웃해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집단의 정체성을 때로는 유지하고 때로는 상실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의 정체성 또한 구축한다"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정영주 2022, 173쪽: "우크라이나 정부는 비슬라브계 국경 주민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비슬라브계인 이들은 러시아어 화자를 포함한 슬라브어 구사자들과 비교할 때 국어 이해도가 극도로 떨어지며, 그로 인해 더 많은 교육적,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은 러시아계 주민만큼 국가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영주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서부 체르닙치 주의 언어상황”. 《슬라브학보》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37 (1): 173-198. 
  • 홍석우 2024, 223쪽: "1993년 우크라이나는 ‘21세기 우크라이나 교육’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국가 전략 프로그램을 채택하게 되는데, 이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가의 역사와 민족 전통을 유기적으로 통합, 우크라이나 국민 문화를 보존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Ukrainian Government 1994: 7; Korostelina 2010: 131)" 홍석우 (2024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교육에 미친 영향과 미래 과제”. 《동유럽발칸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48 (1): 217-252. 
  • 홍석우 2024, 223쪽: "2006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립역사연구소를 설립하였는데, 이 연구 소는 민족 해방 운동, 1932~33년 대기근, 20세기 소비에트의 정치적 탄압에 특 별한 관심을 두고 우크라이나의 독립 과정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임무를 맡았다. 또한 본 연구소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 을 개발하고 역사 속 우크라이나 국민의 희생에 대해 강조했다. 이 연구소의 또 다른 중요한 임무는 역사 교과서 개발을 통제, 관리하는 것이었다" 홍석우 (2024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 교육에 미친 영향과 미래 과제”. 《동유럽발칸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48 (1): 21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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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진 2008, 292쪽: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한 삼국에 의한 분할이 진행되어가면서 이 지역은 합스부르그 왕정의 통치하에 들어갔고 갈리치아라는 지명은 일반화되었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08, 292쪽: "우크라이나 서부를 대표하는 갈리치아는 러시아의 영향력 내에 있었던 우크라이나 동부 지방과는 구별된다. 인종, 언어, 의식, 종교를 포함한 문화적, 사회 적, 정치적인 면에서 우크라이나의 동과 서는 이질적 성격을 가졌으며 동시에 주변국들과도 다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08, 294쪽: "1867년 오스트리아헌법은9) 이론적으로 모든 민족에게 권리의 평등을 명시 하였다. 그러나 원래의 이상과는 맞지 않게 다시 같은 해 우크라이나 중등교 설립을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수반되도록 의무조항이 추가되어 법으로 제정되었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08, 295쪽: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학교에 대한 제한적 처사로 우크라이나어를 모르거나 언어구사가 자유스럽지 못한 교사를 학교에 배치하기도 하였다. 이는 공식적으로 폴란드어를 통하여 당초 취지였던 학습어로서 우크라이나어를 대체하려는 궁극적 조처들이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08, 295쪽: "17세기 중후반까지 루테니아 출판의 약 1/3를 담당해오던 키에프는 1720년 이후 러시아가 여러 법령을 공포하며 제약을 가하면서 산업의 퇴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이미 인쇄된 동일한 텍스트 외엔 새로운 출판이 철저히 금지시켰기 때문인데 이러한 변화는 자연적으로 키이프정교구는 물론 체르니히프정교구 산하 출판사의 급격한 정체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08, 296쪽: "한편 14세기 이래 폴란드-리투아니아공국의 지배하에 놓였던 우크라이나 서안지역에서는 카톨릭 계열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 졌으며 특히 포차이브와 유니브지역 비쟌틴 바실리안수도원은 서부지역의 우크라이나어 출판 면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곳에서는 신실한 믿음에 대한 설법서만이 아니라 세속적 일반 서적의 발행도 허용되어 주민을 계몽시키는 한편 나아가 우크라이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극에 기여하였다" 최승진 (2008년 12월). “갈리치아 우크라이나 사회와 1860년대 이후 르비프의 우크라이나 언론”.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0 (2): 289-306.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1922년 연방공화국의 탄생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생활 전반에 변화를 겪게 된다. 의무교육이 실행되었으며 학술원이 설립되는 등 새로운 교육제도가 확립되었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또한 우크라이나어의 활성화를 위하여 실용적 측면과 문학적 표현 양식의 2가 지 측면에서 1921년 언어학 연구소를 설치하였다. 언어연구부가 교사양성소와 대학내 설치되어 새로운 철자법을 정립하고 학습을 위한 교과서와 참고서적을 편찬하였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9쪽: "스크리프닉(Скрипник)의 주도로 전 우크라이나 학술원에 대한 개혁이 시도, 조직은 한층 체계화되었으며 추구했던 학문적 방향 과 이상이 사회 전반에 걸친 우크라이나화에 일조하였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9쪽: "스포츠와 체육교육을 노동과 방위를 위한 준비단계로 중요시하고 단체를 형성, 일반 체력단련과 특수전문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실행해 나갔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러시아 정부는 날로 확장되어가는 우크라이나 도시에 러시아인은 물론 비러시아계 소수민족 이주민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사회주의 건설기간동안 우크라이나의 주요도시에는 약 3배에 달하는 인구로 증가했으며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행정, 산업, 무역, 교육 등에 배치시켜 러시아화를 가속화하였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3년 6월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18년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화를 비판하였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이런 상황의 발발과 몇가지 정책 등을 이유로 당 1서기 멜리코프 (Меліков)를 사임시키고 최초 우크라이나인 키리첸코 (Кириченко)를 앉히게 되었다. 하지만 제20차 당 대회가 결정한 탈스탈린정책도 민족정책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제10차 5개년 교육계획에는 10학년까지 중등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특 히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에 관한 수요를 감안한 점이 특이하다. 따라서 66년~76년 교육내용은 전면 조정되었고 학생들의 자발적 사고를 유발시키는 창 의력에 중심을 둔 새로운 교수법이 도입하였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최승진 2012, 338쪽: "키로보그라드 출신 수호믈린스키(Сухомлинський)의 교육적 견해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교육의 표본이 되었다. 교사이자 과학적인 교육과 연구활동을 공로로 소비에트 국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연방 학술원 교육 분야 정회원이었던 그는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 교육과 사회전반에 걸쳐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격체 양성, 교육이론, 교습기술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승진 (2012년 6월).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문화정책”. 《동유럽발칸학》 (한국중동부유럽학회) 14 (1): 335-354. (구독 필요). 
  • 김선 2017, 153쪽: "우크라이나는 2005년 볼로냐 프로세스에 참여 이후 학제 통합을 위한 광범위한 개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김선 (2017년 3월). “체제 변환기 러시아 및 동구권 국가들의 교육 개혁이 정책전이 논쟁에 주는 시사점: 볼로냐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비교교육연구》 (한국비교교육학회) 27 (1). (구독 필요). 
  • 김선 2017, 153쪽: "이 개혁의 가장 큰 영향은 교수중심의 교육에서 학생중심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과 교수들에게 연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요구한 것이나, 그 결과 교수들이 처리해야 할 업무만 과중해 졌을 뿐 이를 돕기 위한 실질적인 자원과 행정적 지원은 부족했다" 김선 (2017년 3월). “체제 변환기 러시아 및 동구권 국가들의 교육 개혁이 정책전이 논쟁에 주는 시사점: 볼로냐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비교교육연구》 (한국비교교육학회) 27 (1). (구독 필요). 
  • 김선 2017, 153쪽: "예컨대, 볼로냐 프로세스에 참여와 함께 중앙정부의 교육담당부서에서 하달된 논문실적 위주의 평가는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여 대학의 교원들이 연구의 질은 고려하지 않고 정량적 기준에 맞추는데 급급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선 (2017년 3월). “체제 변환기 러시아 및 동구권 국가들의 교육 개혁이 정책전이 논쟁에 주는 시사점: 볼로냐 프로세스를 중심으로”. 《비교교육연구》 (한국비교교육학회) 27 (1). (구독 필요).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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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석우 2022, 223쪽:
  • Тадеєва 2011, 276쪽: "Державний стандарт базової і повної середньої освіти (старшої школи), нові цілі і принципи організації сучасної шкільної іншомовної освіти відображають сучасні потреби українського суспільства на шляху до європейської інтеграці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