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of information sources in references of the Wikipedia article "조만식" in Korean language version.
소련 군정에서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이유 역시 그때문이었고, 소련군 당국은 그를 북한지역 최고지도자로 추대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는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 회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했었는데,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로 지내는 장규식이 분석한 바 있다. 장규식에 의하면 "고당은 신탁통치 문제를 일제하에 제기된 자치론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때문이며, 또 '동아일보'의 오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거 같다. 그래서 자치론에 대해 그랬듯이 신탁통치 주장을 독립을 유보하자는 주장으로 받아들이고, 일제강점기 시기 신간회 당시와 마찬가지로 비타협적 무저항의 시민불복종 노선을 걸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