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노컷뉴스 소속 기자 오대일이 찍었고 최진실에 대한 마녀사냥을 촉발시켰다. 이렇게 주저앉은 최진실에 대해 온갖 음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진 속 최진실은 친구남편(추후 사실혼 관계로 확인됨)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친구남편 사망에 쓰러지기까지 하는 최진실의 행동에 의심이 간다는 것으로 유언비어는 시작되었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렸지만 대한민국 사회(언론과 대중)는 그 자유와 권리 향유를 문제삼으로써 대한민국이 왜 유엔 개발 계획이나 세계 경제 포럼 등에서 측정하는 성평등 지수상 하위권 국가인지를 예로써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최진실이 마치 가해자인 양 최진실을 향해공격을 퍼부었다. 최진실 사망 후 발간된 책 중에도 피해자인 최진실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자 애쓰는 사람이 나옴으로써 대한민국 사회가 피해자의 인권에 얼마나 무지한 사회인지 보여주었다.
신동아 51권 11호(2008년 11월호), 발행일 2008년 11월 1일, 소장 국립중앙도서관,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팀 기자 kbs@joongang.co.kr, 388쪽 ~ 399쪽, 목차 '10년 전담 기자'가 털어놓은 최진실 비사:그토록 원망했던 '남편의 애인', 포장마차로 불러내 술 마시며 눈물//낙종한 기자들, 집에 초대해 식사 대접/'남편 애인'이 마담으로 있는 술집 찾아가 '행패' 부리기도/술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는 버릇/IMF 환란 때 자진해 '노 개런티' 광고 찍어/드라마 상대 남자역 직접 섭외할 정도로 연기에 열성/"일할 때 빼고는 늘 '불행하다'고 말해"
2004년12월 16일 기사에서 서병기는 피해자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어떤 자리에서건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소송을 당한 최진실의 심경이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자회견을 겸한 브리핑장에서 시종 눈물을 흘려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고 서술하며 그것을 문제삼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최진실은 폭행의 피해자였는데 그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광고주가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그것을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자신을 돕기 위해 연대한 25명의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을 서병기는 아니꼬워했던 셈이었다. 서병기는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이 CF를 찍어 이혼후 그 광고주로부터 피소당했다면 반남성적인 소송인가?"라고 서술하며 조성민이 폭력범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도 보였는데, 상식적으로 가해자 조성민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삼는 인권변호사는 없고 광고 모델이 위법행위의 가해자이면 피소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최진실도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분노한 것이고 최진실의 자택에 강도가 들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고 다양한 이유로 그 범죄 현장을 공개한 것이면 감히 광고주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해서 반여성적이라는 것인데, 진선미민변여성복지위원장과 신혜수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성운동계에서도 <신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최진실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사안에 대해 서병기는 젠더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드러내며 최진실과 최진실을 돕는 인권변호사들을 향해 비아냥대며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고 가해자 조성민의 공범으로 역할을 하였다. 서병기는 이 글에서 최진실의 기부 여부를 지적하며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을 유도하였는데, 일단 기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불합리함과 싸우는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논점 일탈적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가져와 최진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많다. 서병기는 "최진실은 10년 이상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방송과 CF, 영화 등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대중스타로서 그의 이미지는 검소를 몸소 실천하는 ’짠순이’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만 ’짠순이’였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돕는 데도 인색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았다. 최진실이 가정적으로 불행스런 상황에 빠져도 대중들이 동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그녀의 인색한 평소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도 서술하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예순 살에 혹은 일흔 살에 전 재산 대학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고 여론 조작으로 노년기도 못맞고 중년기에 사망한 최진실 무덤 앞에서 서병기는 이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서병기는 최진실의 인격을 공격함으로써 최진실의 의미있는 행동을 폄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서병기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상황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최진실 사망 후에도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 조성민은 여론 조작을 이어갔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2009년10월 6일 기사에서 김범석은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이 최진실에 대해 쓴 편지를 기사화했다. 이를 통해 김범석이 최진실 생전에도 전용철과 친분을 나눈 사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생전 전용철은 기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피해자 행세를 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배병수 사망 관련 교사범인 양 공격을 당했는데, 신동아 기자 조성식은 2008년 11월 25일 "‘독종기자’라는 소리를 듣던 나였지만, 옥중의 전씨한테서 들은 얘기를 차마 최씨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에게나 배씨에게나 명예스럽지 못한 불미스러운 소문인데다 전씨의 얘기도 전언(傳言)에 지나지 않았기에. 다만 최씨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던 또 다른 소문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생각을 밝히고 싶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전씨의 살해동기는 배씨에게 당한 인격적 모욕이었다. 그러나 구치소 접견실에서 전씨가 내게 ‘고백’한 중요한 살해 동기는 여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은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최씨가 아니었다. 전씨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제3의 여성이었다. 사건 초기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전씨가 밝힌 ‘진실’은 그랬다"라고 서술하였다. 2002년 12월에 조성민은 이 소문을 적절히 활용하며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펼쳤었다.
김범석은 전용철이 최진실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매체에 실었다.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5일과 광고주 신한의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을 향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재판 직후인 2009년 10월 6일이 그 날이다. 이 두 기사는 최진영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일에 해당되었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생전에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여론조작의 피해를 당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동생으로서 지켜봤을 최진영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전용철을 연관시키는 기사를 내놓았다는 것은 여론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에 대한 최진영의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범석은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고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에게나 쾌감을 줄 수 있을 뿐 누구에게도 유익함이 없는 행위로 최진실의 유가족만 고통 속에 빠뜨리는 행동이었다. 또 이건 미성년자들인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와 최진실의 딸 최준희도 죽여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나 진배없었다. 기자로서 전용철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생전에 어떤 여론조작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만한 입장에서 또 다른 여론조작으로 기어이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또 전용철을 언급하는 기사를 쓴 것은 최진영을 죽여보겠다는 행위나 진배없었고 실제로 최진영은 두 번째 기사가 나온 그 다음해 3월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12월에 과거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최진실의 숨통을 죄었던 조성민과, 김범석은 이런 식으로 서로 협력관계에 놓인 사이임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의 상고재판은 가해자 조성민의 폭력행위에 기인한 재판이었기에 최진영은 객관적으로 엄청난 분노의 감정 속에 있었을 상황이었다. 이는 보통의 대중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범석은 그런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세상이 계속 최진실이 교사범인 양 여기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는 것을 막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바였다. 더구나 2009년 8월에는 최진실 유골 도난 사건도 발생했었다. 요약을 하자면 최환희와 최준희는 김범석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들이 자신들의 어머니 사망 직후와 삼촌의 사망 직전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10월 15일 기사가 작성된 때는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이 최환희와 최준희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며 사기행위 피해자 최진영을 분노케 한 상황이었다. 이 때 김범석은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에게 힘이 되는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물론 김범석은 최진실 생전에도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입장에 섰었다. 더불어 김범석은 2008년 11월호 신동아에 원정까지 가면서 최진실을 조롱하는 일에 열정을 보였다. 이 또한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일에 해당되었다. 신동아도 타 매체 기자의 기사를 실어주고 더 나아가 표지에 제목을 크게 실어줄 만큼 김범석과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김범석이 신동아에 실은 기사의 표지 제목대로라면 최진실이 조성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은 줄 알겠으나 실정은 전혀 달랐으니 최진실은 2002년 12월부터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자리를 깔아 준 입장이었고 이에 조성민이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진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것은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은 1998년 12월에 조성민의 실체를 알았다면 이후 조성민이 아무리 '자살쇼'를 하며 자신에게 들러붙었어도 동정심을 갖지도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을 가치관을 가졌음을 드러낸 바 있는 인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조성민의 위법성을 인내심을 갖고 문제삼았을 뿐이었는데 김범석은 법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성민을 소거하는 절차를 차분히 밟고 있었는데 김범석은 그러고 살았던 것이다. 누구의 인생에서건 조성민 같은 인물이 알아서 떨어져나가주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식들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가주면 좋다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즉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은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대중을 앞에 두고 입증해 보였다. 신동아를 통해 김범석은 술집 마담의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도우며 자신의 정체성이 술집 마담의 손발임을 널리 알렸다. 김범석의 이런 행태는 최진영이 우습고 정옥숙이 우습고 최환희가 우습고 최준희가 우습고 대중이 우습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의 황호택의 노림수와도 통하는 것이었다. 황호택처럼 김범석도 조성민을 비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황호택은 피해자 최진실이 2005년에 가해자 조성민과 재혼할 생각이 없다고 자신에게 분명히 말했는데도2008년10월 10일에 자기 멋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재혼을 원했다고 칼럼에 썼다. 또 피해자 최진실이 2005년에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 최환희와 최준희가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면접교섭권을 가진 채권자임을 확인하는 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2008년 10월 10일에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김도형은 2004년 6월 25일 '상호비방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양비론을 펼쳤고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섰다. 조성민은 이걸 노리고 가정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떠들 이야기들을 기자들을 불러놓고 하였다고 봐도 무방한 바였다. 김도형은 조성민의 뜻대로 잘 움직여 준 셈이었다. 조성민이 펼친 여론조작에 대해 그 피해자 최진실이 언론 대응을 하며 방어권을 행사한 일은 김도형류에 의해 이렇게 매도되었고 이는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일이었던 셈이었다. 가해자와 한 패가 되어 움직이는 언론인들을 보며 피해자 최진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가족)을 상대로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를 저질렀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현재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를 이미 저지른 상태였고 그 각각에 대해 여론조작을 가동시켜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모는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도 추가되었다.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최진실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언론 대응을 했던 것이고 기자나 대중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를 제공했던 것이다.(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는 최진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법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혼은 합의이혼이거나 소송이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진실은 이혼 불가 입장을 표함으로써 합의이혼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그러므로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를 밟거나 못밟거나 둘 중 하나였다. 조성민은 후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여론조작범임을 입증했다. 사실 조성민이 가정법원은 못가고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한 행동 자체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즉 교차검증이 되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3년 10월에도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조작을 펼쳤었고 이에 대해 최진실은 2003년 12월에 배우 활동 복귀를 앞두고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를 빌어 이혼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확실히 하며 여론조작을 제압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후에도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 없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한 최진실에 대해서도 김도형은 '어정쩡'이라는 용어를 쓰며 여론조작을 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꼽다는 본인의 심경을 드러낸 바였고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한겨레라는 언론권력을 이용해서 압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안그러면 계속 '너를 후려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조성민만 비난하면 되는 상황에서 최진실의 직업활동을 물고늘어지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2004년 6월 기준으로, 조성민은 자신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떠든 이야기들을 가정법원 판사 앞에 가서 똑같이 하고 그 증거도 제시하면 이혼이 완료되는 바였다. 2004년 기준으로 최진실은 배우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길을 갔고 조성민도 피해자로 자칭한 본인의 길을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조성민이었고 두 달 후 2004년 8월 1일 최진실 자택을 찾아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이나 행사한 것이 조성민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의 궤변에 김도형류는 계속 힘을 실어주며 피해자 최진실의 숨통을 조여갔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김도형은 이에 대해 반성은 전혀 없고 2011년까지도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가는 모습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부류를 최진실이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인 바였다. 최진실 입장에 처한 누구라도 김도형류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여론조작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 여론조작의 중심에 선 조성민을 처리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신의 말이 허위이면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될 것이고 법정에서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형은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최진실이 2003년 12월 '지금은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중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따름이다. 최진실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없고 혹은 이해할 생각은 없고 비난은 하고 싶은 그런 본인의 심정을 드러낸 기사인지, 칼럼인지를 한겨레를 통해 썼고 이를 통해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 미끼를 던져 주었다. 김도형류는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를 계속 공격하며 여론조작범과 자신들이 공범임을 보여주었다. 같은 글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에 대해 갈 데까지 가는 공방을 벌인 최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다시 대중 활동에 나선 결과 시청자의 평가는 혹독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며 자의적 해석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기도 하였다. 2004년에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를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 탓으로 돌리는 이 악랄함이 결국 2008년 최진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통상 드라마의 시청률은 다양한 이유로 낮을 수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위법한 행위를 한 바 없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이었는데도 김도형은 최진실을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취급을 했던 것이다. 최진실은 위법한 행위를 하기는커녕 여론조작의 피해자였는데 김도형은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여론조작으로 최진실을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최진실이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모습이었다. 대중은 김도형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당신 말대로 최진실이 조성민을 부당하게 공격을 했는데 왜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김도형은 철저하게 가해자 조성민 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바였다. 최진실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떠들고 다닌 것이 조성민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조성민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조성민의 여론조작을 제압한 것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김도형은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Archived 2016년 6월 10일 - 웨이백 머신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배국남은 2016년 8월 4일 칼럼에서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고 썼다. 이는 최진실을 죽인 게 '스타 산업'이라는 논리였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겪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일에 최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최진실만 끌어들이기 그랬는지 배우 이은주도 같이 등판시켰다. 최진실은 연예 활동을 꾸준히 했던 인물로, 직업 활동 맥락이 정형돈과 달랐다. 최진실은 일찌감치 연예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타 산업'에 휘둘릴 객관적 상황도 짧았고 여론 조작이 유독 심하던 때에도 그에 개의치 않고 직업 활동을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썼던 혐오 세력들은 그런 최진실을 '잡초'라며 비아냥거렸었다. 즉 최진실에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이 최진실의 직업 활동을 방해했었다. 노년기에도 배우 활동을 하기를 원했던 최진실을 기어이 중년기에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존재들이었다. 최진실이 치열한 여론 조작의 터널을 뚫고 화려하게 배우 활동 복귀를 하였을 때 배국남이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를 보면 배국남이 왜 이 칼럼에 최진실을 끌어들였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때도 정형돈을 챙기듯 최진실을 챙겼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배국남은 개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어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에 대해서는 '스타 산업' 운운 하며 몹시 안쓰러워하는 기사를 썼는데 반해,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최진실에 대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도 스타급?'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썼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위법행위 피해자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개념 정리가 안 된 기자 배국남은 " ‘장밋빛 인생’으로 스타성을 회복한 최진실이 이제는 드라마외적인 사생활 퍼포먼스도 스타답게 해줬으면 한다"라고 2005년 9월 18일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같은 기간 거구의 근육질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던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배국남은 자신의 말대로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문제적 행동을 한 바 있었다면 최진실은 그 배우자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법적인 맥락 정도는 머릿 속에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자가 되었으면 한다'로 대응될 수 있는 바였다. 즉 배국남 또한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펼쳤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최진실이 소송이혼패소자이거나 배국남이 여론조작자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배국남 같은 존재들을 처리하는 카드였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3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가진 최진실에 대해 판 정리가 다된 시점인 2005년에 배국남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최진실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과도 통하는 바였다. 배국남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두어도 힘든 것이 연예인이라는 건데 그런 연예인을 상대로 외부에서 여론 조작까지 저지르며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 것인지를 배국남의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사생활 퍼포먼스'로 희화화되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최진실이 느꼈을 비애가 정형돈의 불안장애보다 과연 하찮은 것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그런 퍼포먼스를 펼칠 이유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연예 언론도 '스타 산업'의 일부라면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는 배국남의 서술은 맞을 수도 있겠다. 배국남의 행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A는 B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저지르고 그런 B는 우울증에 걸리고 A는 우울증에 걸려도 자유롭게 정신과 병원에 내원할 수 없는 B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고' 이런 스토리라인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후 B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A는 열심히 B를 비난해주고 그게 싫증나면 B의 죽음은 스타 산업 탓이라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 '무사 탈출' 되었던 바였다. 기자 배국남은 배우 최진실이 '이혼 거부 의사 카드'를 쓴 것이 바로 배국남 본인에게 최진실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 논리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기자답게 맥락을 살펴가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은 하면서 그 기자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대중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기자인 것이다. 배국남의 논리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한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면 최진실의 사망도 '사생활 퍼포먼스'인 셈이고 그게 퍼포먼스인 것은 언론이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고 최진실의 사망이라는 사생활을 자꾸 다루는 배국남은 왜 자꾸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사 조회수를 올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이나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꾸 다루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상관관계 1위에 해당되는 인물이 최진실임을 배국남도 잘 알 위치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또 최진실이 여론 조작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진실 규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음을 배국남은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하는 바이다. 피해자 최진실에게 퍼포먼스 운운 하며 침묵을 강요했던 배국남은 본인도 최진실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배국남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안위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며 금전적 이익을 취할 시간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이혼을 했을 때 실제 기뻐할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이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진실이 책임을 지게 될지, 배국남이 책임을 지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혼했을 때 그 후과를 최진실이 지게 될까, 배국남이 지게 될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진실 규명에 대해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금전적 이득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았던 바였다. 최진실은 기자들 좋으라고 진실 규명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도 짚어야 하는 바였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챙겨야 배국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정형돈도 여론 조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인지해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정형돈이 최진실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도 배국남은 과연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칭할지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실 규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함을 배국남은 깨달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천명에 의해 법적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가 없었다. 기자로서 이혼유책주의라는 상식도 갖추지 못해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내몰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는 데 기여했으면 스타 산업 운운에 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과오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다. 연예 언론의 악마성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를 팔아 돈을 버는 일에 연예 언론도 결코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이 칼럼은 그 점을 거의 짚고 있지 않다. 배국남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레브리티화한 사람(스타)의 자살에서는 전면적인 상품화로 인한 달콤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좌절, 상품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번민 등이 범벅된 고통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고 분석한다"라는 내용을 이 칼럼에 담음으로써 교묘하게 최진실을 치고 있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최진실은 자신의 상품화와 관련하여 염려할 객관적 위치도 아니었다. 최진실은 인기 그 자체로만 보면 차고넘치게 누려 늘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었다. 여론 조작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직업 활동에 방해로 작용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기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의해 사라진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잡아도 인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론 조작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을 제압해야 연예인이 부당하게 직업 활동을 방해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신뢰'가 자신의 무기였고 2002년까지도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면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찾곤 할 만큼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최진실은 직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갔던 것뿐이다. 배국남은 그 당시 누가 여론 조작을 주동했고 그에 대해 기자들이 어떻게 공범으로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하고 싶다면서 가정법원에는 가지 못한 자, 그 자가 가정법원은 가지 못한 채 기자들을 모아놓고 최진실을 비방하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실은 자들을 기록해야 다시 생사람을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서정희, 김주하 등 이혼을 원하는 유명인 중에 가정법원은 못간 채 기자들 불러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비방하며 여론 조작을 한 자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야 하는 바이다. 그래야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김주하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서정희와 김주하가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그런 행태의 피해자인데 배국남에게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의 되었으니 최진실이 느꼈을 황당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웃음을 짓는 자가 있었을 것임은 자명한 바이다. 참고할 만한 경우가 있긴 한데 최태원이 그에 해당될 수 있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 운운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배국남 본인이 그 대단하다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고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배국남은 최진실도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안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코 어렵지 않은 진실을 이제라도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을 지키며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편에 선 행태라는 것은 상식이다. 배국남류의 그 중립 속에 피해자가 죽었고 그나마 정의가 살아있어 가해자도 죽은 것이다. 배국남류는 애시당초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살려야 했고 그러면 가해자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죽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국남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자신의 편에 서주는 수많은 중립자들이 가해자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뭔가를 잘못한들 두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위법을 저지를 가능성 희박하고 더구나 자식들의 생부가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임이 만방에 알려진 마당에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사회적·경제적 지위상으로도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위법을 저지른 바 없으니 소송이혼 대상 안된 것인데, 배국남이 2005년 9월 18일이라는 날에 즉 거구의 근육질 남성에게 최진실이 폭행을 당한 지 일년 정도 된 시점에, 그 폭행 사건 여파로 피해자로서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황당한 일도 겪고 있던 최진실에게 근거없는 공격을 한 것이 과연 최진실의 사망에 기여한 바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임이 입증된 자를 향해 그렇게 공격을 할 만큼 한가했으면 가해자를 더 가열차게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바이고 피해자 최진실이 사망할 확률을 낮추는 행위였다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어도 최진실을 향한 공격이 부당할 판에 도대체 피해자로서 이혼한 최진실에 대해 무슨 근거로 배국남은 그리도 당당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바이다. 최진실이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했는데 어찌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이 바보라서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하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겠느냐를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이라는 거시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정형돈 본인이 연예 활동 중단이든 뭐든 알아서 잘 판단하여 행동한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발생한 여론 조작이, 폭행 사건이, 폭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상이 되는 일이 과연 사생활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이걸 처리하는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걸 처리하는 일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는 뜻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이토록 허술한 배국남이 최진실이 배병수 살해 교사범이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최진실이 안재환 살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이고 최진실 본인도 배국남류의 정신 세계에 대해 염려되는 바가 없었을지 생각해볼만한 바이다. 유책배우자도 아닌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자기 멋대로 여김에 의해 유책배우자 어머니를 둔 게 아닌 최환희와 최준희는 졸지에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된 것이 배국남이 선사한 현실이었는데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를 최진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배국남을 대중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누가 보면 최환희와 최준희 양육비도 배국남이 대고 있는 줄 알 듯이 그들의 삶을 매우 걱정하는 것이 배국남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근거없이 용감하게 최진실을 죽이는 길을 가더니 최진실이 사망하자 왜 최환희와 최준희의 수호천사인 양 구는 것인지 배국남의 그 저의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에 이혼을 원했건 이혼을 원하지 않았건 위법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이혼을 원했으면 공개된 이혼 사유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으면 더더욱 위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최진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더구나 최진실에 대해 최진실의 배우자는 덫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무리수를 두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최진실이 위법행위 현장 검증차 찾은 주차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위법행위 당사자였던 최진실의 배우자였고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흘려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는 행태를 보인 것도 최진실의 배우자였다. 최진실이 그 주차장에 간 것이나 최진실이 작성한 이혼합의서 내용이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최진실의 배우자는 그런 문제될 것 없는 사안을 떠들고 다니며 최진실이 자기가 거주하는 건물 주차장에 나타나서 기분나빴다고, 이혼합의서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중에게 최진실 혼내주라고 징징대었던 것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한 기자들도 이 자의 어리광에 동참했던 것이며 이 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최진실 나빠'를 외쳤던 대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당한 최진실이 언론 대응에 나서면 배국남류는 최진실이 '사생활 퍼포먼스'를 하고 앉았다고 손가락질하였던 바이다. 드러난 사실들 중에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공격을 당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국남류는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했던 것이다. 2005년 기사에서 배국남은 또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연기의 진부함에 고개를 돌린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 색인하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배국남은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다가 여론 조작 행태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자결했다. 배국남 등의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백승연 등은 그 인격 살인 행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였다고해도 무방했다. 이 중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 이 세 명의 팀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이 셋의 행태는 '최진실 사망'이라는 '골인'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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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004년12월 16일 기사에서 서병기는 피해자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어떤 자리에서건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소송을 당한 최진실의 심경이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자회견을 겸한 브리핑장에서 시종 눈물을 흘려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고 서술하며 그것을 문제삼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최진실은 폭행의 피해자였는데 그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광고주가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그것을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자신을 돕기 위해 연대한 25명의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을 서병기는 아니꼬워했던 셈이었다. 서병기는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이 CF를 찍어 이혼후 그 광고주로부터 피소당했다면 반남성적인 소송인가?"라고 서술하며 조성민이 폭력범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도 보였는데, 상식적으로 가해자 조성민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삼는 인권변호사는 없고 광고 모델이 위법행위의 가해자이면 피소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최진실도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분노한 것이고 최진실의 자택에 강도가 들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고 다양한 이유로 그 범죄 현장을 공개한 것이면 감히 광고주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해서 반여성적이라는 것인데, 진선미민변여성복지위원장과 신혜수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성운동계에서도 <신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최진실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사안에 대해 서병기는 젠더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드러내며 최진실과 최진실을 돕는 인권변호사들을 향해 비아냥대며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고 가해자 조성민의 공범으로 역할을 하였다. 서병기는 이 글에서 최진실의 기부 여부를 지적하며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을 유도하였는데, 일단 기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불합리함과 싸우는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논점 일탈적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가져와 최진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많다. 서병기는 "최진실은 10년 이상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방송과 CF, 영화 등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대중스타로서 그의 이미지는 검소를 몸소 실천하는 ’짠순이’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만 ’짠순이’였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돕는 데도 인색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았다. 최진실이 가정적으로 불행스런 상황에 빠져도 대중들이 동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그녀의 인색한 평소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도 서술하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예순 살에 혹은 일흔 살에 전 재산 대학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고 여론 조작으로 노년기도 못맞고 중년기에 사망한 최진실 무덤 앞에서 서병기는 이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서병기는 최진실의 인격을 공격함으로써 최진실의 의미있는 행동을 폄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서병기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상황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최진실 사망 후에도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 조성민은 여론 조작을 이어갔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김도형은 2004년 6월 25일 '상호비방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양비론을 펼쳤고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섰다. 조성민은 이걸 노리고 가정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떠들 이야기들을 기자들을 불러놓고 하였다고 봐도 무방한 바였다. 김도형은 조성민의 뜻대로 잘 움직여 준 셈이었다. 조성민이 펼친 여론조작에 대해 그 피해자 최진실이 언론 대응을 하며 방어권을 행사한 일은 김도형류에 의해 이렇게 매도되었고 이는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일이었던 셈이었다. 가해자와 한 패가 되어 움직이는 언론인들을 보며 피해자 최진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가족)을 상대로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를 저질렀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현재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를 이미 저지른 상태였고 그 각각에 대해 여론조작을 가동시켜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모는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도 추가되었다.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최진실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언론 대응을 했던 것이고 기자나 대중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를 제공했던 것이다.(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는 최진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법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혼은 합의이혼이거나 소송이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진실은 이혼 불가 입장을 표함으로써 합의이혼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그러므로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를 밟거나 못밟거나 둘 중 하나였다. 조성민은 후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여론조작범임을 입증했다. 사실 조성민이 가정법원은 못가고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한 행동 자체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즉 교차검증이 되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3년 10월에도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조작을 펼쳤었고 이에 대해 최진실은 2003년 12월에 배우 활동 복귀를 앞두고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를 빌어 이혼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확실히 하며 여론조작을 제압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후에도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 없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한 최진실에 대해서도 김도형은 '어정쩡'이라는 용어를 쓰며 여론조작을 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꼽다는 본인의 심경을 드러낸 바였고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한겨레라는 언론권력을 이용해서 압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안그러면 계속 '너를 후려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조성민만 비난하면 되는 상황에서 최진실의 직업활동을 물고늘어지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2004년 6월 기준으로, 조성민은 자신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떠든 이야기들을 가정법원 판사 앞에 가서 똑같이 하고 그 증거도 제시하면 이혼이 완료되는 바였다. 2004년 기준으로 최진실은 배우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길을 갔고 조성민도 피해자로 자칭한 본인의 길을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조성민이었고 두 달 후 2004년 8월 1일 최진실 자택을 찾아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이나 행사한 것이 조성민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의 궤변에 김도형류는 계속 힘을 실어주며 피해자 최진실의 숨통을 조여갔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김도형은 이에 대해 반성은 전혀 없고 2011년까지도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가는 모습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부류를 최진실이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인 바였다. 최진실 입장에 처한 누구라도 김도형류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여론조작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 여론조작의 중심에 선 조성민을 처리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신의 말이 허위이면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될 것이고 법정에서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형은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최진실이 2003년 12월 '지금은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중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따름이다. 최진실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없고 혹은 이해할 생각은 없고 비난은 하고 싶은 그런 본인의 심정을 드러낸 기사인지, 칼럼인지를 한겨레를 통해 썼고 이를 통해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 미끼를 던져 주었다. 김도형류는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를 계속 공격하며 여론조작범과 자신들이 공범임을 보여주었다. 같은 글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에 대해 갈 데까지 가는 공방을 벌인 최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다시 대중 활동에 나선 결과 시청자의 평가는 혹독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며 자의적 해석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기도 하였다. 2004년에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를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 탓으로 돌리는 이 악랄함이 결국 2008년 최진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통상 드라마의 시청률은 다양한 이유로 낮을 수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위법한 행위를 한 바 없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이었는데도 김도형은 최진실을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취급을 했던 것이다. 최진실은 위법한 행위를 하기는커녕 여론조작의 피해자였는데 김도형은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여론조작으로 최진실을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최진실이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모습이었다. 대중은 김도형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당신 말대로 최진실이 조성민을 부당하게 공격을 했는데 왜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김도형은 철저하게 가해자 조성민 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바였다. 최진실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떠들고 다닌 것이 조성민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조성민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조성민의 여론조작을 제압한 것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김도형은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배국남은 2016년 8월 4일 칼럼에서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고 썼다. 이는 최진실을 죽인 게 '스타 산업'이라는 논리였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겪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일에 최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최진실만 끌어들이기 그랬는지 배우 이은주도 같이 등판시켰다. 최진실은 연예 활동을 꾸준히 했던 인물로, 직업 활동 맥락이 정형돈과 달랐다. 최진실은 일찌감치 연예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타 산업'에 휘둘릴 객관적 상황도 짧았고 여론 조작이 유독 심하던 때에도 그에 개의치 않고 직업 활동을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썼던 혐오 세력들은 그런 최진실을 '잡초'라며 비아냥거렸었다. 즉 최진실에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이 최진실의 직업 활동을 방해했었다. 노년기에도 배우 활동을 하기를 원했던 최진실을 기어이 중년기에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존재들이었다. 최진실이 치열한 여론 조작의 터널을 뚫고 화려하게 배우 활동 복귀를 하였을 때 배국남이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를 보면 배국남이 왜 이 칼럼에 최진실을 끌어들였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때도 정형돈을 챙기듯 최진실을 챙겼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배국남은 개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어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에 대해서는 '스타 산업' 운운 하며 몹시 안쓰러워하는 기사를 썼는데 반해,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최진실에 대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도 스타급?'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썼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위법행위 피해자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개념 정리가 안 된 기자 배국남은 " ‘장밋빛 인생’으로 스타성을 회복한 최진실이 이제는 드라마외적인 사생활 퍼포먼스도 스타답게 해줬으면 한다"라고 2005년 9월 18일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같은 기간 거구의 근육질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던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배국남은 자신의 말대로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문제적 행동을 한 바 있었다면 최진실은 그 배우자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법적인 맥락 정도는 머릿 속에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자가 되었으면 한다'로 대응될 수 있는 바였다. 즉 배국남 또한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펼쳤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최진실이 소송이혼패소자이거나 배국남이 여론조작자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배국남 같은 존재들을 처리하는 카드였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3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가진 최진실에 대해 판 정리가 다된 시점인 2005년에 배국남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최진실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과도 통하는 바였다. 배국남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두어도 힘든 것이 연예인이라는 건데 그런 연예인을 상대로 외부에서 여론 조작까지 저지르며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 것인지를 배국남의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사생활 퍼포먼스'로 희화화되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최진실이 느꼈을 비애가 정형돈의 불안장애보다 과연 하찮은 것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그런 퍼포먼스를 펼칠 이유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연예 언론도 '스타 산업'의 일부라면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는 배국남의 서술은 맞을 수도 있겠다. 배국남의 행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A는 B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저지르고 그런 B는 우울증에 걸리고 A는 우울증에 걸려도 자유롭게 정신과 병원에 내원할 수 없는 B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고' 이런 스토리라인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후 B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A는 열심히 B를 비난해주고 그게 싫증나면 B의 죽음은 스타 산업 탓이라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 '무사 탈출' 되었던 바였다. 기자 배국남은 배우 최진실이 '이혼 거부 의사 카드'를 쓴 것이 바로 배국남 본인에게 최진실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 논리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기자답게 맥락을 살펴가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은 하면서 그 기자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대중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기자인 것이다. 배국남의 논리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한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면 최진실의 사망도 '사생활 퍼포먼스'인 셈이고 그게 퍼포먼스인 것은 언론이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고 최진실의 사망이라는 사생활을 자꾸 다루는 배국남은 왜 자꾸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사 조회수를 올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이나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꾸 다루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상관관계 1위에 해당되는 인물이 최진실임을 배국남도 잘 알 위치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또 최진실이 여론 조작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진실 규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음을 배국남은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하는 바이다. 피해자 최진실에게 퍼포먼스 운운 하며 침묵을 강요했던 배국남은 본인도 최진실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배국남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안위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며 금전적 이익을 취할 시간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이혼을 했을 때 실제 기뻐할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이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진실이 책임을 지게 될지, 배국남이 책임을 지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혼했을 때 그 후과를 최진실이 지게 될까, 배국남이 지게 될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진실 규명에 대해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금전적 이득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았던 바였다. 최진실은 기자들 좋으라고 진실 규명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도 짚어야 하는 바였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챙겨야 배국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정형돈도 여론 조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인지해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정형돈이 최진실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도 배국남은 과연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칭할지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실 규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함을 배국남은 깨달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천명에 의해 법적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가 없었다. 기자로서 이혼유책주의라는 상식도 갖추지 못해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내몰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는 데 기여했으면 스타 산업 운운에 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과오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다. 연예 언론의 악마성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를 팔아 돈을 버는 일에 연예 언론도 결코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이 칼럼은 그 점을 거의 짚고 있지 않다. 배국남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레브리티화한 사람(스타)의 자살에서는 전면적인 상품화로 인한 달콤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좌절, 상품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번민 등이 범벅된 고통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고 분석한다"라는 내용을 이 칼럼에 담음으로써 교묘하게 최진실을 치고 있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최진실은 자신의 상품화와 관련하여 염려할 객관적 위치도 아니었다. 최진실은 인기 그 자체로만 보면 차고넘치게 누려 늘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었다. 여론 조작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직업 활동에 방해로 작용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기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의해 사라진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잡아도 인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론 조작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을 제압해야 연예인이 부당하게 직업 활동을 방해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신뢰'가 자신의 무기였고 2002년까지도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면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찾곤 할 만큼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최진실은 직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갔던 것뿐이다. 배국남은 그 당시 누가 여론 조작을 주동했고 그에 대해 기자들이 어떻게 공범으로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하고 싶다면서 가정법원에는 가지 못한 자, 그 자가 가정법원은 가지 못한 채 기자들을 모아놓고 최진실을 비방하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실은 자들을 기록해야 다시 생사람을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서정희, 김주하 등 이혼을 원하는 유명인 중에 가정법원은 못간 채 기자들 불러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비방하며 여론 조작을 한 자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야 하는 바이다. 그래야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김주하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서정희와 김주하가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그런 행태의 피해자인데 배국남에게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의 되었으니 최진실이 느꼈을 황당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웃음을 짓는 자가 있었을 것임은 자명한 바이다. 참고할 만한 경우가 있긴 한데 최태원이 그에 해당될 수 있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 운운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배국남 본인이 그 대단하다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고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배국남은 최진실도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안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코 어렵지 않은 진실을 이제라도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을 지키며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편에 선 행태라는 것은 상식이다. 배국남류의 그 중립 속에 피해자가 죽었고 그나마 정의가 살아있어 가해자도 죽은 것이다. 배국남류는 애시당초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살려야 했고 그러면 가해자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죽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국남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자신의 편에 서주는 수많은 중립자들이 가해자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뭔가를 잘못한들 두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위법을 저지를 가능성 희박하고 더구나 자식들의 생부가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임이 만방에 알려진 마당에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사회적·경제적 지위상으로도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위법을 저지른 바 없으니 소송이혼 대상 안된 것인데, 배국남이 2005년 9월 18일이라는 날에 즉 거구의 근육질 남성에게 최진실이 폭행을 당한 지 일년 정도 된 시점에, 그 폭행 사건 여파로 피해자로서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황당한 일도 겪고 있던 최진실에게 근거없는 공격을 한 것이 과연 최진실의 사망에 기여한 바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임이 입증된 자를 향해 그렇게 공격을 할 만큼 한가했으면 가해자를 더 가열차게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바이고 피해자 최진실이 사망할 확률을 낮추는 행위였다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어도 최진실을 향한 공격이 부당할 판에 도대체 피해자로서 이혼한 최진실에 대해 무슨 근거로 배국남은 그리도 당당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바이다. 최진실이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했는데 어찌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이 바보라서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하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겠느냐를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이라는 거시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정형돈 본인이 연예 활동 중단이든 뭐든 알아서 잘 판단하여 행동한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발생한 여론 조작이, 폭행 사건이, 폭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상이 되는 일이 과연 사생활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이걸 처리하는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걸 처리하는 일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는 뜻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이토록 허술한 배국남이 최진실이 배병수 살해 교사범이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최진실이 안재환 살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이고 최진실 본인도 배국남류의 정신 세계에 대해 염려되는 바가 없었을지 생각해볼만한 바이다. 유책배우자도 아닌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자기 멋대로 여김에 의해 유책배우자 어머니를 둔 게 아닌 최환희와 최준희는 졸지에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된 것이 배국남이 선사한 현실이었는데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를 최진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배국남을 대중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누가 보면 최환희와 최준희 양육비도 배국남이 대고 있는 줄 알 듯이 그들의 삶을 매우 걱정하는 것이 배국남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근거없이 용감하게 최진실을 죽이는 길을 가더니 최진실이 사망하자 왜 최환희와 최준희의 수호천사인 양 구는 것인지 배국남의 그 저의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에 이혼을 원했건 이혼을 원하지 않았건 위법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이혼을 원했으면 공개된 이혼 사유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으면 더더욱 위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최진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더구나 최진실에 대해 최진실의 배우자는 덫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무리수를 두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최진실이 위법행위 현장 검증차 찾은 주차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위법행위 당사자였던 최진실의 배우자였고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흘려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는 행태를 보인 것도 최진실의 배우자였다. 최진실이 그 주차장에 간 것이나 최진실이 작성한 이혼합의서 내용이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최진실의 배우자는 그런 문제될 것 없는 사안을 떠들고 다니며 최진실이 자기가 거주하는 건물 주차장에 나타나서 기분나빴다고, 이혼합의서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중에게 최진실 혼내주라고 징징대었던 것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한 기자들도 이 자의 어리광에 동참했던 것이며 이 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최진실 나빠'를 외쳤던 대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당한 최진실이 언론 대응에 나서면 배국남류는 최진실이 '사생활 퍼포먼스'를 하고 앉았다고 손가락질하였던 바이다. 드러난 사실들 중에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공격을 당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국남류는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했던 것이다. 2005년 기사에서 배국남은 또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연기의 진부함에 고개를 돌린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 색인하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배국남은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다가 여론 조작 행태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자결했다. 배국남 등의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백승연 등은 그 인격 살인 행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였다고해도 무방했다. 이 중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 이 세 명의 팀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이 셋의 행태는 '최진실 사망'이라는 '골인'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우먼센스 2008년 10월호 하은정의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은정>: '알고 보면' 그는 호감형인 사람이다. 기자는 4년 전 이혼 공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을 때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운동선수답게 순수하던 모습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덧붙여 말하면, 참 잘생기기도 했었다. 당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인물값 한번 혹독하게 치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언론은 그를 많이도 괴롭혔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와 결혼, 긴 이혼 공방 그리고 사업 실패. 그의 집 앞엔 늘 기자들이 대기 중이었고 그의 부모님 휴대폰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는 "(언론에) 뒤통수만 뻥뻥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가 다시 언론과 마주했다.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하다./ <하은정>: 4년 전 인터뷰 때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성민>: 그 때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어려운 일을 겪으니까 성격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보다시피 까칠해요.(웃음) 의리있고 순수하다는 소리를 꽤 듣고 살았는데, 그렇게 산들 이득이 되는 건 많지 않더라고요./ <하은정>: 아내는 어떤 스타일인가. <조성민>: (전략前略)저희를 연결해준 건 언론이에요. 힘든 일을 같이 겪으면서 정이 들었고,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싹텄어요. 그때 제 편은 아무도 없었어요. 다 손가락질만 했어요. 저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아내였어요./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확실히 빵보다는 야구 쪽이 어울린다(그는 한때 슈크림빵 체인 사업을 했다). <조성민>: 하하. 사실 이혼 공방만 아니었으면 슈크림빵 사업은 잘될 사업이었어요. 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니까요.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어요. 경영학과(고려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아내도 저와 비슷해요. 압구정동을 비롯해 의류매장을 네 개나 운영했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아요. 밤새 둘이 얘기하면 호텔을 몇 채나 지어요.(웃음) 아내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지인들이 많아 그쪽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지금은 용돈 벌이정도만 하고 있어요. <하은정>: 그는 잘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 아내, 그리고 최진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에게도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그는 갈 길이 멀다며, 꼭 성공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아이들과 안 만나나? <조성민>: 안 봐요.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성까지 엄마 성으로 바뀌었고, 또 지금 내 옆에서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어느 정도 커서 만나게 됐을 때 멋진 아빠이고 싶어요. 생일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때 되면 많이 보고 싶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훗날을 기약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이에요.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먼발치에서 봤어요. 생각보다 많이 안 컸네, 그랬죠. 달려가서 와락 안고 싶었는데 외할머니가 옆에 있어서 먼발치에서 보고만 왔어요./ <하은정>: 환희는 유독 아빠를 많이 닮았다. <조성민>: 커가면서 조금씩 외가 쪽을 닮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제 붕어빵이죠. 잘 커줬음 좋겠어요. 가끔 애들이 보고 싶을 때 인터넷을 뒤적거려요. 옛날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기운 빠져 있을 때 아내는 일부러 인터넷에서 애들 사진을 찾아 보여줘요. 안 보는 척하면서 슬쩍 보죠. 그런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죠./ <하은정>: 아이들 성이 바뀌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조성민>: 한마디 상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당황했어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참 많이 힘들었어요.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겼으니까요. 더 이상은 이것보다 아픈 일이 없겠지, 하고 마음을 잡았어요./ <하은정>: 2세 계획은 없나. <조성민>: 아내가 많이 원해요. 있으면 좋겠죠. 근데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생기면 감사하죠.
스포츠서울/톱스타 최진실과 중견연기자 김영철의 선행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최진실은 전국 대학 가운데 재정 형편이 어려운 학교를 찾아 컴퓨터 등 학습기자재 외에도 재정적으로 직접 지원한다. 최진실은 결혼 전에 그를 전속 CF 모델로 기용했던 한국통신이 최근 여전히 최고의 조건으로 재계약해준 것을 계기로 이 회사와 손잡고 이같은 뜻깊은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최진실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교육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액수는 밝히지 않았으나 지원 규모는 최소한 수천만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K2TV ‘태조 왕건’에 이어 MTV ‘위기의 남자’로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영철은 시청자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복지시설을 돌며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위기의 남자’가 지난 3일 18회로 막을 내림에 따라 오는 9월 STV ‘야인시대’의 김두한 역을 연기하기 전까지 3개월간의 휴식 시간이 있다. 이 기간에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최진실과 김영철은 “이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본뜻이 잘못 비쳐질 수 있다”며 한사코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2002년 6월 7일/ 유진모 기자 ybacchu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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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의 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김도형은 2004년 6월 25일 '상호비방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양비론을 펼쳤고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섰다. 조성민은 이걸 노리고 가정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떠들 이야기들을 기자들을 불러놓고 하였다고 봐도 무방한 바였다. 김도형은 조성민의 뜻대로 잘 움직여 준 셈이었다. 조성민이 펼친 여론조작에 대해 그 피해자 최진실이 언론 대응을 하며 방어권을 행사한 일은 김도형류에 의해 이렇게 매도되었고 이는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일이었던 셈이었다. 가해자와 한 패가 되어 움직이는 언론인들을 보며 피해자 최진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가족)을 상대로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를 저질렀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현재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를 이미 저지른 상태였고 그 각각에 대해 여론조작을 가동시켜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모는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도 추가되었다.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최진실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언론 대응을 했던 것이고 기자나 대중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를 제공했던 것이다.(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는 최진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법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혼은 합의이혼이거나 소송이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진실은 이혼 불가 입장을 표함으로써 합의이혼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그러므로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를 밟거나 못밟거나 둘 중 하나였다. 조성민은 후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여론조작범임을 입증했다. 사실 조성민이 가정법원은 못가고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한 행동 자체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즉 교차검증이 되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3년 10월에도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조작을 펼쳤었고 이에 대해 최진실은 2003년 12월에 배우 활동 복귀를 앞두고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를 빌어 이혼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확실히 하며 여론조작을 제압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후에도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 없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한 최진실에 대해서도 김도형은 '어정쩡'이라는 용어를 쓰며 여론조작을 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꼽다는 본인의 심경을 드러낸 바였고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한겨레라는 언론권력을 이용해서 압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안그러면 계속 '너를 후려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조성민만 비난하면 되는 상황에서 최진실의 직업활동을 물고늘어지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2004년 6월 기준으로, 조성민은 자신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떠든 이야기들을 가정법원 판사 앞에 가서 똑같이 하고 그 증거도 제시하면 이혼이 완료되는 바였다. 2004년 기준으로 최진실은 배우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길을 갔고 조성민도 피해자로 자칭한 본인의 길을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조성민이었고 두 달 후 2004년 8월 1일 최진실 자택을 찾아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이나 행사한 것이 조성민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의 궤변에 김도형류는 계속 힘을 실어주며 피해자 최진실의 숨통을 조여갔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김도형은 이에 대해 반성은 전혀 없고 2011년까지도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가는 모습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부류를 최진실이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인 바였다. 최진실 입장에 처한 누구라도 김도형류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여론조작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 여론조작의 중심에 선 조성민을 처리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신의 말이 허위이면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될 것이고 법정에서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형은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최진실이 2003년 12월 '지금은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중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따름이다. 최진실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없고 혹은 이해할 생각은 없고 비난은 하고 싶은 그런 본인의 심정을 드러낸 기사인지, 칼럼인지를 한겨레를 통해 썼고 이를 통해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 미끼를 던져 주었다. 김도형류는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를 계속 공격하며 여론조작범과 자신들이 공범임을 보여주었다. 같은 글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에 대해 갈 데까지 가는 공방을 벌인 최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다시 대중 활동에 나선 결과 시청자의 평가는 혹독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며 자의적 해석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기도 하였다. 2004년에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를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 탓으로 돌리는 이 악랄함이 결국 2008년 최진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통상 드라마의 시청률은 다양한 이유로 낮을 수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위법한 행위를 한 바 없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이었는데도 김도형은 최진실을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취급을 했던 것이다. 최진실은 위법한 행위를 하기는커녕 여론조작의 피해자였는데 김도형은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여론조작으로 최진실을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최진실이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모습이었다. 대중은 김도형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당신 말대로 최진실이 조성민을 부당하게 공격을 했는데 왜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김도형은 철저하게 가해자 조성민 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바였다. 최진실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떠들고 다닌 것이 조성민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조성민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조성민의 여론조작을 제압한 것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김도형은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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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우먼센스 2008년 10월호 하은정의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은정>: '알고 보면' 그는 호감형인 사람이다. 기자는 4년 전 이혼 공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을 때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운동선수답게 순수하던 모습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덧붙여 말하면, 참 잘생기기도 했었다. 당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인물값 한번 혹독하게 치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언론은 그를 많이도 괴롭혔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와 결혼, 긴 이혼 공방 그리고 사업 실패. 그의 집 앞엔 늘 기자들이 대기 중이었고 그의 부모님 휴대폰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는 "(언론에) 뒤통수만 뻥뻥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가 다시 언론과 마주했다.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하다./ <하은정>: 4년 전 인터뷰 때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성민>: 그 때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어려운 일을 겪으니까 성격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보다시피 까칠해요.(웃음) 의리있고 순수하다는 소리를 꽤 듣고 살았는데, 그렇게 산들 이득이 되는 건 많지 않더라고요./ <하은정>: 아내는 어떤 스타일인가. <조성민>: (전략前略)저희를 연결해준 건 언론이에요. 힘든 일을 같이 겪으면서 정이 들었고,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싹텄어요. 그때 제 편은 아무도 없었어요. 다 손가락질만 했어요. 저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아내였어요./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확실히 빵보다는 야구 쪽이 어울린다(그는 한때 슈크림빵 체인 사업을 했다). <조성민>: 하하. 사실 이혼 공방만 아니었으면 슈크림빵 사업은 잘될 사업이었어요. 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니까요.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어요. 경영학과(고려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아내도 저와 비슷해요. 압구정동을 비롯해 의류매장을 네 개나 운영했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아요. 밤새 둘이 얘기하면 호텔을 몇 채나 지어요.(웃음) 아내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지인들이 많아 그쪽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지금은 용돈 벌이정도만 하고 있어요. <하은정>: 그는 잘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 아내, 그리고 최진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에게도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그는 갈 길이 멀다며, 꼭 성공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아이들과 안 만나나? <조성민>: 안 봐요.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성까지 엄마 성으로 바뀌었고, 또 지금 내 옆에서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어느 정도 커서 만나게 됐을 때 멋진 아빠이고 싶어요. 생일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때 되면 많이 보고 싶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훗날을 기약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이에요.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먼발치에서 봤어요. 생각보다 많이 안 컸네, 그랬죠. 달려가서 와락 안고 싶었는데 외할머니가 옆에 있어서 먼발치에서 보고만 왔어요./ <하은정>: 환희는 유독 아빠를 많이 닮았다. <조성민>: 커가면서 조금씩 외가 쪽을 닮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제 붕어빵이죠. 잘 커줬음 좋겠어요. 가끔 애들이 보고 싶을 때 인터넷을 뒤적거려요. 옛날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기운 빠져 있을 때 아내는 일부러 인터넷에서 애들 사진을 찾아 보여줘요. 안 보는 척하면서 슬쩍 보죠. 그런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죠./ <하은정>: 아이들 성이 바뀌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조성민>: 한마디 상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당황했어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참 많이 힘들었어요.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겼으니까요. 더 이상은 이것보다 아픈 일이 없겠지, 하고 마음을 잡았어요./ <하은정>: 2세 계획은 없나. <조성민>: 아내가 많이 원해요. 있으면 좋겠죠. 근데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생기면 감사하죠.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오후 2시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메모까지 해오는 등[출처 필요] 치밀한 설계 속에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 이와 관련하여 김용만과 성유리가 진행하는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밤 11시MBC 《섹션TV 연예통신》 172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성민은 이러한 여론조작 행위를 통해 마치 최진실이 비방당할 행동을 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하도록 조장했으나 2004년 8월 1일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본인이 갖가지 위법행위를 저지르며 자멸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Archived 2016년 6월 10일 - 웨이백 머신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방송인 전여옥의 시사터치: 32살 최진실의 結婚 비즈니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암팡진 고양이…32살 최진실의 結婚 비즈니스… '5살 연하 未完의 남자'에게 미래지향적 投資/ 언론인 전여옥/ 중앙일보 《iWeekly(아이위클리)》 16쪽/ 2000년 6월 20일/ 최진실의 선택은 상당히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이다. 상대인 조성민은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미완’이다. 어제나 오늘의 남자가 아니라 내일의 남자에 최진실은 투자하기로 마음 먹은 셈이다. 이중적인 최진실의 이미지 결혼은 비즈니스적 특성을 지닌다. 한 사람이 어떤 결혼을 했느냐는 그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명문(?)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모 여배우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평소 베드신은 물론 키스신에도 까다로웠다는 그녀의 알몸을 본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고 똘똘해 보여 좋은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결국은 신데렐라 콤플렉스 환자였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요즘 같은 좋은 세상에 혼자서 큰소리 땅땅 쳐가며 수십억도 벌 수 있는데 왜 그녀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기도 못 피고, 돈도 당당하게 쓰지 못하는 ‘부잣집 몸종’의 신세를 선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최진실의 결혼은 최진실이라는 여배우가 과연 어떤 여자였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준다. 내가 아는 최진실을 정리해보자. 우선 최진실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깜찍하고 귀엽기만한 이미지와 동시에 노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짠순이이자 소녀 가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진실은 여러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가난을 이야기했다. 몇몇 찢어지게 가난했던 여자 연예인들이 부잣집 딸 행세를 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두 번째, 최진실은 상당한 노력파이다. 모 전자회사의 VTR선전에 나왔던 최진실이 지금의 최진실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CF로 한창 물이 올랐던 몇몇 여자 연예인 가운데 ‘여배우’로 자리를 잡은 경우는 최진실 외에 거의 없다. 처음 겉돌고 어설펐던 최진실이 ‘마누라죽이기’나 ‘장미와 콩나물’에서 보여 주었듯 실감나는 연기자로 변신한 것은 그녀가 대단한 노력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로 최진실은 프로의식이 대단한 듯하다. 헐리우드에서 프로정신이 탁월한 여배우하면 데미 무어를 꼽는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였다 해도 각고의 노력으로 스트립 댄서의 몸을 만들어낸 점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최진실이 존경스러운 점은 ‘정상’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암팡지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몇 년째인가? 네 번째는 최진실의 화끈한 면모이다. 한 번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으나 ‘개고기를 잘 먹는다’든가 대낮 인터뷰에서 ‘커피 대신 맥주 한 병을 시켰다’는 기사를 읽을 때 나는 그녀가 좋아졌다. 그 최진실이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한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최진실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배우로서 한 여자로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감을 잡았다.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인 최진실의 선택 여배우의 결혼 형태는 시대와 더불어 달라진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1970년대를 대표하던 인물은 여배우 야마구치 모모에였다. 모모에는 언제나 상대역으로 공연했던 배우 미우라 도모가즈와 결혼을 발표했다. 그녀는 21살에 은퇴를 밝히면서 만일 배우일을 계속하면 가정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덧붙이길 “그를 위해, 그를 기다리며” 살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일본 여배우의 결혼이라면 마쓰다 세이코를 들 수 있다. 마쓰다 세이코는 한마디로 스캔들러스하다. 자신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배우 간다 마시키와 결혼했지만 ‘왜 그와 갑자기 결혼했을까?’ 하며 모두들 수상쩍어 했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아이를 낳고 뉴욕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났고, 수없는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결국은 이혼했다. 그랬는가 싶더니 젊고 매력적인 의사와 후딱 재혼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사는 여배우의 결혼이다. 1990년대 일본의 대표적 여자 연예인이라면 아무로 나미에이다. 아무로는 이른바 일본의 외지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오키나와 출신이다. 가난했지만 투지를 갖고 가수가 되었고, 엄청난 돈과 인기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로가 결혼을 발표했는데, 임신중이라는 사실까지 밝혔다. 상대는 ‘톰’이라고 불리는 댄서겸 음악인이었다. 일본 최고의 톱가수와 그냥 그런 톰의 결혼은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 둘은 결혼을 해서 아주 잘 살고 있고,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헌 옷을 얻어다 아이에게 입히면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개념을 선택한 결혼이다. 그럼 최진실의 선택은 어떠한가? 상당히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 선택이다. 상대인 조성민은 야구선수이다. 박찬호의 동기로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성민은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미완’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좋을 가능성이 있는 남자이다. 어제나 오늘의 남자가 아니라 내일의 남자에 최진실은 투자하기로 마음 먹은 셈이다. 연예계와 스포츠계는 한 집안 출신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가 지적했듯 연예계와 스포츠계는 ‘승자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차지하는 세계’이다. 그만큼 실력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세계이자 무시무시한 경쟁의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둘은 바로 그런 치열함 속에서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마치 테니스의 슈테피 그라프가 안드레아 아가시의 재기를 도왔듯 같은 종류의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신뢰와 지원이 이 커플의 성공적인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연령 차이이다. 최진실은 27살의 조성민보다 5살이나 위이다. 여자가 서른을 넘기면 현명해진다. 짙은 안개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 20대라면 30대는 안개가 깨끗이 걷힌 가운데 툭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며 운전하는 것과 같다. 서른을 넘긴 여자는 알 것도 다 알고 이것저것 본 것도 꽤 되고 해본 일도 많다. 굳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 어린 여성은 경험 많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그의 눈으로 그의 온실에서 잠자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살아온 여자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크고 돈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열등감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다. 누구라도 좋고 연하의 남자 역시 개의치 않는다. 그 남자가 ‘미완성’이라는 것, ‘연하’라는 것은 그만큼 미래지향적이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최진실의 결혼은 주먹을 꼭 쥐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얻고 이루고 쌓아온 여자의 당당한 선택이다. 스스로 지도를 읽어가며 길을 찾고 운전해온 자가운전자인 여성의 탁월한 선택이다. 빵빵하고 단단한 차 한 대를 직접 운전하면서 자잘한 접촉사고도 또 대형사고도 내봤던, 그랬기에 인생이라는 길을 구석구석 잘 아는 개인택시 기사급의 실력을 갖추게 된 착실한 여성이 고른 결혼 비지니스이다. 내가 아는 꽤 이름있는 여성은 “만일 여행을 간다면 어떤 남자와 떠나고 싶냐?”고 묻자 “야구선수”라고 대답했다. 나는 대충 그 이유를 알겠다. 한 남자로서 매력있는 27살의 야구선수와 야무진 32살의 여배우가 결혼한다. 그 결혼이 최진실의 고단했던 삶에 평온한 휴가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최진실이 여배우로서 남길 바란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이 한 배우로서 ‘허브’가 아니라 ‘포털’이 되었으면 한다. 여배우가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므로….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방송인 전여옥의 시사터치: 32살 최진실의 結婚 비즈니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암팡진 고양이…32살 최진실의 結婚 비즈니스… '5살 연하 未完의 남자'에게 미래지향적 投資/ 언론인 전여옥/ 중앙일보 《iWeekly(아이위클리)》 16쪽/ 2000년 6월 20일/ 최진실의 선택은 상당히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이다. 상대인 조성민은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미완’이다. 어제나 오늘의 남자가 아니라 내일의 남자에 최진실은 투자하기로 마음 먹은 셈이다. 이중적인 최진실의 이미지 결혼은 비즈니스적 특성을 지닌다. 한 사람이 어떤 결혼을 했느냐는 그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명문(?)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모 여배우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평소 베드신은 물론 키스신에도 까다로웠다는 그녀의 알몸을 본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고 똘똘해 보여 좋은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결국은 신데렐라 콤플렉스 환자였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게다가 요즘 같은 좋은 세상에 혼자서 큰소리 땅땅 쳐가며 수십억도 벌 수 있는데 왜 그녀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어 기도 못 피고, 돈도 당당하게 쓰지 못하는 ‘부잣집 몸종’의 신세를 선택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최진실의 결혼은 최진실이라는 여배우가 과연 어떤 여자였는지를 정확하게 짚어 준다. 내가 아는 최진실을 정리해보자. 우선 최진실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깜찍하고 귀엽기만한 이미지와 동시에 노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짠순이이자 소녀 가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진실은 여러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가난을 이야기했다. 몇몇 찢어지게 가난했던 여자 연예인들이 부잣집 딸 행세를 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두 번째, 최진실은 상당한 노력파이다. 모 전자회사의 VTR선전에 나왔던 최진실이 지금의 최진실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CF로 한창 물이 올랐던 몇몇 여자 연예인 가운데 ‘여배우’로 자리를 잡은 경우는 최진실 외에 거의 없다. 처음 겉돌고 어설펐던 최진실이 ‘마누라죽이기’나 ‘장미와 콩나물’에서 보여 주었듯 실감나는 연기자로 변신한 것은 그녀가 대단한 노력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세 번째로 최진실은 프로의식이 대단한 듯하다. 헐리우드에서 프로정신이 탁월한 여배우하면 데미 무어를 꼽는다. 아무리 돈을 많이 들였다 해도 각고의 노력으로 스트립 댄서의 몸을 만들어낸 점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최진실이 존경스러운 점은 ‘정상’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암팡지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벌써 몇 년째인가? 네 번째는 최진실의 화끈한 면모이다. 한 번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으나 ‘개고기를 잘 먹는다’든가 대낮 인터뷰에서 ‘커피 대신 맥주 한 병을 시켰다’는 기사를 읽을 때 나는 그녀가 좋아졌다. 그 최진실이 야구선수 조성민과 결혼한다는 기사를 읽고 나는 ‘최진실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배우로서 한 여자로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감을 잡았다.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인 최진실의 선택 여배우의 결혼 형태는 시대와 더불어 달라진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1970년대를 대표하던 인물은 여배우 야마구치 모모에였다. 모모에는 언제나 상대역으로 공연했던 배우 미우라 도모가즈와 결혼을 발표했다. 그녀는 21살에 은퇴를 밝히면서 만일 배우일을 계속하면 가정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덧붙이길 “그를 위해, 그를 기다리며” 살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일본 여배우의 결혼이라면 마쓰다 세이코를 들 수 있다. 마쓰다 세이코는 한마디로 스캔들러스하다. 자신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배우 간다 마시키와 결혼했지만 ‘왜 그와 갑자기 결혼했을까?’ 하며 모두들 수상쩍어 했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아이를 낳고 뉴욕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났고, 수없는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결국은 이혼했다. 그랬는가 싶더니 젊고 매력적인 의사와 후딱 재혼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사는 여배우의 결혼이다. 1990년대 일본의 대표적 여자 연예인이라면 아무로 나미에이다. 아무로는 이른바 일본의 외지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오키나와 출신이다. 가난했지만 투지를 갖고 가수가 되었고, 엄청난 돈과 인기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로가 결혼을 발표했는데, 임신중이라는 사실까지 밝혔다. 상대는 ‘톰’이라고 불리는 댄서겸 음악인이었다. 일본 최고의 톱가수와 그냥 그런 톰의 결혼은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 둘은 결혼을 해서 아주 잘 살고 있고,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헌 옷을 얻어다 아이에게 입히면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개념을 선택한 결혼이다. 그럼 최진실의 선택은 어떠한가? 상당히 비즈니스적이고 실리적 선택이다. 상대인 조성민은 야구선수이다. 박찬호의 동기로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성민은 빛나는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미완’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좋을 가능성이 있는 남자이다. 어제나 오늘의 남자가 아니라 내일의 남자에 최진실은 투자하기로 마음 먹은 셈이다. 연예계와 스포츠계는 한 집안 출신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프랭크가 지적했듯 연예계와 스포츠계는 ‘승자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차지하는 세계’이다. 그만큼 실력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세계이자 무시무시한 경쟁의 세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둘은 바로 그런 치열함 속에서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마치 테니스의 슈테피 그라프가 안드레아 아가시의 재기를 도왔듯 같은 종류의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신뢰와 지원이 이 커플의 성공적인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둘의 연령 차이이다. 최진실은 27살의 조성민보다 5살이나 위이다. 여자가 서른을 넘기면 현명해진다. 짙은 안개속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 20대라면 30대는 안개가 깨끗이 걷힌 가운데 툭 트인 고속도로를 달리며 운전하는 것과 같다. 서른을 넘긴 여자는 알 것도 다 알고 이것저것 본 것도 꽤 되고 해본 일도 많다. 굳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 어린 여성은 경험 많은 남자에게 의존하고 그의 눈으로 그의 온실에서 잠자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살아온 여자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크고 돈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남자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열등감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다. 누구라도 좋고 연하의 남자 역시 개의치 않는다. 그 남자가 ‘미완성’이라는 것, ‘연하’라는 것은 그만큼 미래지향적이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최진실의 결혼은 주먹을 꼭 쥐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얻고 이루고 쌓아온 여자의 당당한 선택이다. 스스로 지도를 읽어가며 길을 찾고 운전해온 자가운전자인 여성의 탁월한 선택이다. 빵빵하고 단단한 차 한 대를 직접 운전하면서 자잘한 접촉사고도 또 대형사고도 내봤던, 그랬기에 인생이라는 길을 구석구석 잘 아는 개인택시 기사급의 실력을 갖추게 된 착실한 여성이 고른 결혼 비지니스이다. 내가 아는 꽤 이름있는 여성은 “만일 여행을 간다면 어떤 남자와 떠나고 싶냐?”고 묻자 “야구선수”라고 대답했다. 나는 대충 그 이유를 알겠다. 한 남자로서 매력있는 27살의 야구선수와 야무진 32살의 여배우가 결혼한다. 그 결혼이 최진실의 고단했던 삶에 평온한 휴가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최진실이 여배우로서 남길 바란다. 그래서 그녀의 결혼이 한 배우로서 ‘허브’가 아니라 ‘포털’이 되었으면 한다. 여배우가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므로….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의 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의 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의 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오후 2시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메모까지 해오는 등[출처 필요] 치밀한 설계 속에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 이와 관련하여 김용만과 성유리가 진행하는 2002년 12월 18일 수요일 밤 11시MBC 《섹션TV 연예통신》 172회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조성민은 이러한 여론조작 행위를 통해 마치 최진실이 비방당할 행동을 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하도록 조장했으나 2004년 8월 1일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본인이 갖가지 위법행위를 저지르며 자멸의 길을 걸었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004년12월 16일 기사에서 서병기는 피해자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어떤 자리에서건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소송을 당한 최진실의 심경이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자회견을 겸한 브리핑장에서 시종 눈물을 흘려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고 서술하며 그것을 문제삼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최진실은 폭행의 피해자였는데 그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광고주가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그것을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자신을 돕기 위해 연대한 25명의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을 서병기는 아니꼬워했던 셈이었다. 서병기는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이 CF를 찍어 이혼후 그 광고주로부터 피소당했다면 반남성적인 소송인가?"라고 서술하며 조성민이 폭력범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도 보였는데, 상식적으로 가해자 조성민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삼는 인권변호사는 없고 광고 모델이 위법행위의 가해자이면 피소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최진실도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분노한 것이고 최진실의 자택에 강도가 들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고 다양한 이유로 그 범죄 현장을 공개한 것이면 감히 광고주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해서 반여성적이라는 것인데, 진선미민변여성복지위원장과 신혜수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성운동계에서도 <신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최진실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사안에 대해 서병기는 젠더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드러내며 최진실과 최진실을 돕는 인권변호사들을 향해 비아냥대며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고 가해자 조성민의 공범으로 역할을 하였다. 서병기는 이 글에서 최진실의 기부 여부를 지적하며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을 유도하였는데, 일단 기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불합리함과 싸우는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논점 일탈적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가져와 최진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많다. 서병기는 "최진실은 10년 이상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방송과 CF, 영화 등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대중스타로서 그의 이미지는 검소를 몸소 실천하는 ’짠순이’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만 ’짠순이’였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돕는 데도 인색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았다. 최진실이 가정적으로 불행스런 상황에 빠져도 대중들이 동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그녀의 인색한 평소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도 서술하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예순 살에 혹은 일흔 살에 전 재산 대학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고 여론 조작으로 노년기도 못맞고 중년기에 사망한 최진실 무덤 앞에서 서병기는 이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서병기는 최진실의 인격을 공격함으로써 최진실의 의미있는 행동을 폄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서병기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상황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최진실 사망 후에도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 조성민은 여론 조작을 이어갔다.
2007년 11월 2일 기사를 통해 서병기는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두고 최진실의 이혼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했다. 가해자 조성민이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면서 가정법원에는 못가고 기자들을 상대로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닌 것 때문에 최진실은 명예훼손을 당한 직접적 피해자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이혼 당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이혼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성민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탓이다"라고 서술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가해자로 두고 최진실을 비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해결하기 위해 기자들을 상대했을 뿐이었다. 즉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서병기로부터 비난받을 근거가 없었다. 그런 근거가 있었다면 이는 이혼 사유를 발생시킨 것이 되는 바이고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하는 것으로 그 진위가 검증이 될 사안이었으나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것으로 최진실은 제3자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한 바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조성민은 자신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인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 혹은 쌍방 과실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이에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그것이 조성민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임을 확실히 하는 대응을 하였는데, 가해자 조성민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한 서병기의 행태는 조성민의 그러한 여론 조작이 잘 먹혔다는 증거였다. 즉 가해자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피해자 최진실을 향해 2차 공격을 함으로써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법에서 규정하는 이혼유책주의는 피해자 최진실의 편이었고 이에 의거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근원에서부터 성립될 수 없는 논리였다. 이러한 여론 조작은 2004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에 의거해 완전하게 제압되었고 이는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졌는데, 2005년에 출연한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방송사 시상식에서 최진실이 네티즌상을 받는 것으로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조성민의 이간책(離間策)이 실패했음이 단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서병기 같은 사람들은 2004년 9월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11월에도 조성민의 입장에 서서 조성민의 노림수대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여론 조작의 흐름을 이어갔다. 더욱이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건 언론이었다. 즉 서병기의 논리에 따르면 조성민과 언론이 노린 것은 최진실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고 최진실에 대한 서병기의 공격은 그 목적이 잘 달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 서병기는 "아파트 분양광고 모델 계약 뒤 사생활 관리를 잘못해 기업 이미지에 입힌 손해액이 30억원이 될지는 법원이 결정할 문제다. 최진실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아파트의 분양이 안 됐는지는 법원이 판단하면 된다.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은 대중스타의 이미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했는데, 실제 상황에서 위법행위의 피해자 연예인에게 '이미지' 운운 하는 서병기의 논리는 드라마상에서 폭력 행위의 피해자가 되어 얼굴이 멍든 모습(분장)을 널리 알린 배우에게도 '이미지' 운운 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연예인이 녹화 중 선반에서 떨어진 물건에 얼굴이 맞아 멍이 든 모습이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경우에도 '이미지' 운운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두 경우도 광고주의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소송 제기를 문제삼는 해당 연예인이 문제라는 논리였다. 그 소송 제기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해당 연예인이 문제라는 논리였다. 또 그 연예인이 무료 변론을 받고 대신 소송 비용에 상응하는 돈을 기부한다고 하면 그 연예인의 기부 전적을 운운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또 서병기는 "그러나 명망있는 변호사들의 집단 무료 변론에 대해 대중들은 지극히 냉소적이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서병기는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자결했다. 이러한 행태를 보여 놓고 서병기는 최진실 사망 후 배려 운운 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최진영 사망 후에도 한 말씀 남기기도 했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황호택. 최진실의 못 이룬 꿈. 동아일보. 기사입력 2008년 10월 10일. 최종수정 2008년 10월 11일.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Archived 2016년 6월 10일 - 웨이백 머신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배국남은 2016년 8월 4일 칼럼에서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고 썼다. 이는 최진실을 죽인 게 '스타 산업'이라는 논리였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겪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일에 최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최진실만 끌어들이기 그랬는지 배우 이은주도 같이 등판시켰다. 최진실은 연예 활동을 꾸준히 했던 인물로, 직업 활동 맥락이 정형돈과 달랐다. 최진실은 일찌감치 연예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타 산업'에 휘둘릴 객관적 상황도 짧았고 여론 조작이 유독 심하던 때에도 그에 개의치 않고 직업 활동을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썼던 혐오 세력들은 그런 최진실을 '잡초'라며 비아냥거렸었다. 즉 최진실에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이 최진실의 직업 활동을 방해했었다. 노년기에도 배우 활동을 하기를 원했던 최진실을 기어이 중년기에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존재들이었다. 최진실이 치열한 여론 조작의 터널을 뚫고 화려하게 배우 활동 복귀를 하였을 때 배국남이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를 보면 배국남이 왜 이 칼럼에 최진실을 끌어들였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때도 정형돈을 챙기듯 최진실을 챙겼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배국남은 개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어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에 대해서는 '스타 산업' 운운 하며 몹시 안쓰러워하는 기사를 썼는데 반해,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최진실에 대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도 스타급?'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썼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위법행위 피해자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개념 정리가 안 된 기자 배국남은 " ‘장밋빛 인생’으로 스타성을 회복한 최진실이 이제는 드라마외적인 사생활 퍼포먼스도 스타답게 해줬으면 한다"라고 2005년 9월 18일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같은 기간 거구의 근육질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던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배국남은 자신의 말대로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문제적 행동을 한 바 있었다면 최진실은 그 배우자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법적인 맥락 정도는 머릿 속에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자가 되었으면 한다'로 대응될 수 있는 바였다. 즉 배국남 또한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펼쳤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최진실이 소송이혼패소자이거나 배국남이 여론조작자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배국남 같은 존재들을 처리하는 카드였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3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가진 최진실에 대해 판 정리가 다된 시점인 2005년에 배국남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최진실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과도 통하는 바였다. 배국남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두어도 힘든 것이 연예인이라는 건데 그런 연예인을 상대로 외부에서 여론 조작까지 저지르며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 것인지를 배국남의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사생활 퍼포먼스'로 희화화되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최진실이 느꼈을 비애가 정형돈의 불안장애보다 과연 하찮은 것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그런 퍼포먼스를 펼칠 이유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연예 언론도 '스타 산업'의 일부라면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는 배국남의 서술은 맞을 수도 있겠다. 배국남의 행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A는 B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저지르고 그런 B는 우울증에 걸리고 A는 우울증에 걸려도 자유롭게 정신과 병원에 내원할 수 없는 B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고' 이런 스토리라인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후 B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A는 열심히 B를 비난해주고 그게 싫증나면 B의 죽음은 스타 산업 탓이라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 '무사 탈출' 되었던 바였다. 기자 배국남은 배우 최진실이 '이혼 거부 의사 카드'를 쓴 것이 바로 배국남 본인에게 최진실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 논리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기자답게 맥락을 살펴가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은 하면서 그 기자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대중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기자인 것이다. 배국남의 논리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한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면 최진실의 사망도 '사생활 퍼포먼스'인 셈이고 그게 퍼포먼스인 것은 언론이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고 최진실의 사망이라는 사생활을 자꾸 다루는 배국남은 왜 자꾸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사 조회수를 올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이나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꾸 다루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상관관계 1위에 해당되는 인물이 최진실임을 배국남도 잘 알 위치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또 최진실이 여론 조작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진실 규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음을 배국남은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하는 바이다. 피해자 최진실에게 퍼포먼스 운운 하며 침묵을 강요했던 배국남은 본인도 최진실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배국남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안위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며 금전적 이익을 취할 시간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이혼을 했을 때 실제 기뻐할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이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진실이 책임을 지게 될지, 배국남이 책임을 지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혼했을 때 그 후과를 최진실이 지게 될까, 배국남이 지게 될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진실 규명에 대해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금전적 이득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았던 바였다. 최진실은 기자들 좋으라고 진실 규명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도 짚어야 하는 바였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챙겨야 배국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정형돈도 여론 조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인지해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정형돈이 최진실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도 배국남은 과연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칭할지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실 규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함을 배국남은 깨달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천명에 의해 법적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가 없었다. 기자로서 이혼유책주의라는 상식도 갖추지 못해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내몰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는 데 기여했으면 스타 산업 운운에 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과오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다. 연예 언론의 악마성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를 팔아 돈을 버는 일에 연예 언론도 결코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이 칼럼은 그 점을 거의 짚고 있지 않다. 배국남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레브리티화한 사람(스타)의 자살에서는 전면적인 상품화로 인한 달콤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좌절, 상품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번민 등이 범벅된 고통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고 분석한다"라는 내용을 이 칼럼에 담음으로써 교묘하게 최진실을 치고 있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최진실은 자신의 상품화와 관련하여 염려할 객관적 위치도 아니었다. 최진실은 인기 그 자체로만 보면 차고넘치게 누려 늘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었다. 여론 조작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직업 활동에 방해로 작용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기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의해 사라진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잡아도 인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론 조작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을 제압해야 연예인이 부당하게 직업 활동을 방해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신뢰'가 자신의 무기였고 2002년까지도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면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찾곤 할 만큼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최진실은 직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갔던 것뿐이다. 배국남은 그 당시 누가 여론 조작을 주동했고 그에 대해 기자들이 어떻게 공범으로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하고 싶다면서 가정법원에는 가지 못한 자, 그 자가 가정법원은 가지 못한 채 기자들을 모아놓고 최진실을 비방하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실은 자들을 기록해야 다시 생사람을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서정희, 김주하 등 이혼을 원하는 유명인 중에 가정법원은 못간 채 기자들 불러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비방하며 여론 조작을 한 자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야 하는 바이다. 그래야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김주하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서정희와 김주하가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그런 행태의 피해자인데 배국남에게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의 되었으니 최진실이 느꼈을 황당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웃음을 짓는 자가 있었을 것임은 자명한 바이다. 참고할 만한 경우가 있긴 한데 최태원이 그에 해당될 수 있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 운운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배국남 본인이 그 대단하다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고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배국남은 최진실도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안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코 어렵지 않은 진실을 이제라도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을 지키며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편에 선 행태라는 것은 상식이다. 배국남류의 그 중립 속에 피해자가 죽었고 그나마 정의가 살아있어 가해자도 죽은 것이다. 배국남류는 애시당초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살려야 했고 그러면 가해자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죽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국남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자신의 편에 서주는 수많은 중립자들이 가해자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뭔가를 잘못한들 두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위법을 저지를 가능성 희박하고 더구나 자식들의 생부가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임이 만방에 알려진 마당에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사회적·경제적 지위상으로도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위법을 저지른 바 없으니 소송이혼 대상 안된 것인데, 배국남이 2005년 9월 18일이라는 날에 즉 거구의 근육질 남성에게 최진실이 폭행을 당한 지 일년 정도 된 시점에, 그 폭행 사건 여파로 피해자로서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황당한 일도 겪고 있던 최진실에게 근거없는 공격을 한 것이 과연 최진실의 사망에 기여한 바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임이 입증된 자를 향해 그렇게 공격을 할 만큼 한가했으면 가해자를 더 가열차게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바이고 피해자 최진실이 사망할 확률을 낮추는 행위였다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어도 최진실을 향한 공격이 부당할 판에 도대체 피해자로서 이혼한 최진실에 대해 무슨 근거로 배국남은 그리도 당당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바이다. 최진실이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했는데 어찌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이 바보라서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하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겠느냐를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이라는 거시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정형돈 본인이 연예 활동 중단이든 뭐든 알아서 잘 판단하여 행동한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발생한 여론 조작이, 폭행 사건이, 폭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상이 되는 일이 과연 사생활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이걸 처리하는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걸 처리하는 일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는 뜻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이토록 허술한 배국남이 최진실이 배병수 살해 교사범이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최진실이 안재환 살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이고 최진실 본인도 배국남류의 정신 세계에 대해 염려되는 바가 없었을지 생각해볼만한 바이다. 유책배우자도 아닌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자기 멋대로 여김에 의해 유책배우자 어머니를 둔 게 아닌 최환희와 최준희는 졸지에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된 것이 배국남이 선사한 현실이었는데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를 최진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배국남을 대중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누가 보면 최환희와 최준희 양육비도 배국남이 대고 있는 줄 알 듯이 그들의 삶을 매우 걱정하는 것이 배국남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근거없이 용감하게 최진실을 죽이는 길을 가더니 최진실이 사망하자 왜 최환희와 최준희의 수호천사인 양 구는 것인지 배국남의 그 저의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에 이혼을 원했건 이혼을 원하지 않았건 위법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이혼을 원했으면 공개된 이혼 사유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으면 더더욱 위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최진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더구나 최진실에 대해 최진실의 배우자는 덫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무리수를 두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최진실이 위법행위 현장 검증차 찾은 주차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위법행위 당사자였던 최진실의 배우자였고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흘려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는 행태를 보인 것도 최진실의 배우자였다. 최진실이 그 주차장에 간 것이나 최진실이 작성한 이혼합의서 내용이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최진실의 배우자는 그런 문제될 것 없는 사안을 떠들고 다니며 최진실이 자기가 거주하는 건물 주차장에 나타나서 기분나빴다고, 이혼합의서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중에게 최진실 혼내주라고 징징대었던 것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한 기자들도 이 자의 어리광에 동참했던 것이며 이 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최진실 나빠'를 외쳤던 대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당한 최진실이 언론 대응에 나서면 배국남류는 최진실이 '사생활 퍼포먼스'를 하고 앉았다고 손가락질하였던 바이다. 드러난 사실들 중에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공격을 당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국남류는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했던 것이다. 2005년 기사에서 배국남은 또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연기의 진부함에 고개를 돌린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 색인하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배국남은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다가 여론 조작 행태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자결했다. 배국남 등의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백승연 등은 그 인격 살인 행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였다고해도 무방했다. 이 중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 이 세 명의 팀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이 셋의 행태는 '최진실 사망'이라는 '골인'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2002년 12월에 조성민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동거하는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은 조성민 본인의 행동에 의해 입증되었다. 조성민의 말대로 자신의 선배 집에서 머물렀다면 최진실은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게임의 룰'이기 때문이다. 강일홍은 2016년 10월 24일 채널A < 풍문으로 들었쇼>에 출연하여 같은 건물에 조성민의 선배가 살았던 것이 맞았다고 말하며 논점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며 최진실이 2002년 12월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처럼 여론조작을 했다. 그 선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규명된 바 없다. 같은 건물에 '선배'가 아니라 '부모'가 살았어도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동거하는 정조 의무 위반 행위는 가능하다.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은 조성민을 비호하고 최진실을 치기 위해 여론조작을 한 바 있다. 선배라는 '모호한 관계'의 인물을 섭외하는 것, 그 선배라는 인물이 조성민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절차조차 밟지 못하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모든 상황의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소모킹 건'에 해당하는 행동을 조성민이 본인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일홍은 '조성민의 스피커'가 되어 '죽은 최진실 바보 만들기 작업' 내지 '여론조작'을 했다. 같은 방송에서 하은정은 2004년 8월 1일 조성민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조성민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유포하며 강일홍과 더불어 '조성민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하은정은 '조성민이 2004년 8월 1일 그 야심한 밤에 최환희의 생일 선물 문제를 의논하러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방송에 나와 그대로 유포하고 있나?'는 물음이 가능한 행태를 이 방송에서 보여주었다. 이 날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얼굴만 잠깐 보고 간다며 최진실을 설득하여 최진실 자택 진입에 성공했었다. 즉 하은정은 가해자 조성민의 일방적 주장을 열심히 유포했다. 이 방송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대오도 출연자로서 같이 앉아 있었는데, 조성민의 귀가가 늦어 최진실이 조성민이 머물고 있었던 건물의 주차장에 간 것처럼 말하는 다른 출연자의 말에 김대오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5일 본인 사무실(C&C컴퍼니)에서 기거하겠다고 하며 가출을 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조성민의 귀가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논리상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2002년 12월 17일 새벽에 이 사무실을 찾았을 때 조성민은 거기에 없었고 실상 조성민은 이 사무실 옆 건물에 있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 12월 5일에 가출했다는 사실이 허위라면 이 또한 최진실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기 때문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게임의 룰'이다. 최진실은 2002년 12월 18일부터 2004년 9월 1일까지 자신이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언론을 통해 한 말들이 모두 진실임을 입증했다. 이러한 입증 노력은 '죽은 최진실'이 '살아있는 강일홍, 하은정, 김대오'에게 더 이상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조작하지 말라고 말하는 셈이기도 했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하며 이혼 문제를 떠벌리고 다녔다. 이에 최진실은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법적으로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였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최진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건이었다. 이혼 문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악의적으로 주동한 사람은 조성민이었다. 합법적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 편견의 대상인 이혼에 대해 최진실은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받으라고 말하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상대하며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피해자 행세를 하였던 것이다. 즉 최진실은 유책배우자도 아니었고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2년 후인 2004년 8월 최진실을 안심시키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한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질렀고, 이 범죄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 광고주 <신한>은 책임을 물었다. 이혼은 합법적 행위이고 이혼 문제는 이미 2년 전에 가해자 조성민에 의해 널리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이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이 책임질 부분은 없었다. 최진실은 쌍방 폭행이라는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더불어 이혼 여부에 대해 '시간을 두고 결정하겠다'고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자신을 폭행범으로 지칭한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아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관련 분야 세계적 전문가도 <신한>의 소송 제기에 대해 시대 착오적이라고 판단내렸다.
최진실의 죽음은 2008년 정기 국회 기간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당과 야당 간에 공방이 이루어졌던 사안이었다. 정기 국회는 통상 매년 9월에서 11월에 걸쳐 이루어지고 이 기간에 국정 감사도 행해진다. 이 시기에 3S 정책의 일환 혹은 충격 상쇄 아이템의 일환으로 선정적인 연예인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는 통설이 있다.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유언비어도 2008년 9월에 SNS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2009년 6월에 중간 유포자만 처벌받고 최초 유포자는 오리무중인 채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최진실이 《그대를 알고부터》 촬영 초기 인터뷰에서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할 계획이라고 말했던 점, 주인공으로서 드라마 출연 중에 임신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조성민이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과 여론 조작 등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이 임신이 조성민의 스텔싱에 의해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최진실은 이 임신을 '계획 임신'이라고 말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피임 실패'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게 자식의 자존감에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2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 통상 콘돔 피임법을 활용했다. 최진실의 두 번째 임신이 공개된 후 조성민이 인터뷰를 한 것이 있는데 각자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고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획 임신이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조성민이 최진실과 성관계를 할 때 콘돔을 끼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랬으면서 2002년 12월 18일 최준희가 간통으로 잉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여론 조작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진실에게 둘째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은 있었기에 '계획 임신'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임신 시기가 계획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조성민은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이 확인된 바 있고 더불어 최진실의 배우자 자리에 '채용'되기 위해 '자살쇼'도 벌인 인물이므로 이러한 상황 연출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임산부(妊産婦) 최진실을 대상으로 갖은 위법을 공개적으로 저지르며 부모로서 실격인 자임이 널리 공유되었고 이에 정자저장소로 전락하였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007년 11월 2일 기사를 통해 서병기는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두고 최진실의 이혼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했다. 가해자 조성민이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면서 가정법원에는 못가고 기자들을 상대로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닌 것 때문에 최진실은 명예훼손을 당한 직접적 피해자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이혼 당시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이혼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성민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탓이다"라고 서술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가해자로 두고 최진실을 비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해결하기 위해 기자들을 상대했을 뿐이었다. 즉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서병기로부터 비난받을 근거가 없었다. 그런 근거가 있었다면 이는 이혼 사유를 발생시킨 것이 되는 바이고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하는 것으로 그 진위가 검증이 될 사안이었으나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으로부터 이혼 청구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것으로 최진실은 제3자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한 바가 없음이 입증되었다. 조성민은 자신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인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 혹은 쌍방 과실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하고 다녔고 이에 최진실은 피해자로서 그것이 조성민의 일방 폭행 혹은 일방 과실임을 확실히 하는 대응을 하였는데, 가해자 조성민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한 서병기의 행태는 조성민의 그러한 여론 조작이 잘 먹혔다는 증거였다. 즉 가해자 조성민은 언론을 통해 피해자 최진실을 향해 2차 공격을 함으로써 재미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법에서 규정하는 이혼유책주의는 피해자 최진실의 편이었고 이에 의거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은 근원에서부터 성립될 수 없는 논리였다. 이러한 여론 조작은 2004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에 의거해 완전하게 제압되었고 이는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졌는데, 2005년에 출연한 작품이 큰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방송사 시상식에서 최진실이 네티즌상을 받는 것으로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조성민의 이간책(離間策)이 실패했음이 단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사실관계와는 별개로 서병기 같은 사람들은 2004년 9월로부터 3년이 지난 2007년 11월에도 조성민의 입장에 서서 조성민의 노림수대로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여론 조작의 흐름을 이어갔다. 더욱이 '온갖 추잡한 것들을 생중계'한 건 언론이었다. 즉 서병기의 논리에 따르면 조성민과 언론이 노린 것은 최진실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었고 최진실에 대한 서병기의 공격은 그 목적이 잘 달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또 서병기는 "아파트 분양광고 모델 계약 뒤 사생활 관리를 잘못해 기업 이미지에 입힌 손해액이 30억원이 될지는 법원이 결정할 문제다. 최진실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아파트의 분양이 안 됐는지는 법원이 판단하면 된다.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 사건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은 대중스타의 이미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했는데, 실제 상황에서 위법행위의 피해자 연예인에게 '이미지' 운운 하는 서병기의 논리는 드라마상에서 폭력 행위의 피해자가 되어 얼굴이 멍든 모습(분장)을 널리 알린 배우에게도 '이미지' 운운 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연예인이 녹화 중 선반에서 떨어진 물건에 얼굴이 맞아 멍이 든 모습이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경우에도 '이미지' 운운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두 경우도 광고주의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소송 제기를 문제삼는 해당 연예인이 문제라는 논리였다. 그 소송 제기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해당 연예인이 문제라는 논리였다. 또 그 연예인이 무료 변론을 받고 대신 소송 비용에 상응하는 돈을 기부한다고 하면 그 연예인의 기부 전적을 운운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또 서병기는 "그러나 명망있는 변호사들의 집단 무료 변론에 대해 대중들은 지극히 냉소적이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서병기는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자결했다. 이러한 행태를 보여 놓고 서병기는 최진실 사망 후 배려 운운 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최진영 사망 후에도 한 말씀 남기기도 했다.
2009년10월 6일 기사에서 김범석은 배병수 살해범 전용철이 최진실에 대해 쓴 편지를 기사화했다. 이를 통해 김범석이 최진실 생전에도 전용철과 친분을 나눈 사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생전 전용철은 기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피해자 행세를 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배병수 사망 관련 교사범인 양 공격을 당했는데, 신동아 기자 조성식은 2008년 11월 25일 "‘독종기자’라는 소리를 듣던 나였지만, 옥중의 전씨한테서 들은 얘기를 차마 최씨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에게나 배씨에게나 명예스럽지 못한 불미스러운 소문인데다 전씨의 얘기도 전언(傳言)에 지나지 않았기에. 다만 최씨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던 또 다른 소문에 대해서는 내 나름의 생각을 밝히고 싶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전씨의 살해동기는 배씨에게 당한 인격적 모욕이었다. 그러나 구치소 접견실에서 전씨가 내게 ‘고백’한 중요한 살해 동기는 여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은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최씨가 아니었다. 전씨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제3의 여성이었다. 사건 초기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면서 전씨가 밝힌 ‘진실’은 그랬다"라고 서술하였다. 2002년 12월에 조성민은 이 소문을 적절히 활용하며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펼쳤었다.
김범석은 전용철이 최진실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매체에 실었다.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5일과 광고주 신한의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을 향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재판 직후인 2009년 10월 6일이 그 날이다. 이 두 기사는 최진영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일에 해당되었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생전에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여론조작의 피해를 당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동생으로서 지켜봤을 최진영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전용철을 연관시키는 기사를 내놓았다는 것은 여론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에 대한 최진영의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범석은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고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에게나 쾌감을 줄 수 있을 뿐 누구에게도 유익함이 없는 행위로 최진실의 유가족만 고통 속에 빠뜨리는 행동이었다. 또 이건 미성년자들인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와 최진실의 딸 최준희도 죽여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나 진배없었다. 기자로서 전용철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생전에 어떤 여론조작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만한 입장에서 또 다른 여론조작으로 기어이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또 전용철을 언급하는 기사를 쓴 것은 최진영을 죽여보겠다는 행위나 진배없었고 실제로 최진영은 두 번째 기사가 나온 그 다음해 3월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12월에 과거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최진실의 숨통을 죄었던 조성민과, 김범석은 이런 식으로 서로 협력관계에 놓인 사이임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의 상고재판은 가해자 조성민의 폭력행위에 기인한 재판이었기에 최진영은 객관적으로 엄청난 분노의 감정 속에 있었을 상황이었다. 이는 보통의 대중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범석은 그런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세상이 계속 최진실이 교사범인 양 여기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는 것을 막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바였다. 더구나 2009년 8월에는 최진실 유골 도난 사건도 발생했었다. 요약을 하자면 최환희와 최준희는 김범석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들이 자신들의 어머니 사망 직후와 삼촌의 사망 직전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10월 15일 기사가 작성된 때는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이 최환희와 최준희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며 사기행위 피해자 최진영을 분노케 한 상황이었다. 이 때 김범석은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에게 힘이 되는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물론 김범석은 최진실 생전에도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입장에 섰었다. 더불어 김범석은 2008년 11월호 신동아에 원정까지 가면서 최진실을 조롱하는 일에 열정을 보였다. 이 또한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일에 해당되었다. 신동아도 타 매체 기자의 기사를 실어주고 더 나아가 표지에 제목을 크게 실어줄 만큼 김범석과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김범석이 신동아에 실은 기사의 표지 제목대로라면 최진실이 조성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은 줄 알겠으나 실정은 전혀 달랐으니 최진실은 2002년 12월부터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자리를 깔아 준 입장이었고 이에 조성민이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진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것은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은 1998년 12월에 조성민의 실체를 알았다면 이후 조성민이 아무리 '자살쇼'를 하며 자신에게 들러붙었어도 동정심을 갖지도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을 가치관을 가졌음을 드러낸 바 있는 인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조성민의 위법성을 인내심을 갖고 문제삼았을 뿐이었는데 김범석은 법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성민을 소거하는 절차를 차분히 밟고 있었는데 김범석은 그러고 살았던 것이다. 누구의 인생에서건 조성민 같은 인물이 알아서 떨어져나가주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식들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가주면 좋다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즉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은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대중을 앞에 두고 입증해 보였다. 신동아를 통해 김범석은 술집 마담의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도우며 자신의 정체성이 술집 마담의 손발임을 널리 알렸다. 김범석의 이런 행태는 최진영이 우습고 정옥숙이 우습고 최환희가 우습고 최준희가 우습고 대중이 우습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의 황호택의 노림수와도 통하는 것이었다. 황호택처럼 김범석도 조성민을 비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여성조선2008년 10월호 백은영의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백은영>: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를 모르더라도 이제는 누구나 다 알아버린 톱스타 최진실과의 결혼과 파경과 이혼과 갈등의 사건들…. 지난 몇 년간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재기의 구슬땀을 흘렸지만 전성기를 지난 세월의 무게는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불신의 벽이었다.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 지난 몇 년간 그의 몸과 마음은 모두 만신창이가 됐다. <조성민>: 당시 사건 이야기는 사실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 진실을 말해달라고 부탁해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는데 제 이야기는 이내 묻혀버렸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하소연해도 결국 제 하소연보다는 꼬투리만 잡힐 때가 많았죠. 당시 저는 일본생활을 접고 미국 진출을 꿈꿨어요. 스프링 캠프에 참여해 좋은 인상을 남기고 제의를 해오는 구단이 있으면 입단 테스트를 받고 미국 진출을 하려고 했어요. 그 꿈이 좌절된 셈이죠. 팔자려니 생각해요. 억울하기도 하지만 누가 알아주나요. 이제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저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변명으로만 들을 거예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그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해봐야 저 혼자만의 메아리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고 따로 있잖아요./ <조성민>: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한 것도,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오래됐어요. 예전에 아들을 만나러 갔을 때 심한 잡음이 나온 이후 계속 피하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보고 싶으면 찾아올 것이고, 만약 보기 싫어하면 그때 가서…. <백은영>: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망설여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그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라고 말했다.
김도형은 2004년 6월 25일 '상호비방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양비론을 펼쳤고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섰다. 조성민은 이걸 노리고 가정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서 떠들 이야기들을 기자들을 불러놓고 하였다고 봐도 무방한 바였다. 김도형은 조성민의 뜻대로 잘 움직여 준 셈이었다. 조성민이 펼친 여론조작에 대해 그 피해자 최진실이 언론 대응을 하며 방어권을 행사한 일은 김도형류에 의해 이렇게 매도되었고 이는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일이었던 셈이었다. 가해자와 한 패가 되어 움직이는 언론인들을 보며 피해자 최진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가족)을 상대로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를 저질렀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현재 정조의 의무 위반 행위, 폭력 행위, 사기 행위를 이미 저지른 상태였고 그 각각에 대해 여론조작을 가동시켜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모는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명예훼손 행위, 허위사실유포 행위도 추가되었다. 졸지에 가해자로 몰린 최진실이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언론 대응을 했던 것이고 기자나 대중 입장에서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에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를 제공했던 것이다.(이혼유책주의라는 '리트머스 종이'는 최진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법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혼은 합의이혼이거나 소송이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최진실은 이혼 불가 입장을 표함으로써 합의이혼 가능성을 배제시켰다. 그러므로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를 밟거나 못밟거나 둘 중 하나였다. 조성민은 후자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여론조작범임을 입증했다. 사실 조성민이 가정법원은 못가고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한 행동 자체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즉 교차검증이 되는 바였다. 조성민은 2003년 10월에도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여론조작을 펼쳤었고 이에 대해 최진실은 2003년 12월에 배우 활동 복귀를 앞두고 마련한 기자회견 자리를 빌어 이혼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확실히 하며 여론조작을 제압했다. 주지하다시피 그 후에도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 없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를 한 최진실에 대해서도 김도형은 '어정쩡'이라는 용어를 쓰며 여론조작을 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꼽다는 본인의 심경을 드러낸 바였고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라고 한겨레라는 언론권력을 이용해서 압력을 행사한 셈이었다. 안그러면 계속 '너를 후려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었다. 김도형은 조성민만 비난하면 되는 상황에서 최진실의 직업활동을 물고늘어지는 이상한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2004년 6월 기준으로, 조성민은 자신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며 떠든 이야기들을 가정법원 판사 앞에 가서 똑같이 하고 그 증거도 제시하면 이혼이 완료되는 바였다. 2004년 기준으로 최진실은 배우로서든 피해자로서든 본인의 길을 갔고 조성민도 피해자로 자칭한 본인의 길을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조성민이었고 두 달 후 2004년 8월 1일 최진실 자택을 찾아가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이나 행사한 것이 조성민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의 궤변에 김도형류는 계속 힘을 실어주며 피해자 최진실의 숨통을 조여갔다. 사실관계가 이러함에도 김도형은 이에 대해 반성은 전혀 없고 2011년까지도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가는 모습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었다. 이런 부류를 최진실이 무슨 수로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인 바였다. 최진실 입장에 처한 누구라도 김도형류의 이런 행태를 지켜보며 여론조작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그 여론조작의 중심에 선 조성민을 처리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신의 말이 허위이면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될 것이고 법정에서 이혼 판결이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도형은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그저 최진실이 2003년 12월 '지금은 이혼은 할 수 없다'고 한 것에 대해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중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했을 따름이다. 최진실에 대해 이해는 할 수 없고 혹은 이해할 생각은 없고 비난은 하고 싶은 그런 본인의 심정을 드러낸 기사인지, 칼럼인지를 한겨레를 통해 썼고 이를 통해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 미끼를 던져 주었다. 김도형류는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를 계속 공격하며 여론조작범과 자신들이 공범임을 보여주었다. 같은 글에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대방에 대해 갈 데까지 가는 공방을 벌인 최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다시 대중 활동에 나선 결과 시청자의 평가는 혹독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며 자의적 해석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기도 하였다. 2004년에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았던 이유를 최진실의 여론조작제압행위 탓으로 돌리는 이 악랄함이 결국 2008년 최진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통상 드라마의 시청률은 다양한 이유로 낮을 수 있는 바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위법한 행위를 한 바 없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이었는데도 김도형은 최진실을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인 양 취급을 했던 것이다. 최진실은 위법한 행위를 하기는커녕 여론조작의 피해자였는데 김도형은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여론조작으로 최진실을 파렴치한으로 만들고 최진실이 파렴치한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것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모습이었다. 대중은 김도형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당신 말대로 최진실이 조성민을 부당하게 공격을 했는데 왜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중은 김도형은 철저하게 가해자 조성민 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바였다. 최진실로부터 공격당했다고 떠들고 다닌 것이 조성민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조성민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조성민의 여론조작을 제압한 것이라는 실체적 진실을 김도형은 필사적으로 가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Archived 2016년 6월 10일 - 웨이백 머신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배국남은 2016년 8월 4일 칼럼에서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고 썼다. 이는 최진실을 죽인 게 '스타 산업'이라는 논리였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겪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일에 최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최진실만 끌어들이기 그랬는지 배우 이은주도 같이 등판시켰다. 최진실은 연예 활동을 꾸준히 했던 인물로, 직업 활동 맥락이 정형돈과 달랐다. 최진실은 일찌감치 연예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타 산업'에 휘둘릴 객관적 상황도 짧았고 여론 조작이 유독 심하던 때에도 그에 개의치 않고 직업 활동을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썼던 혐오 세력들은 그런 최진실을 '잡초'라며 비아냥거렸었다. 즉 최진실에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이 최진실의 직업 활동을 방해했었다. 노년기에도 배우 활동을 하기를 원했던 최진실을 기어이 중년기에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존재들이었다. 최진실이 치열한 여론 조작의 터널을 뚫고 화려하게 배우 활동 복귀를 하였을 때 배국남이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를 보면 배국남이 왜 이 칼럼에 최진실을 끌어들였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때도 정형돈을 챙기듯 최진실을 챙겼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배국남은 개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어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에 대해서는 '스타 산업' 운운 하며 몹시 안쓰러워하는 기사를 썼는데 반해,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최진실에 대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도 스타급?'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썼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위법행위 피해자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개념 정리가 안 된 기자 배국남은 " ‘장밋빛 인생’으로 스타성을 회복한 최진실이 이제는 드라마외적인 사생활 퍼포먼스도 스타답게 해줬으면 한다"라고 2005년 9월 18일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같은 기간 거구의 근육질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던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배국남은 자신의 말대로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문제적 행동을 한 바 있었다면 최진실은 그 배우자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법적인 맥락 정도는 머릿 속에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자가 되었으면 한다'로 대응될 수 있는 바였다. 즉 배국남 또한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펼쳤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최진실이 소송이혼패소자이거나 배국남이 여론조작자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배국남 같은 존재들을 처리하는 카드였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3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가진 최진실에 대해 판 정리가 다된 시점인 2005년에 배국남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최진실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과도 통하는 바였다. 배국남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두어도 힘든 것이 연예인이라는 건데 그런 연예인을 상대로 외부에서 여론 조작까지 저지르며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 것인지를 배국남의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사생활 퍼포먼스'로 희화화되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최진실이 느꼈을 비애가 정형돈의 불안장애보다 과연 하찮은 것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그런 퍼포먼스를 펼칠 이유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연예 언론도 '스타 산업'의 일부라면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는 배국남의 서술은 맞을 수도 있겠다. 배국남의 행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A는 B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저지르고 그런 B는 우울증에 걸리고 A는 우울증에 걸려도 자유롭게 정신과 병원에 내원할 수 없는 B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고' 이런 스토리라인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후 B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A는 열심히 B를 비난해주고 그게 싫증나면 B의 죽음은 스타 산업 탓이라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 '무사 탈출' 되었던 바였다. 기자 배국남은 배우 최진실이 '이혼 거부 의사 카드'를 쓴 것이 바로 배국남 본인에게 최진실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 논리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기자답게 맥락을 살펴가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은 하면서 그 기자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대중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기자인 것이다. 배국남의 논리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한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면 최진실의 사망도 '사생활 퍼포먼스'인 셈이고 그게 퍼포먼스인 것은 언론이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고 최진실의 사망이라는 사생활을 자꾸 다루는 배국남은 왜 자꾸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사 조회수를 올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이나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꾸 다루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상관관계 1위에 해당되는 인물이 최진실임을 배국남도 잘 알 위치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또 최진실이 여론 조작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진실 규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음을 배국남은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하는 바이다. 피해자 최진실에게 퍼포먼스 운운 하며 침묵을 강요했던 배국남은 본인도 최진실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배국남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안위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며 금전적 이익을 취할 시간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이혼을 했을 때 실제 기뻐할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이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진실이 책임을 지게 될지, 배국남이 책임을 지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혼했을 때 그 후과를 최진실이 지게 될까, 배국남이 지게 될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진실 규명에 대해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금전적 이득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았던 바였다. 최진실은 기자들 좋으라고 진실 규명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도 짚어야 하는 바였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챙겨야 배국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정형돈도 여론 조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인지해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정형돈이 최진실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도 배국남은 과연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칭할지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실 규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함을 배국남은 깨달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천명에 의해 법적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가 없었다. 기자로서 이혼유책주의라는 상식도 갖추지 못해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내몰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는 데 기여했으면 스타 산업 운운에 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과오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다. 연예 언론의 악마성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를 팔아 돈을 버는 일에 연예 언론도 결코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이 칼럼은 그 점을 거의 짚고 있지 않다. 배국남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레브리티화한 사람(스타)의 자살에서는 전면적인 상품화로 인한 달콤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좌절, 상품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번민 등이 범벅된 고통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고 분석한다"라는 내용을 이 칼럼에 담음으로써 교묘하게 최진실을 치고 있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최진실은 자신의 상품화와 관련하여 염려할 객관적 위치도 아니었다. 최진실은 인기 그 자체로만 보면 차고넘치게 누려 늘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었다. 여론 조작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직업 활동에 방해로 작용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기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의해 사라진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잡아도 인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론 조작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을 제압해야 연예인이 부당하게 직업 활동을 방해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신뢰'가 자신의 무기였고 2002년까지도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면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찾곤 할 만큼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최진실은 직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갔던 것뿐이다. 배국남은 그 당시 누가 여론 조작을 주동했고 그에 대해 기자들이 어떻게 공범으로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하고 싶다면서 가정법원에는 가지 못한 자, 그 자가 가정법원은 가지 못한 채 기자들을 모아놓고 최진실을 비방하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실은 자들을 기록해야 다시 생사람을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서정희, 김주하 등 이혼을 원하는 유명인 중에 가정법원은 못간 채 기자들 불러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비방하며 여론 조작을 한 자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야 하는 바이다. 그래야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김주하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서정희와 김주하가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그런 행태의 피해자인데 배국남에게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의 되었으니 최진실이 느꼈을 황당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웃음을 짓는 자가 있었을 것임은 자명한 바이다. 참고할 만한 경우가 있긴 한데 최태원이 그에 해당될 수 있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 운운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배국남 본인이 그 대단하다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고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배국남은 최진실도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안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코 어렵지 않은 진실을 이제라도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을 지키며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편에 선 행태라는 것은 상식이다. 배국남류의 그 중립 속에 피해자가 죽었고 그나마 정의가 살아있어 가해자도 죽은 것이다. 배국남류는 애시당초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살려야 했고 그러면 가해자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죽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국남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자신의 편에 서주는 수많은 중립자들이 가해자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뭔가를 잘못한들 두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위법을 저지를 가능성 희박하고 더구나 자식들의 생부가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임이 만방에 알려진 마당에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사회적·경제적 지위상으로도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위법을 저지른 바 없으니 소송이혼 대상 안된 것인데, 배국남이 2005년 9월 18일이라는 날에 즉 거구의 근육질 남성에게 최진실이 폭행을 당한 지 일년 정도 된 시점에, 그 폭행 사건 여파로 피해자로서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황당한 일도 겪고 있던 최진실에게 근거없는 공격을 한 것이 과연 최진실의 사망에 기여한 바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임이 입증된 자를 향해 그렇게 공격을 할 만큼 한가했으면 가해자를 더 가열차게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바이고 피해자 최진실이 사망할 확률을 낮추는 행위였다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어도 최진실을 향한 공격이 부당할 판에 도대체 피해자로서 이혼한 최진실에 대해 무슨 근거로 배국남은 그리도 당당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바이다. 최진실이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했는데 어찌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이 바보라서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하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겠느냐를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이라는 거시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정형돈 본인이 연예 활동 중단이든 뭐든 알아서 잘 판단하여 행동한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발생한 여론 조작이, 폭행 사건이, 폭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상이 되는 일이 과연 사생활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이걸 처리하는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걸 처리하는 일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는 뜻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이토록 허술한 배국남이 최진실이 배병수 살해 교사범이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최진실이 안재환 살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이고 최진실 본인도 배국남류의 정신 세계에 대해 염려되는 바가 없었을지 생각해볼만한 바이다. 유책배우자도 아닌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자기 멋대로 여김에 의해 유책배우자 어머니를 둔 게 아닌 최환희와 최준희는 졸지에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된 것이 배국남이 선사한 현실이었는데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를 최진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배국남을 대중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누가 보면 최환희와 최준희 양육비도 배국남이 대고 있는 줄 알 듯이 그들의 삶을 매우 걱정하는 것이 배국남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근거없이 용감하게 최진실을 죽이는 길을 가더니 최진실이 사망하자 왜 최환희와 최준희의 수호천사인 양 구는 것인지 배국남의 그 저의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에 이혼을 원했건 이혼을 원하지 않았건 위법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이혼을 원했으면 공개된 이혼 사유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으면 더더욱 위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최진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더구나 최진실에 대해 최진실의 배우자는 덫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무리수를 두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최진실이 위법행위 현장 검증차 찾은 주차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위법행위 당사자였던 최진실의 배우자였고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흘려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는 행태를 보인 것도 최진실의 배우자였다. 최진실이 그 주차장에 간 것이나 최진실이 작성한 이혼합의서 내용이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최진실의 배우자는 그런 문제될 것 없는 사안을 떠들고 다니며 최진실이 자기가 거주하는 건물 주차장에 나타나서 기분나빴다고, 이혼합의서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중에게 최진실 혼내주라고 징징대었던 것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한 기자들도 이 자의 어리광에 동참했던 것이며 이 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최진실 나빠'를 외쳤던 대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당한 최진실이 언론 대응에 나서면 배국남류는 최진실이 '사생활 퍼포먼스'를 하고 앉았다고 손가락질하였던 바이다. 드러난 사실들 중에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공격을 당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국남류는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했던 것이다. 2005년 기사에서 배국남은 또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연기의 진부함에 고개를 돌린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 색인하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배국남은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다가 여론 조작 행태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자결했다. 배국남 등의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백승연 등은 그 인격 살인 행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였다고해도 무방했다. 이 중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 이 세 명의 팀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이 셋의 행태는 '최진실 사망'이라는 '골인'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2002년 12월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하며 이혼 문제를 떠벌리고 다녔다. 이에 최진실은 언어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법적으로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였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최진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 사건이었다. 이혼 문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악의적으로 주동한 사람은 조성민이었다. 합법적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 편견의 대상인 이혼에 대해 최진실은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받으라고 말하는 입장이었고 이에 대해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상대하며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피해자 행세를 하였던 것이다. 즉 최진실은 유책배우자도 아니었고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2년 후인 2004년 8월 최진실을 안심시키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한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질렀고, 이 범죄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에 대해 광고주 <신한>은 책임을 물었다. 이혼은 합법적 행위이고 이혼 문제는 이미 2년 전에 가해자 조성민에 의해 널리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이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관련해서 피해자 최진실이 책임질 부분은 없었다. 최진실은 쌍방 폭행이라는 여론 조작을 처리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더불어 이혼 여부에 대해 '시간을 두고 결정하겠다'고 기존 입장을 견지하며 자신을 폭행범으로 지칭한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아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에 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관련 분야 세계적 전문가도 <신한>의 소송 제기에 대해 시대 착오적이라고 판단내렸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이혼의 방식에는 내용상 합의 이혼(협의 이혼, 조정 이혼)과 소송 이혼(재판에 의한 이혼)의 두 가지가 있다.
최진실이 유책배우자인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일은 최진실의 자녀가 최진실과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안이었다. 즉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모함은 최진실과 대중 사이에 대한 이간책(離間策)일 뿐만 아니라 최진실과 최진실의 자녀 사이에 대한 이간책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발화한 행위를 두고 마치 비혼자가 청혼을 하는 행위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아 기사를 쏟아냄으로써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는 언론이 이혼유책주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음을 드러내는 행태로도 파악될 수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성애적 관계를 맺자는 뜻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위법행위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에게는 처벌을 가하고, 피해자는 배상을 받기 위한 행동이다. 언론이 이것을 성애적 관계를 맺기 위한 행동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가해자를 비호하기 위한 행동과 다름없는 것이다. 최진실은 언론을 통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 관심 없음을 확실히 했었고 일관되게 자식들의 안위를 염려했을 뿐이었다. 언론은 최진실의 이런 스탠스를 무시함으로써 최진실을 가지고 놀았다. 더불어 유책배우자로 몰린 자가 '이혼할 의사 없음'을 표하는 건 그 주장을 한 자로 하여금 소송이혼 절차 밟아 그 주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 것이면서 그렇게 입증해서 이혼 판결 받아 떨어져나가라는 뜻이라는 것도 무시했던 바이다. 여기서 짚어두어야 할 것은 최진실의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인데 이런 최진실의 행보에 아니꼬움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억측을 내놓으며 최진실을 조롱한 언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4년 폭행 사건 직후 '최진실 이혼 결정 임박'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은 신문이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이혼과 관련하여 진도가 나가는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라는 범죄행위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기혼자가 되는 일, 비혼자가 되는 일에 병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순간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언론은 교활하게도 이혼을 원한다며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떠들고 다닌 최진실의 배우자에게는 이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혼 왜 안하고 그러고 다니느냐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렇게 이상한 짓 하고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정법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최진실이 2002년 '이혼할 의사 있음' 의사 표시를 했을 경우 최진실의 배우자의 여론 조작 덫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최진실이 그런 길을 가기를 바랐으나 최진실은 영리하게도 그 길을 피했던 바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가 닫힌 계를 설정함에 시시비비가 선명하게 가려졌던 것이다. '이혼할 의사 없음' 의사 표시는 여론 조작을 제압하는 으뜸패였는데 언론은 '왜 이혼하지 않는다는 거냐?'라고 물고늘어지거나 '그렇게 지금 배우자가 좋으냐?'라고 물고늘어지며 이 카드를 무력화시키려고 애썼다. 최진실은 독립된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비혼 상태와 혼인 상태 사이에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를 폄훼하는 대한민국 사회의 후진성을 고려하여 친권자로서 성의를 표하는 모양새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고 유책배우자로 몰린 유명인으로서 그 명예훼손 행태를 제압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며 그런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자식들의 생부의 실체를 명확히 하여 자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친권자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일 정도가 필요했던 바이다. 이러한 서사에 의거해 비망록에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자식들(아들: 2세~4세, 딸: 태아~2세)에게 친권자로서 제대로 인정받는 길을 가고자 노력했고 미래의 자식들과의 완전한 소통을 지향했음을 밝혀두었던 것이다. 정옥숙의 공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최진실은 위법행위의 피해자로서 겪은 상황을 상술한 일기도 남김으로써 소송이혼 절차를 밟게 될 경우 제출할 자료도 다각도로 취합해간 철저함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는 바이다. 거기다가 대한민국 연예 언론은 최진실이 '폭로'라는 무리수(위법)를 두었다는 입증된 바 없는 주장까지 퍼뜨리며 최진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 그런 일련의 가해 행위의 존재는 무시한 채 그로 인한 최진실의 고통 호소는 상대적으로 부각시킴과 동시에 이를 성애적 관계가 마음대로 안풀려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스토리라인을 잡아 최진실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행태의 효과는 피해자의 고통은 희화화시키고 가해자의 악랄함은 감추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펼치는 이들의 장난질을 두고 최진실은 2007년MBC무릎팍도사에 출연하였을 때 '엉클어진
퍼즐'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때 최진실은 어디서부터 다시 퍼즐을 맞춰가야 할지 막막했었다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연예 언론이 피해자 최진실의 말의 권위를 흔드는 과정은 교활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었고 이에 대중으로하여금 피해자가 피해자같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을 넘어 마치 가해자보관됨 2016-04-07 - archive.today처럼 이미지화하게끔 만들었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배국남은 2016년 8월 4일 칼럼에서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고 썼다. 이는 최진실을 죽인 게 '스타 산업'이라는 논리였다. 코미디언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겪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일에 최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최진실만 끌어들이기 그랬는지 배우 이은주도 같이 등판시켰다. 최진실은 연예 활동을 꾸준히 했던 인물로, 직업 활동 맥락이 정형돈과 달랐다. 최진실은 일찌감치 연예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스타 산업'에 휘둘릴 객관적 상황도 짧았고 여론 조작이 유독 심하던 때에도 그에 개의치 않고 직업 활동을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최진실을 죽이려고 애썼던 혐오 세력들은 그런 최진실을 '잡초'라며 비아냥거렸었다. 즉 최진실에게 늘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펼쳤던 존재들이었다. 그 존재들이 최진실의 직업 활동을 방해했었다. 노년기에도 배우 활동을 하기를 원했던 최진실을 기어이 중년기에 죽게 만든 것도 그런 존재들이었다. 최진실이 치열한 여론 조작의 터널을 뚫고 화려하게 배우 활동 복귀를 하였을 때 배국남이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를 보면 배국남이 왜 이 칼럼에 최진실을 끌어들였는지 그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그 때도 정형돈을 챙기듯 최진실을 챙겼었는지 살펴볼 일이다. 배국남은 개인적으로 불안장애가 있어 활동을 중단한 정형돈에 대해서는 '스타 산업' 운운 하며 몹시 안쓰러워하는 기사를 썼는데 반해, 여론 조작을 극복하고 활발한 활동을 한 최진실에 대해서는 '위기 관리 능력도 스타급?'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썼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위법행위 피해자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개념 정리가 안 된 기자 배국남은 " ‘장밋빛 인생’으로 스타성을 회복한 최진실이 이제는 드라마외적인 사생활 퍼포먼스도 스타답게 해줬으면 한다"라고 2005년 9월 18일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같은 기간 거구의 근육질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피해자이기도 했던 최진실은 세상으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 '배국남은 자신의 말대로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에 걸쳐 문제적 행동을 한 바 있었다면 최진실은 그 배우자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법적인 맥락 정도는 머릿 속에 기본적으로 장착한 기자가 되었으면 한다'로 대응될 수 있는 바였다. 즉 배국남 또한 최진실에 대해 여론 조작을 펼쳤었던 존재였던 것이다. 최진실이 소송이혼패소자이거나 배국남이 여론조작자이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은 배국남 같은 존재들을 처리하는 카드였었다.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3년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가진 최진실에 대해 판 정리가 다된 시점인 2005년에 배국남은 엉뚱한 소리를 하며 최진실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 비유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2008년 10월 1일 밤 "다 필요없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죽을 거야, 죽으면 다 끝이 나는거야. 더 이상 싸우기도 말하기도 상대하기도 싫어"라고 최진실이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과도 통하는 바였다. 배국남의 논리대로라면 그냥 두어도 힘든 것이 연예인이라는 건데 그런 연예인을 상대로 외부에서 여론 조작까지 저지르며 공격을 했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을 것인지를 배국남의 이 칼럼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바였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애썼던 모습이 '사생활 퍼포먼스'로 희화화되었을 때 한 인간으로서 최진실이 느꼈을 비애가 정형돈의 불안장애보다 과연 하찮은 것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그런 퍼포먼스를 펼칠 이유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연예 언론도 '스타 산업'의 일부라면 "최진실의 비극은 스타 산업의 이면, 그 자체다"라는 배국남의 서술은 맞을 수도 있겠다. 배국남의 행태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A는 B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저지르고 그런 B는 우울증에 걸리고 A는 우울증에 걸려도 자유롭게 정신과 병원에 내원할 수 없는 B 같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고' 이런 스토리라인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이고 이후 B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 A는 열심히 B를 비난해주고 그게 싫증나면 B의 죽음은 스타 산업 탓이라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 '무사 탈출' 되었던 바였다. 기자 배국남은 배우 최진실이 '이혼 거부 의사 카드'를 쓴 것이 바로 배국남 본인에게 최진실이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 논리대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기자답게 맥락을 살펴가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은 하면서 그 기자 일을 해줬으면 한다라고 대중이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하는 바였다. 최진실이 어떤 맥락 속에서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 기자인 것이다. 배국남의 논리대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이 한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면 최진실의 사망도 '사생활 퍼포먼스'인 셈이고 그게 퍼포먼스인 것은 언론이 다루어 주었기 때문이고 최진실의 사망이라는 사생활을 자꾸 다루는 배국남은 왜 자꾸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펼치며 기사 조회수를 올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배국남은 본인이나 '최진실 사생활 퍼포먼스'를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바였다. 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자꾸 다루어서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이에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상관관계 1위에 해당되는 인물이 최진실임을 배국남도 잘 알 위치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또 최진실이 여론 조작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진실 규명에 나설 이유가 없었음을 배국남은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된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하는 바이다. 피해자 최진실에게 퍼포먼스 운운 하며 침묵을 강요했던 배국남은 본인도 최진실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배국남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안위를 걱정하는 칼럼을 쓰며 금전적 이익을 취할 시간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게 깊이 사죄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되었다는 것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이혼을 했을 때 실제 기뻐할 사람이 누구였을지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이후 발생하는 일에 대해 최진실이 책임을 지게 될지, 배국남이 책임을 지게 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진실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혼했을 때 그 후과를 최진실이 지게 될까, 배국남이 지게 될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였다. 그 진실 규명에 대해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금전적 이득을 보고 나중에는 그것을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았던 바였다. 최진실은 기자들 좋으라고 진실 규명에 나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것도 짚어야 하는 바였다. 이 모든 메커니즘을 챙겨야 배국남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정형돈도 여론 조작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이 없을 것임을 인지해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이 그렇게 사랑하는 정형돈이 최진실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을 때도 배국남은 과연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칭할지는 알 수 없는 바이다. 최진실이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한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진실 규명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함을 배국남은 깨달을 때도 되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면 그 천명에 의해 법적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진실은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 바가 없었다. 기자로서 이혼유책주의라는 상식도 갖추지 못해 한 인간을 고통 속에 내몰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는 데 기여했으면 스타 산업 운운에 그 사람을 끌어들여 자신의 과오를 가릴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제대로 복기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다. 연예 언론의 악마성을 해부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를 팔아 돈을 버는 일에 연예 언론도 결코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이 칼럼은 그 점을 거의 짚고 있지 않다. 배국남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셀레브리티화한 사람(스타)의 자살에서는 전면적인 상품화로 인한 달콤함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좌절, 상품화로 해결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번민 등이 범벅된 고통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고 분석한다"라는 내용을 이 칼럼에 담음으로써 교묘하게 최진실을 치고 있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상황에 크게 문제의식을 가졌을 따름이었다. 최진실은 자신의 상품화와 관련하여 염려할 객관적 위치도 아니었다. 최진실은 인기 그 자체로만 보면 차고넘치게 누려 늘 스토킹의 대상이 되었었다. 여론 조작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의 직업 활동에 방해로 작용하는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인기가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론 조작에 의해 사라진다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로잡아도 인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여론 조작을 바로잡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이다. 여론 조작이 현실적으로 힘을 가지는 것을 제압해야 연예인이 부당하게 직업 활동을 방해받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신뢰'가 자신의 무기였고 2002년까지도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면 최진실을 광고 모델로 찾곤 할 만큼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최진실은 직업인으로서 가야 할 길을 갔던 것뿐이다. 배국남은 그 당시 누가 여론 조작을 주동했고 그에 대해 기자들이 어떻게 공범으로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혼이 하고 싶다면서 가정법원에는 가지 못한 자, 그 자가 가정법원은 가지 못한 채 기자들을 모아놓고 최진실을 비방하고 그걸 그대로 기사로 실은 자들을 기록해야 다시 생사람을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서정희, 김주하 등 이혼을 원하는 유명인 중에 가정법원은 못간 채 기자들 불러놓고 자신의 배우자를 비방하며 여론 조작을 한 자가 있었는지 배국남은 생각해야 하는 바이다. 그래야 최진실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어떤 황당한 일을 겪은 것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정희가, 김주하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서정희와 김주하가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진실은 그런 행태의 피해자인데 배국남에게 '사생활 퍼포먼스' 운운의 대상의 되었으니 최진실이 느꼈을 황당함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웃음을 짓는 자가 있었을 것임은 자명한 바이다. 참고할 만한 경우가 있긴 한데 최태원이 그에 해당될 수 있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 운운 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배국남 본인이 그 대단하다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고 그 여파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배국남은 최진실도 머리가 있고 그 머리 안에 뇌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코 어렵지 않은 진실을 이제라도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은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중립을 지키며 양비론을 펼치는 것이 바로 가해자 편에 선 행태라는 것은 상식이다. 배국남류의 그 중립 속에 피해자가 죽었고 그나마 정의가 살아있어 가해자도 죽은 것이다. 배국남류는 애시당초 피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살려야 했고 그러면 가해자도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개과천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사망 이후에도 죽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국남류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상식적이다. 자신의 편에 서주는 수많은 중립자들이 가해자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뭔가를 잘못한들 두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위법을 저지를 가능성 희박하고 더구나 자식들의 생부가 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임이 만방에 알려진 마당에 자신이 완벽을 추구해도 모자를 판에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사회적·경제적 지위상으로도 위법을 저지를 이유 전혀 없었고, 위법을 저지른 바 없으니 소송이혼 대상 안된 것인데, 배국남이 2005년 9월 18일이라는 날에 즉 거구의 근육질 남성에게 최진실이 폭행을 당한 지 일년 정도 된 시점에, 그 폭행 사건 여파로 피해자로서 광고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황당한 일도 겪고 있던 최진실에게 근거없는 공격을 한 것이 과연 최진실의 사망에 기여한 바가 없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임이 입증된 자를 향해 그렇게 공격을 할 만큼 한가했으면 가해자를 더 가열차게 비난하는 게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바이고 피해자 최진실이 사망할 확률을 낮추는 행위였다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최진실이 성격 차이로 이혼을 했어도 최진실을 향한 공격이 부당할 판에 도대체 피해자로서 이혼한 최진실에 대해 무슨 근거로 배국남은 그리도 당당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볼 바이다. 최진실이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했는데 어찌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이 바보라서 제3자가 공격해도 될만한 행동을 하고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했겠느냐를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은 스타 산업이라는 거시적 사안에 관심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최소한의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정형돈의 경우도 정형돈 본인이 연예 활동 중단이든 뭐든 알아서 잘 판단하여 행동한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발생한 여론 조작이, 폭행 사건이, 폭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상이 되는 일이 과연 사생활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이걸 처리하는 행동이 '사생활 퍼포먼스'라고 네이밍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국남은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배국남 본인이 교통사고를 당해 그걸 처리하는 일이 '사생활 퍼포먼스'라는 뜻인지 본인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에 이토록 허술한 배국남이 최진실이 배병수 살해 교사범이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최진실이 안재환 살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과 관련해서 최진실을 어떻게 보았을지 짐작할 수 있는 바이고 최진실 본인도 배국남류의 정신 세계에 대해 염려되는 바가 없었을지 생각해볼만한 바이다. 유책배우자도 아닌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자기 멋대로 여김에 의해 유책배우자 어머니를 둔 게 아닌 최환희와 최준희는 졸지에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된 것이 배국남이 선사한 현실이었는데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를 최진실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배국남을 대중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도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누가 보면 최환희와 최준희 양육비도 배국남이 대고 있는 줄 알 듯이 그들의 삶을 매우 걱정하는 것이 배국남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살아있을 때에는 근거없이 용감하게 최진실을 죽이는 길을 가더니 최진실이 사망하자 왜 최환희와 최준희의 수호천사인 양 구는 것인지 배국남의 그 저의를 생각해봐야 하는 바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기간에 이혼을 원했건 이혼을 원하지 않았건 위법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이혼을 원했으면 공개된 이혼 사유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이혼을 원하지 않았으면 더더욱 위법을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최진실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최진실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의 확증이다. 더구나 최진실에 대해 최진실의 배우자는 덫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무리수를 두면 바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최진실이 위법행위 현장 검증차 찾은 주차장에 대해 언급한 것도 위법행위 당사자였던 최진실의 배우자였고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흘려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는 행태를 보인 것도 최진실의 배우자였다. 최진실이 그 주차장에 간 것이나 최진실이 작성한 이혼합의서 내용이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최진실의 배우자는 그런 문제될 것 없는 사안을 떠들고 다니며 최진실이 자기가 거주하는 건물 주차장에 나타나서 기분나빴다고, 이혼합의서 내용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중에게 최진실 혼내주라고 징징대었던 것이고 이걸 그대로 받아적어 기사화한 기자들도 이 자의 어리광에 동참했던 것이며 이 자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최진실 나빠'를 외쳤던 대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명예훼손 당한 최진실이 언론 대응에 나서면 배국남류는 최진실이 '사생활 퍼포먼스'를 하고 앉았다고 손가락질하였던 바이다. 드러난 사실들 중에 최진실이 배국남으로부터 그렇게 당당하게 공격을 당할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배국남류는 그런 객관적 근거가 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했던 것이다. 2005년 기사에서 배국남은 또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과 연기의 진부함에 고개를 돌린 상당수 대중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 색인하고 있는 상태였다"라고 서술했는데, 이는 2008년 9월에도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라고 규정하며 비난했던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배국남은 그런 대중들을 긍정하며 '대중들은 최진실을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했다'라고 얼마든지 서술할 수 있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대중으로부터 악덕 사채업자로 규정된 최진실은 엄청난 고통을 토로하다가 여론 조작 행태에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자결했다. 배국남 등의 이러한 '최진실을 죽이기 위한 거대한 팀플레이'에 의해 결국 2008년 10월 최진실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봐도 무방했다. 백승연 등은 그 인격 살인 행각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역할을 하였다고해도 무방했다. 이 중 조성민, 백은영, 하은정 이 세 명의 팀플레이는 단연 돋보였다. 이 셋의 행태는 '최진실 사망'이라는 '골인'에서 훌륭한 어시스트 역할을 하였던 셈이다.
2002년 12월에 조성민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동거하는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은 조성민 본인의 행동에 의해 입증되었다. 조성민의 말대로 자신의 선배 집에서 머물렀다면 최진실은 조성민에 의해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는 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게임의 룰'이기 때문이다. 강일홍은 2016년 10월 24일 채널A < 풍문으로 들었쇼>에 출연하여 같은 건물에 조성민의 선배가 살았던 것이 맞았다고 말하며 논점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며 최진실이 2002년 12월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처럼 여론조작을 했다. 그 선배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규명된 바 없다. 같은 건물에 '선배'가 아니라 '부모'가 살았어도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동거하는 정조 의무 위반 행위는 가능하다. 조성민의 아버지 조주형은 조성민을 비호하고 최진실을 치기 위해 여론조작을 한 바 있다. 선배라는 '모호한 관계'의 인물을 섭외하는 것, 그 선배라는 인물이 조성민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절차조차 밟지 못하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모든 상황의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소모킹 건'에 해당하는 행동을 조성민이 본인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일홍은 '조성민의 스피커'가 되어 '죽은 최진실 바보 만들기 작업' 내지 '여론조작'을 했다. 같은 방송에서 하은정은 2004년 8월 1일 조성민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조성민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유포하며 강일홍과 더불어 '조성민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하은정은 '조성민이 2004년 8월 1일 그 야심한 밤에 최환희의 생일 선물 문제를 의논하러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방송에 나와 그대로 유포하고 있나?'는 물음이 가능한 행태를 이 방송에서 보여주었다. 이 날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얼굴만 잠깐 보고 간다며 최진실을 설득하여 최진실 자택 진입에 성공했었다. 즉 하은정은 가해자 조성민의 일방적 주장을 열심히 유포했다. 이 방송에서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김대오도 출연자로서 같이 앉아 있었는데, 조성민의 귀가가 늦어 최진실이 조성민이 머물고 있었던 건물의 주차장에 간 것처럼 말하는 다른 출연자의 말에 김대오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5일 본인 사무실(C&C컴퍼니)에서 기거하겠다고 하며 가출을 했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조성민의 귀가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논리상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2002년 12월 17일 새벽에 이 사무실을 찾았을 때 조성민은 거기에 없었고 실상 조성민은 이 사무실 옆 건물에 있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의 집에 기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 12월 5일에 가출했다는 사실이 허위라면 이 또한 최진실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기 때문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게임의 룰'이다. 최진실은 2002년 12월 18일부터 2004년 9월 1일까지 자신이 조성민으로부터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언론을 통해 한 말들이 모두 진실임을 입증했다. 이러한 입증 노력은 '죽은 최진실'이 '살아있는 강일홍, 하은정, 김대오'에게 더 이상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조작하지 말라고 말하는 셈이기도 했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2004년12월 16일 기사에서 서병기는 피해자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피해자는 어떤 자리에서건 눈물을 흘릴 수 있는데, "소송을 당한 최진실의 심경이 괴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자회견을 겸한 브리핑장에서 시종 눈물을 흘려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라고 서술하며 그것을 문제삼는 비상식적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최진실은 폭행의 피해자였는데 그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아 광고주가 광고 모델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러서 그것을 인권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맡았고 자신을 돕기 위해 연대한 25명의 변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진실이 눈물을 흘린 것을 서병기는 아니꼬워했던 셈이었다. 서병기는 "이 사안은 광고모델과 회사와의 문제이지 결코 반여성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녀의 남편이었던 조성민이 CF를 찍어 이혼후 그 광고주로부터 피소당했다면 반남성적인 소송인가?"라고 서술하며 조성민이 폭력범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도 보였는데, 상식적으로 가해자 조성민이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문제삼는 인권변호사는 없고 광고 모델이 위법행위의 가해자이면 피소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은 최진실도 아는 사실이었다. 대중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분노한 것이고 최진실의 자택에 강도가 들어 최진실이 폭행을 당했고 다양한 이유로 그 범죄 현장을 공개한 것이면 감히 광고주 <신한>이 최진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상식에 입각해서 반여성적이라는 것인데, 진선미민변여성복지위원장과 신혜수유엔 여성 차별 철폐 위원회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성운동계에서도 <신한>의 행태를 비난하고 최진실의 행동을 높이 평가한 사안에 대해 서병기는 젠더폭력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드러내며 최진실과 최진실을 돕는 인권변호사들을 향해 비아냥대며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고 가해자 조성민의 공범으로 역할을 하였다. 서병기는 이 글에서 최진실의 기부 여부를 지적하며 최진실에 대한 대중의 마녀사냥을 유도하였는데, 일단 기부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었고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불합리함과 싸우는 최진실을 비방하기 위해 논점 일탈적으로 그 이야기를 굳이 가져와 최진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람도 많다. 서병기는 "최진실은 10년 이상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방송과 CF, 영화 등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대중스타로서 그의 이미지는 검소를 몸소 실천하는 ’짠순이’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만 ’짠순이’였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돕는 데도 인색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았다. 최진실이 가정적으로 불행스런 상황에 빠져도 대중들이 동정하는 데 인색한 것은 그녀의 인색한 평소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도 서술하였는데, 서병기는 최진실이 예순 살에 혹은 일흔 살에 전 재산 대학 기부를 할 계획이었다면 어쩔 것이냐는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고 여론 조작으로 노년기도 못맞고 중년기에 사망한 최진실 무덤 앞에서 서병기는 이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서병기는 최진실의 인격을 공격함으로써 최진실의 의미있는 행동을 폄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게 서병기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상황 속에서 최진실과의 이혼 후에도, 최진실 사망 후에도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 조성민은 여론 조작을 이어갔다.
2008년 10월에 8세의 최환희와 6세의 최준희는 발달 단계상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최진실을 향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여러 위법을 저지른 조성민과 그 당시 공범으로 역할을 했던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그러한 과거의 행실로 인해 기본적으로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조성민 부부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저지른 팀이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성민은 2008년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하여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즉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의 권리를 언론을 통해 침해했다. 양육친이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라 조성민은 비양육친이면서 아동의 면접교섭권을 침해하였고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조성민 부부의 부정적 실체는 최환희와 최준희가 또래집단 내에서 공격을 당할 요인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 부부의 실체가 최환희와 최준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에 대해 염려하였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이다. 혈족 조성민은 과거의 행실로 인해 본인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채, 2005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그들의 인척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개과천선은커녕 추가적으로 아동의 복리에 반하는 행동을 또다시 저질렀었다. 더구나 2008년 10월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2004년 8월에 저지른 폭력 행위로 인해 광고주로부터 소송을 당해 상고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최진실 사망 후 최환희와 최준희가 그 소송의 피고가 되었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의거해서 2010년 2월에 최환희와 최준희는 광고주 <신한>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했다. 이는 조성민의 폭력 행위가 없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은 과거 조성민이 저지른 여론 조작의 부정적 영향 속에 여전히 있었고 추가적으로 2008년 9월에 저질러진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즉 최환희와 최준희 입장에서는 2008년 10월 2일에 자신들의 어머니가 여론 조작의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본인들 삶 또한 그런 여론 조작의 피해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 최환희와 최준희를 향해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렇게 최환희와 최준희를 공격한 행동이 실제로는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최진실 사망 후에 조성민이 보인 행동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해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법조계 또한 나서서 친권자동부활금지라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최진실은 모성애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성민은 그것을 최진실의 약한 고리로 삼아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짓을 함으로써 최진실을 분노 상태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허위사실유포 또한 최진실의 약한 고리였는데 조성민은 그것 또한 잘 활용하며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에게 타격을 주곤 하였다.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한 행동도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는데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자신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 또한 쌍방과실이라고 하며 자신의 과오를 물타기하였던 것이다. 2004년 8월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보러왔다는 말로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했고 그후 최진실에 대한 폭행을 저질렀다.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사건을 언급하며 그 사건으로 인해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불편하게 여겨 피해자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채무자가 채권자를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 채무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비슷한 논리였다. 즉 가해자인 자기에게 불편감을 불러일으킨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이 최환희와 최준희를 상대로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2008년 11월 20일MBC 100분 토론 396회 <친권! 천륜인가 아닌가>에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가 편지를 써서 아들의 안위를 살피던 사실을 언급하며 편지를 쓰는 일도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방법임을 말한 바 있다. 즉 조성민은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만나는 게 불편하면 사기를 칠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를 해서 빚을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가해자 조성민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남 일 말하듯이'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 행동을 희석시켰고 더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이다. 한편 시인 김갑수는 2014년 9월 30일 TV조선 <대찬인생> 85회에서 이 말장난과 비슷한 논리의 말을 발화함으로써 조성민의 말장난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자리에 기자 김대오도 있었지만, 김대오는 피해자 최환희와 최준희의 양육친 최진실의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면서도 김갑수의 그 발화에 대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진 중에는 누구보다 이혼유책주의와 면접교섭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변호사 박지훈도 있었지만 그 발화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진행자 안선영도 '이혼 소송' 운운 하며 왜곡된 사실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서도 박지훈은 수정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은 자신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후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합의서를 전달하며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으며, 밟으라는 합의이혼 절차는 안밟고 위법을 저지르고 다니는 조성민에게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대응하며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을 뿐이다. 최진실을 향해 선제 공격에 나섰던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최진실을 두고 유책배우자라고 말하고 다녔을 뿐 정작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였고, 이후 최진실로부터 전달받은 이혼합의서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준수하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이 이혼합의서를 언론에 공개하며 최진실을 비방하고 다녔을 뿐이며, 이에 대해 최진실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을 뿐 이후에도 조성민은 소송이혼 절차는 밟지 못하고 있다가 또 최진실을 대상으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은 최진실에게 제압되며 해당 사안이 마무리되었다. 즉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한 바는 있으나 '이혼 소송'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혼 청구 소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임을 입증해야 가능한 일이고, 더구나 이혼 청구를 했다고해서 끝이 아니라 법정에서 상대방에 의해 논파당하면 패소한다. 김대오는 이 방송에서 최진영에 대해서도 문제적 행태를 보이는데 배우 고소영 관련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유포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최진영이 폭행범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사안은 피해자로 지칭된 자든, 가해자로 지칭된 자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거나 언급한 바 없는 것으로 제3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말을 만들어냈을 뿐이었다.(최진영은 10대 시절 어머니 정옥숙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시절에도 그것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머니의 일을 도울 정도로 심지가 굳은 인물이었다. 반면에 최진실은 정옥숙이 포장마차 리어커를 끌고 최진영이 그것을 뒤에서 미는 모습을 발견하면 그 모습이 부끄러워 피했다고 하며 두고두고 그랬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최진영이 최진실이 사회적으로 곤란해질 일을 최진실이 보는 앞에서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냥 최진영과 고소영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고 그것을 전해들은 기자들이 부풀려서 말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영은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기도 하다. 무슨 의도로 김대오가 이 건을 방송에 나와 언급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를 통해 김대오가 최진실과 최진영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예는 다음과 같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399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1&no=2140635) 이 사안을 앞에 배치하고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겪은 폭행 사건은 뒤에 배치함으로써 이 방송은 마치 두 사건이 대등한 것처럼 대중이 인식케 했다. 즉 검증되지 않아 제3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닌 것과 인권변호사 수십 명이 나서서 공론화한 검증된 사건을 마치 대등한 폭행 사건인 양 방송으로 나란히 내보냈던 것이다. 김대오는 또 마치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등이 가족이기주의자들인 양 대중이 인식하도록 워딩을 하며 피해자인 그들이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이미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다른 출연자들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인 양 대중이 여기도록 말을 한 것과 어우러져 '최진실, 최진영, 정옥숙 가족이기주의자들 만들기'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방송은 마지막 부분에 최진실이 2004년 8월에 조성민으로부터 폭행당한 사진을 내보냈는데, 이에 앞서 상당 부분을 조성민이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을 시기 최진실 관련 행적으로 할애했다. 이는 방송사의 기이한 행동으로, 이 폭행 사건 등으로 과거의 조성민의 행적은 모두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폭행범 조성민의 악질성에 물타기를 할 속셈이 아니라면 이를 다룰 이유가 없었다.(A와 B가 친구관계를 맺어오다가 B가 A를 살해했는데 방송에서 A의 삶을 다루면서 A가 B의 실체를 모르던 시절 B와 친하게 지내던 것을 장황하게 언급하면서 A와 B의 부모들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반대했다느니 할 필요없는 이야기로 B의 살인행위를 물타기하고 A와 B가 어깨동무한 사진까지 굳이 방송으로 내보낸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굳이 다룸으로써 최진실을 조롱하고 싶은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던 바였다.(최진실에게 조성민이라는 존재는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 실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단 생전 최진실의 연애 상대가 한둘일 리가 없고, 조성민과의 법적인 혼인상태 4년 중 후반기 2년은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처리하느라 최진실이 골머리를 썩던 시기였다. 이미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상태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면서 최진실에 대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추가적으로 이혼사유를 발생시켰고, 그 이후에도 또 이혼사유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인 것이 조성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굳이 조성민을 다루고 싶으면 이 자가 최진실에게 저지른 악행을 건조하게 짚고 넘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최진실에게 일생일대의 과업은 여론조작 제압이었고 계속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여론조작을 목도하면서 최진실은 살아서 이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죽어서 해결코자 하였던 바, 자신의 얼굴 걸고 이름 걸고 직업 걸고 최진실을 향해 여론조작을 저지른 조성민은 최진실이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방송 녹화 자리에는 피해자 최진실을 공격하며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섰던 자, 대놓고 가해자 조성민의 입 노릇했던 자들이 출연자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모여 최진실의 삶을 논하고 있었으니 방송 내용이 그러했던 것이고 가히 세상이 거꾸로 가는 행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최진실의 인생에서 소거된 인물인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이 평생 직업적 동료였던 최진영의 것보다 더 많은 듯 편집이 되었던 바였다. 폭행범 조성민은 마지막까지(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의 자녀들을 향해 돌을 던지며 최진실의 분노를 산 자인데 해당 방송사는 최진실을 주제로 한 방송 분에 폭행범 조성민의 분량을 선을 넘어 집어넣으며 백은영을 출연자로 선택한 의도를 보여주었다. 백은영은 폭행범 조성민이 최진실의 자녀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도와준 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10월호 여성조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서는 백은영과 백현주 앙상블도 관전포인트인데 이들은 가해자 조성민의 말을 그대로 유포하며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하는 행태를 보였다. 생전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의 여론조작으로 힘든 시간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즉 백은영과 백현주는 이 방송에서 죽은 조성민을 대신하여 조성민의 입 노릇을 했던 바였다. 백은영과 백현주는 시공을 초월하여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조성민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피해자 행세를 하며 했던 말들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도 못밟는 걸 통해 허위임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은영과 백현주는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이 살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여론조작의 메커니즘이었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입증을 해도 입증이 안되었다고치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행태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마녀가 아닌데 마녀라고 치고 누군가를 죽였던 중세의 마녀사냥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세의 마녀는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게라도 되었지만 최진실은 죽어서도 백은영이나 백현주에 의해 마녀로 규정되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행태를 보이고서도 이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백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최준희의 자택을 찾아가고 최준희를 인터뷰하고 최준희가 폭행범 조성민을 닮았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 멘트로 했다. 최진실이 최준희를 잉태했을 때 조성민이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도 백은영류가 이토록 당당하게 폭행범 조성민과 협력관계를 유지한 것은 믿는 구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행태였다. 이런 백은영의 행태를 최준희가 성인이 된 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할지는 두고볼 일인 바였다. 최진실은 살아서는 백은영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던 바, 이는 1 더하기 1이 2라고 아는 사람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우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언론이라는 무기로 그렇게 우기면 대책이 없는 바였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 인간의 삶을 열린 계에서 닫힌 계로 전환시켜주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틀거리를 마련해주고 거기다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의 교차 검증이나 퍼즐맞추기 그리고 집적이 가능해져 '진실'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바였다. 최진실에 대한 근거없는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조성민은 최진실의 사망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하고 신이 나서 살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망한 것은 최진실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닫힌 계를 설정함에 인과응보 메커니즘이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이 메커니즘에서 백은영류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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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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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가 총살당하러 가면서 그걸 숨어서 보고 있던 아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데 이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볼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모는 세상이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볼지라도 자식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지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담았던 것이다. 최진실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혼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폄훼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한계상황 속에서 자식들이 어머니인 자기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하였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전용철이 최진실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를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매체에 실었다.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5일과 광고주 신한의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을 향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재판 직후인 2009년 10월 6일이 그 날이다. 이 두 기사는 최진영의 숨통을 죌 수 있는 일에 해당되었다. 왜냐하면 최진실은 생전에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여론조작의 피해를 당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동생으로서 지켜봤을 최진영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최진실과 전용철을 연관시키는 기사를 내놓았다는 것은 여론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에 대한 최진영의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김범석은 그런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할 행동이라고 할 수 있고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에게나 쾌감을 줄 수 있을 뿐 누구에게도 유익함이 없는 행위로 최진실의 유가족만 고통 속에 빠뜨리는 행동이었다. 또 이건 미성년자들인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와 최진실의 딸 최준희도 죽여보겠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나 진배없었다. 기자로서 전용철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생전에 어떤 여론조작의 피해를 입었는지 알만한 입장에서 또 다른 여론조작으로 기어이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또 전용철을 언급하는 기사를 쓴 것은 최진영을 죽여보겠다는 행위나 진배없었고 실제로 최진영은 두 번째 기사가 나온 그 다음해 3월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12월에 과거 전용철이 저지른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최진실의 숨통을 죄었던 조성민과, 김범석은 이런 식으로 서로 협력관계에 놓인 사이임을 보여주었다. 2009년 6월의 상고재판은 가해자 조성민의 폭력행위에 기인한 재판이었기에 최진영은 객관적으로 엄청난 분노의 감정 속에 있었을 상황이었다. 이는 보통의 대중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범석은 그런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세상이 계속 최진실이 교사범인 양 여기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 하여금 가정폭력 피해자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는 것을 막는 일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바였다. 더구나 2009년 8월에는 최진실 유골 도난 사건도 발생했었다. 요약을 하자면 최환희와 최준희는 김범석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들이 자신들의 어머니 사망 직후와 삼촌의 사망 직전 발생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8년 10월 15일 기사가 작성된 때는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이 최환희와 최준희의 재산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며 사기행위 피해자 최진영을 분노케 한 상황이었다. 이 때 김범석은 사기행위 가해자 조성민에게 힘이 되는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물론 김범석은 최진실 생전에도 최진실의 숨통을 죄는 입장에 섰었다. 더불어 김범석은 2008년 11월호 신동아에 원정까지 가면서 최진실을 조롱하는 일에 열정을 보였다. 이 또한 최진영의 등에 칼을 꽂는 일에 해당되었다. 신동아도 타 매체 기자의 기사를 실어주고 더 나아가 표지에 제목을 크게 실어줄 만큼 김범석과 좋은 팀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김범석이 신동아에 실은 기사의 표지 제목대로라면 최진실이 조성민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은 줄 알겠으나 실정은 전혀 달랐으니 최진실은 2002년 12월부터 이미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자리를 깔아 준 입장이었고 이에 조성민이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고 다닌 것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최진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 것은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은 1998년 12월에 조성민의 실체를 알았다면 이후 조성민이 아무리 '자살쇼'를 하며 자신에게 들러붙었어도 동정심을 갖지도 않았고 상종도 하지 않았을 가치관을 가졌음을 드러낸 바 있는 인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조성민의 위법성을 인내심을 갖고 문제삼았을 뿐이었는데 김범석은 법적인 측면은 무시한 채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최진실은 자신의 인생에서 조성민을 소거하는 절차를 차분히 밟고 있었는데 김범석은 그러고 살았던 것이다. 누구의 인생에서건 조성민 같은 인물이 알아서 떨어져나가주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그런 인물이 자식들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가주면 좋다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즉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은 자신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을 대중을 앞에 두고 입증해 보였다. 신동아를 통해 김범석은 술집 마담의 최진실에 대한 여론 조작을 도우며 자신의 정체성이 술집 마담의 손발임을 널리 알렸다. 김범석의 이런 행태는 최진영이 우습고 정옥숙이 우습고 최환희가 우습고 최준희가 우습고 대중이 우습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또 동아일보의 황호택의 노림수와도 통하는 것이었다. 황호택처럼 김범석도 조성민을 비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최진실의 자택은 빌라(고급 공동 주택)로 내부 크기는 100평에 가깝고 거실 구조는 높이를 달리하는 형태라 계단이 존재했다. 최진실의 자택은 방송으로 공개된 적이 많고 이에 거실의 계단은 2개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정도의 낙차로 거실의 구역이 크게 나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였다. 2002년 11월 6일 발생한 폭행 사건은 그 계단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2002년 12월 18일 이후 시점 기사에서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최진실이 마치 스무 계단을 구른 것처럼 서술을 하였기 때문이다. 임신부 최진실은 실상 폭행범으로부터 거실에서 밀침을 당하면서 이 거실 계단으로 낙하하여 스무 번 정도 거실에서 구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밀고 넘어지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 결과였다. 폭행 시점 최진실은 키 164cm, 몸무게 45kg에 임신 7개월의 몸이었고, 폭행범은 키 194cm, 몸무게 101kg에 직업이 투수였다. 실상은 그러한데 흥분한 기자가 그걸 짜깁기하여 최진실이 스무 개 정도의 계단에서 구른 것처럼 멋대로 퍼즐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혹은 최진실을 허위사실유포자로 만들기 위해 기자가 일부러 그런 왜곡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했다. 통상 '계단'이라고 하면 스무 개 정도를 연상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행'이라는 정보가 더해짐에 피해자가 계단 옆에서 폭행을 당하면서 스무 계단을 스무 바퀴 굴러 떨어졌다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바였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최진실을 대상으로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지르기도 하였는데 그 공범자는 자신이 최진실의 자택을 가본 적이 있다고 하며 그 집에는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바였다. 이 자의 말하는 바가 최진실의 집에 계단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든 스무 번을 구를 만큼의 낙차를 가진 계단이 없다는 뜻이었든 최진실의 집에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낙차가 낮아도 스무 번을 반복해서 굴리면 그 계단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고 평지에서도 스무 번 구르는 것은 가능하다. 군인들이 평지에서 구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거구의 운동선수 출신이 일반인 임신부를 상대로 밀쳐 넘어뜨리고 그 사람이 일어서려고 하면 다시 밀쳐 넘어뜨려 스무 번 거실에서 구르게 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한 바였다. 임신부 최진실이 거실에서 스무 번을 구른 상황을 종합하면 거실 계단 옆에서 폭행범의 밀침에 의해 임신부 최진실이 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그 구름이 시작되어 이후 일어서려는 임신부 최진실을 대상으로 반복된 폭행범의 밀침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이 사안의 수위였다. 즉 사법기관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자리에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스무 번 굴렀다'는 최진실의 말에는 문제가 없다. 이 언론 대응의 핵심은 폭행의 수위가 가해자가 말하고 다닌 것과 다르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실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짚었던 데에는 폭행범의 사실 왜곡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공범자는 최진실의 이 말을 '스무 번 구를 계단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왜곡함으로써 여론조작을 하며 본질을 흐렸던 것이다. 통상 기자들은 기사 작성시 실수로든, 고의로든 허위 정보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를 자신의 기사에 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허위 정보로 피해를 본 유명인이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또 다른 기사 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 대한민국 연예 언론에는 비일비재하였다. 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린 최진실은 늘 이런 류의 기자들의 먹잇감이었다. 또 최진실 본인이 스무 번 구르는 폭력을 겪은 것을 스무 계단을 굴렀다고 말하는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사실 왜곡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왜냐하면 임신부가 스무 번 구른 것도 폭력의 수위가 결코 낮지 않아 그 수위를 더 높여 거짓말을 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폭행범은 이 폭행 사건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지만 다른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여론조작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진실이 굳이 허위사실을 말하여 그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에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이 가동되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Archived 2016년 10월 1일 - 웨이백 머신하면서 한 마디라도 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소송이혼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기자나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자신의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였다. 하지만 혐오세력들은 이 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폭행범의 악질성에 주목하기보다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며 폭행범의 여론조작 행태를 제압한 최진실을 공격하기 바빴다. 혐오세력들의 이런 행태는 폭행범 등이 왜 여론조작을 구사했는지를 말해 주었다. 이렇게 최진실을 향한 여론조작은 무조건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진실을 향해 이러한 설계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가해자는 이 폭행 사건에 대해 쌍방 폭행이라고도 말하고 다녔기 때문에 혐오세력들에게 최진실은 허위사실유포자이자 폭행범이었다. 또 최진실의 이 언론 대응의 전제를 무시한 측면에서는 그들에게 최진실은 이혼 생중계자이자 사생활 폭로자이자 명예훼손 행위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즉 이들은 모든 것을 피해자 최진실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이것이 최진실을 향한 마녀사냥의 실체였다. 폭행범 등은 이 사건에 대해서만 여론조작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 폭행범은 최진실이 과거에 겪은 여론조작 피해도 끌어와서 그 가해자들 편에 서서 최진실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혐오세력들은 폭행범 커플과 한 패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최진실을 공격하였고 그것은 최진실 사망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 지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새로운 여론조작이 가동됨에 최진실은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이토록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썼던 이 폭행범은 최진실 사망 후 최진실의 죽음에 기뻐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최진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재산관리권을 행사하려는 탐욕을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그런 세상을 원망하면서 몇 년 후 죽었다. 2016년 기준으로 이 혐오세력들은 안티최진실카페라는 본진이 폐쇄되고 혐오세력 대표주자였던 이 폭행범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흩어져서 그 여론조작 행태를 이어갔고 미성년자인 자식들을 두고 자결한 것을 두고 최진실을 공격하는 것을 그 작업에 추가시켰다. 이것은 최진실 관련 방송이나 기사, 그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을 관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하면 목격할 수 있는 바였다. 혐오세력이 아니라면 최진실의 자결에 그토록 적개심을 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생전 최진실에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최진실이 죽든 말든 여전히 관심이 없을 것이고, 최진실에게 호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 죽음에 슬퍼할 것이고, 최진실에게 악의를 가졌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진실을 물어뜯을 거리를 찾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혐오세력들이 미성년 운운 하며 최진실을 공격하는 순간에도 최진실 자녀들이 먹고 자고 배우는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진실이 번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진실은 생사를 넘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식들을 양육했던 것이다.
2008년 11월 25일 기사를 통해 김범석은 연예인이 헌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인 양 글을 썼는데, 연예인 최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 양 가해자의 말을 유포하였다. 김범석은 이 글에서 4년 후의 일을 "기자가 최진실을 다시 만난 건 2년 후 병원이었다"라고 하거나, 이미 2002년 10월 조성민은 일본 구단에서 퇴단하여 일본 생활을 정리한 상태였고 조성민의 가출로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은 조성민과 같이 살지도 않았으며 2004년 8월 병원에서 이루어진 최진실 인터뷰 기사 어디에도 일본 운운은 없었는데 2004년 8월에 발생한 조성민의 두 번째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진실을 만났다는 김범석은 "일본에서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은 최진실은..."이라고 서술하거나 합의이혼으로 이혼했는데 "법정 공방 끝에 양육권을 갖게 된 최진실은..."이라고 하면서 허위의 사실을 글에 심어두었다. 또 김범석은 <‘최진실 사단’으로 불리는 이영자와 엄정화, 이소라, 홍진경 등에게 위로를 받으며 거의 매일 폭음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에 취한 최진실은 전 남편의 애인으로 거론된 마담 S를 찾아가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쳐놓았냐”고 따지기도 했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S가 일하는 유흥업소에선 영업방해를 이유로 최진실의 출입을 입구에서 막는 진풍경도 벌어졌다>라는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당시 기자와 만난 S는 최진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보도하는 일부 매스컴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언론계에도 ‘최진실 사단이 있고, 그들의 편향적인 보도 때문에 적잖게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이 이혼 소송 중일 때 새벽 여섯시쯤 어김없이 최진실씨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밝히며 “그 전화가 내겐 끔찍한 모닝콜이었다”고 했다. 최진실은 술에 취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버릇이 있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하고 배터리를 빼놓은 뒤 나중에 전원을 켜면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을 정도로 전화에 집착증세를 보였다. S의 얘기다. “최씨는 술에 취한 날이면 내게 전화를 걸어 신세한탄을 했고 저주에 가까운 원망을 수없이 반복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위를 넘는 폭언에는 화가 치밀어 몰래 녹음해두기도 했다.” S는 최진실의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단둘이 캔맥주를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건장한 남자 동생 두세 명을 데려가 최진실이 눈치 못 채도록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최진실은 이혼 파동으로 드라마와 영화, 광고에서 모두 버림받아 힘들다고 털어놓은 뒤 조성민에 대한 연민,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야 하는 고충을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S는 “내게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넋두리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게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최진실이 S에게 화를 내고 위로를 구했던 건 어쩌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믿었던 방송, 광고 관계자들에 대한 배신감 혹은 자괴감을 투사했던 것인지 모른다>라고 서술하며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고 그 이야기에 근거해 최진실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이 서술에서 S는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로서 심 씨라고 알려져 있었고 정조의 의무 위반과 관련하여 조성민의 공동불법행위자였는데, 가해자 심 씨는 2002년 12월에 조성민과 함께 언론을 통해 최진실을 납치 가해자로 지칭하였고 이는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뜻으로 조성민에 의해 검증될 사안이었지만 조성민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과 심 씨가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고 이에 김범석이 서술한 심 씨의 말 또한 여론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이 말에 따르면 최진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인데 연예인으로서 스토커로부터 고통받은 바 있던 최진실을 두고 이런 대범한 거짓말을 한 것은 심 씨라는 인물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납치될 뻔한 경험도 있던 최진실이 심 씨 자신을 납치했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더더욱 심 씨의 노림수를 짐작하게 했다. 최진실 또한 비망록(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일부 소개)을 통해 심 씨의 이러한 이상한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졌음을 표현하였는데, 조성민과 심 씨가 무엇을 얻기 위해 자신을 모함하며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또 심 씨가 운운 했다고 한 '이혼 소송'은 있지도 않았는데, 2002년 12월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소송 서류 접수 하면 되는 순간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비방했을 뿐이고 2004년 8월까지도 이혼 소송을 못제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이혼청구권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다닌 것이 허위임을 입증했을 따름이었다. 김범석의 기사에 따르면 심 씨는 있지도 않았던 이혼 소송이라는 부정확한 용어를 썼던 것이고 이는 이혼청구권이 없던 조성민의 실체를 은폐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피해자 최진실은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었고 그 권리를 누렸을 뿐이며 그들을 상대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최진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누렸으며 특정 장소에서 위법을 저질렀는지는 입증된 바 없었다. 언론을 통한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의 피해자 행세는 대중에게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로 인식시키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런 수작이 이혼유책주의에 의해 실시간으로 검증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행태였다. 김범석은 <최진실은 조성민이 제빵사업을 하면서 만나게 된 유흥업소 마담 S와 단순한 동업자 이상의 관계였다고 폭로했다. 이에 맞서 조성민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으며, 두 사람은 2년간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됐다>이라고 서술하였는데, 2002년 12월 유흥업소 마담과 연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며 자신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은 조성민 본인이었고 이에 최진실은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했던 것이다. 애초에 최진실은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어 조성민이 정조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다니며 명예훼손 행위를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 12월 18일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은 못밟고 기자들을 불러놓고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인 양 말하고 다닌 조성민의 비상식적 행동에 의해서도 최진실이 유책배우자가 아님이 입증되었으며, 이후 2004년까지도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여론 조작 행위자임을 입증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이혼유책주의는 작동하고 있었고 최진실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조성민의 실체를 규명하는 동시에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최진실과 조성민은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 최진실은 다른 위법행위 피해자들처럼 가해자 조성민의 각종 위법행위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했던 것이고, 이혼에 대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고 하거나 합의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이에 조성민은 밟으라는 소송이혼 절차는 안밟고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열거나, 최진실이 건넨 이혼합의서(플랜B)를 받아들여 합의이혼 절차를 밟거나 그 합의서 내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으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데 그 이혼합의서를 기자에게 유포하며 최진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저지르며 어영부영 지내다가, 2004년 8월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러 왔다고 말하며 최진실의 자택 진입에 성공하여 최진실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며 자충수를 두었고 이로써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최진실에 의해 제압되었을 따름이었다. 즉 최진실은 자신과 이혼하기를 원하고 자신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하며 다니는 조성민의 행태에 대해 조성민이 그것에 대해 법적으로 입증할 기회를 주었고 자신이 유책배우자임이 법적으로 입증이 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인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저질렀을 뿐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입증하지 못하였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완전히 제압하고나서 이혼을 하였던 것이다. 조성민은 2002년 12월 이혼이 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비상식적인 기자회견을 연 이래 하라는 이혼은 못하고 2004년 8월까지 3년에 걸쳐 최진실을 대상으로 추가적으로 위법을 저지르는 엽기성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최진실과 더 얽히는 행태여서 최진실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을 기겁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즉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2002년 12월에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이혼 절차를 밟아 남남이 되는 길을 가면 되었는데 그 길을 가지는 못하고 최진실을 대상으로 위법을 추가적으로 저지르며 여론 조작과 노이즈 마케팅에 열중했을 따름이어서 험난한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남남이 되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성민의 주장대로라면 조성민은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것만 입증하면 쉽게 남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조성민은 입으로는 이혼을 원한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김범석은 <당시 기자는 “폭행당한 사람은 오히려 나”라며 서울 삼성동 모 병원에 입원해 있던 조성민을 단독으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최진실씨의 주장처럼 운동선수인 나한테 진짜 맞았다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사망 직전 상태가 됐을 것”이라며 “내 와이셔츠를 손으로 찢고 할퀴려고 달려드는 여자를 밀쳐낸 것 뿐”이라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주위의 친한 기자를 통해 교묘히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라며 최진실의 모든 주장을 부인했다>라며 2004년 8월에 발생한 폭행 사건의 진위가 모두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규명이 되지 않은 것처럼 최진실의 사망 직후인 2008년 11월 25일에 가해자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와 서술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선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가정법원에 갈 시간에 끊임없이 기자를 상대하며 '언론플레이'한 장본인인 조성민이 그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언론플레이' 운운 하며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조성민의 논리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람은 최소한 사망은 해야 폭행을 당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궤변이었다. 또 김범석은 <한 경찰관은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고통 때문에 상당히 괴로워했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뭐가 급해 그렇게 세상을 빨리 등졌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라고 서술하며 사자에 대한 예의 개념이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서술도 하였다. 이 서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톱 자국'이다. 이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죽는 순간의 최진실을 떠올리게 되는 바이다. 이에 이런 언급은 상당히 선정적인 행태일 수 있다. 이 서술에서 경찰은 그 손톱 자국을 통해 최진실의 죽기 직전 고통을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죽기 직전 최진실의 마음이 바뀌어 살고자 목에 감긴 것을 풀려고 애쓰다가 생긴 상처일 것으로 생각할 확률이 높다. 즉 독자 입장에서 최진실은 '죽기 싫은데 엉겁결에 죽은 사람'이 된다. 이에 경찰의 말을 빌려 김범석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통상 그런 손톱 자국은 타살Archived 2017년 8월 6일 - 웨이백 머신의 흔적으로 의심되는 요소로, 과학수사상 엄밀성이 요구되는 사안인데 이 서술에서의 경찰은 그냥 '목에 손톱 파인 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일 뿐이다. 부검을 통해 사인이 규명된 최진실의 경우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있는 바였다. 그 손톱 자국은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정옥숙의 손톱 자국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추정에 의거해 김범석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 저의가 더 선명해질 수 있는 바였다.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정옥숙'이냐, '김범석'이냐에 따라 최진실을 향한 몸짓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평소 최진실을 사랑한 '정옥숙'은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고,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던 김범석은 죽은 최진실을 그냥 담담하게 쳐다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옥숙은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손이 말을 안들어 계속 최진실의 목에 상처를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 입장에서는 경찰이 언급했다는 그 손톱 자국이 당연히 최진실의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손톱 자국이 좋은 기사 거리가 될 것이라고 머리 회전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경찰이 그 손톱 자국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김범석의 단독 전언으로, 그 내용 또한 경찰 개인의 인상 비평 수준의 것이지 표피 검사나 유전자 검사 등을 토대로 한 객관적 언설은 아니었다. 김범석이 감히 그 손톱 자국을 자신의 기사에 언급한 것은 최진실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한 바였다. 김범석이 사망한 최진실을 처음 발견했다면 어떤 몸짓을 취했을지를 말해주는 행태였던 것이다. 김범석은 사망한 최진실의 목에 감긴 것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독자 입장에서 그 손톱 자국은 최진실의 것이고 그게 최진실이 '살고 싶은데 사는 데 실패한' 근거로 인식될 수 있음에, 김범석 입장에서는 독자의 그런 인식 가능성이 본인의 쾌감 중추에 이익되는 바가 있을 수 있는 것이, 평소 최진실을 죽이기 위해 애쓴 당사자로서 최진실이 '죽고 싶지 않은데 죽은 것'이 되어야 하지, '죽고 싶어서 죽은 것'이 되면 죽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살인자 입장에서는 '죽고 싶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죽기 싫어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쾌감이 더 큰 것과 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김범석의 이런저런 행실로 볼 때 따옴표로 처리한 경찰의 그 말이라는 것도 정말 경찰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바이고 그냥 김범석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렇게 지어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바였다. 무엇보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죽은 최진실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최진실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기자라면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뛰어들어 사망한 사람의 몸 상태를 언급하며 죽는 순간의 사망자의 고통을 굳이 기사에 담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망자를 모욕하고 싶은 기자는 그런 서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석의 이 서술 덕에 최진실의 죽은 몸은 술 자리 안주거리가 되었을 수 있다. 설사 그 손톱 자국이 최진실의 것이라고해도 그게 '살고 싶은데'의 근거라고 딱히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은 수면 중에 신고 있던 양말도 벗고 모기에 물리면 피가 나도록 긁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가 나도록 긁어도 아픈 줄도 모르고 자는 게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오면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수면 상태의 인간의 입장과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 의식은 없어도 감각신경이나 운동신경은 활동을 할 수 있다. 목이 조여오면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면서 의식부터 흐려지게 되어 있다. 그런 와중에 손을 들어 목에 자국이 나도록 힘을 가할 수 있었을지도 의심스러운 바이고 설사 그럴 힘이 있었다고쳐도 그냥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살아있는 탓에 이루어진 행위일 수 있는 바였다. 더불어 김범석은 <부검이 끝난 후 한 수사관은 "고인의 체중이 31kg이었는데 죽기 얼마 전 지방 흡입 수술을 해 복부 지방이 거의 제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루 세 시간씩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며 다이어트를 해왔으면서도, 새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무리하게 체중 감량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한 결과 31kg이 아니라 45kg이었다. 해당 수사관이 잘못 말하는 바람에 언론도 오보를 낸 것이다>라고 서술하며 사적인 진료기록에 해당하는 '지방 흡입' 운운하는 인용문을 담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자신의 수준을 드러내었다. 즉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를 언급하며 최진실을 모욕 주고 싶은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김범석의 정신적 상황을 고려하건대 그런 말을 한 '한 수사관'이 실존인물이기나 한지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되는 바였다. 김범석은 이 글을 "최진실의 자살은 많은 이에게 둘러싸여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쇼윈도의 마네킹 같은 연예인의 고단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이었다"라고 서술하며 마무리하는데,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을 두고 '쇼윈도의 마네킹' 운운 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였다. 요약을 하자면 연예인의 고단함과 한국 연예계의 쓸쓸한 자화상 운운 한 김범석은 이 글을 통해 최진실과 관련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며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우롱하였고 이에 김범석 본인이 피해자 최진실을 인권도 없는 '쇼윈도의 마네킹' 정도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김범석 같은 사람들은 최진실과 관련하여 검증된 사실은 무시하고 확인된 바 없는 이야기는 선택·강조·유포하며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비호하고 피해자 최진실은 비하하였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가해자 조성민과 심 씨는 양비론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서 빠져나감은 물론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반사이익도 누렸다.
우먼센스 2008년 10월호 하은정의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하은정>: '알고 보면' 그는 호감형인 사람이다. 기자는 4년 전 이혼 공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을 때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운동선수답게 순수하던 모습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덧붙여 말하면, 참 잘생기기도 했었다. 당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인물값 한번 혹독하게 치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언론은 그를 많이도 괴롭혔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와 결혼, 긴 이혼 공방 그리고 사업 실패. 그의 집 앞엔 늘 기자들이 대기 중이었고 그의 부모님 휴대폰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는 "(언론에) 뒤통수만 뻥뻥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런 그가 다시 언론과 마주했다.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하다./ <하은정>: 4년 전 인터뷰 때 참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성민>: 그 때는 아마 그랬을 거예요. 어려운 일을 겪으니까 성격이 많이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보다시피 까칠해요.(웃음) 의리있고 순수하다는 소리를 꽤 듣고 살았는데, 그렇게 산들 이득이 되는 건 많지 않더라고요./ <하은정>: 아내는 어떤 스타일인가. <조성민>: (전략前略)저희를 연결해준 건 언론이에요. 힘든 일을 같이 겪으면서 정이 들었고, 믿음이 생기고 사랑이 싹텄어요. 그때 제 편은 아무도 없었어요. 다 손가락질만 했어요. 저를 믿어준 유일한 사람, 그 사람이 아내였어요./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확실히 빵보다는 야구 쪽이 어울린다(그는 한때 슈크림빵 체인 사업을 했다). <조성민>: 하하. 사실 이혼 공방만 아니었으면 슈크림빵 사업은 잘될 사업이었어요. 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니까요. 어릴 때부터 사업가가 되고 싶었어요. 경영학과(고려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아내도 저와 비슷해요. 압구정동을 비롯해 의류매장을 네 개나 운영했을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아요. 밤새 둘이 얘기하면 호텔을 몇 채나 지어요.(웃음) 아내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지인들이 많아 그쪽 사업을 구상 중이에요. 지금은 용돈 벌이정도만 하고 있어요. <하은정>: 그는 잘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 아내, 그리고 최진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에게도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그는 갈 길이 멀다며, 꼭 성공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하은정Archived 2016년 10월 27일 - 웨이백 머신>: 아이들과 안 만나나? <조성민>: 안 봐요.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성까지 엄마 성으로 바뀌었고, 또 지금 내 옆에서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어느 정도 커서 만나게 됐을 때 멋진 아빠이고 싶어요. 생일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때 되면 많이 보고 싶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훗날을 기약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이에요.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먼발치에서 봤어요. 생각보다 많이 안 컸네, 그랬죠. 달려가서 와락 안고 싶었는데 외할머니가 옆에 있어서 먼발치에서 보고만 왔어요./ <하은정>: 환희는 유독 아빠를 많이 닮았다. <조성민>: 커가면서 조금씩 외가 쪽을 닮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제 붕어빵이죠. 잘 커줬음 좋겠어요. 가끔 애들이 보고 싶을 때 인터넷을 뒤적거려요. 옛날 사진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기운 빠져 있을 때 아내는 일부러 인터넷에서 애들 사진을 찾아 보여줘요. 안 보는 척하면서 슬쩍 보죠. 그런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죠./ <하은정>: 아이들 성이 바뀌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조성민>: 한마디 상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 당황했어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참 많이 힘들었어요. 뭘 해도 의욕이 안 생겼으니까요. 더 이상은 이것보다 아픈 일이 없겠지, 하고 마음을 잡았어요./ <하은정>: 2세 계획은 없나. <조성민>: 아내가 많이 원해요. 있으면 좋겠죠. 근데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생기면 감사하죠.
김선주는 성폭력을 저지른 적도 없고 성매수를 한 적도 없으며 혼인 기간에 정조의 의무도 위반한 적 없는데다가 성 중독 진단도 받은 바 없는 최진실을 두고 마치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서술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최진실이 마치 성욕을 마음껏 못누려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세상을 등진 어머니인 양 억측을 내놓았다. 이는 최진실에 대한 모욕으로, 여론 조작의 피해자로서 그 고통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을 염려해 세상을 떠난 최진실의 객관적 상황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사람은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버스를 타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다.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먹다가 짜장면 그릇에서 구더기를 발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짜장면을 먹는 것에 대해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서 짜장면을 먹지 않게 되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던 것이다.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은 상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에 불편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런 맥락에서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하지 않아 급기야 이로 인해 우울해진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진실은 성애로써 맺은 인간관계 상대로부터 위법의 피해를 입었을 때 이런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피해자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직접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성애로써 남자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현명한 선택을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못맺어 정신병이 걸린 사람으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근거로 삼는 김선주 같은 성애에 미친 사람들로 인해 최진실은 생전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남자와 커피만 마셔도 연애한다고 떠들며 기사를 쓰는 것이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었고 최진실 또한 그로 인한 불편함을 자전 에세이 등을 통해 설명한 바 있었다. 김선주는 최진실이 연애를 즐겼어도 같은 해석을 하며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김선주는 그렇게 젠더폭력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남자를 놓지 못하고 연애를 한다고 최진실을 성애에 미친 여자로 말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선주의 올가미에 의거해서 최진실은 어떤 경우에도 성애에 미친 여자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최진실에 대해 해석하는 근거가 결국 최진실의 말이기 때문에 김선주의 노림수는 최진실의 침묵인 셈이다. 하지만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이혼을 했어도 김선주는 그렇게 위법의 피해를 겪고도 합당한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 사리분별력을 잃은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궤변은 여자의 거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마음대로 해석하는 남자들의 그것과 맥이 닿아 있다. 최진실은 성애에 의거해서 남자와 엮이는 일에 흥미가 없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선주는 자기 멋대로 최진실이 성애에 미친 여자인 양 해석하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택시를 타면 되고 짜장면을 먹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은 냉면을 먹으면 되고 성애로써 남자와 엮이는 것과 관련해서 불편감이 있는 사람도 성욕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자위행위를 하면 된다. 남성도 자위행위를 하지만 여성도 자위행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를 한다. 남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살고 여성들도 자위행위로 성욕을 해결하며 산다. 성애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등으로 분류가 되고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당사자의 자유의 영역이다. 김선주는 이런 지적 맥락을 무시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몰았다. 최진실이 남성이었다면 김선주는 이런 류의 글을 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명예남성(honorary male) 김선주는 남성의 자위는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성의 자위는 금기시되고 남성의 성매수는 흔하지만 여성의 성매수는 금기시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 성욕 해결에 차질이 생겨 우울해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김선주는 애인이나 남편이 없는 여성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편견을 전제로 글을 쓴 것이다. 김선주의 논리에 따르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행위인 자위행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애인이나 남편이 없으면 성욕이 해결 안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이에 성욕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 하다가 어린 자식 두 명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한심한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다. 결국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자위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은 여성의 삶을 이런 식으로 모욕하고 폄훼하려는 의도라고봐도 무방하다. 이는 흡연이라는 기호품 향유 행위와 관련하여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는 금기시하는 트릭을 가동하여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메커니즘과 통하는 바이다. 성매수는 돈 몇 푼이면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가 가능한 행태이다. 성애로써 맺는 인간관계는 일단 호의관계이다. 그런데 이를 상거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결혼식 하객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행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통상 결혼식 하객은 호의관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매수는 위법행위이다. 이렇게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남성들은 성애로써 인간관계를 맺는 일을 돈을 지불하면서 추구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매수는 성욕의 문제라기보다 권력욕의 문제라는 뜻이 된다. 즉 성매수는 권력욕의 발현이어야 말이 된다. 강간도 권력욕의 발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그리고 남성은 손만 있어도 해결되는 성욕이, 자위가 금기시되는 존재인 여성은 연인이나 남편이 없이는 그것이 해결이 안되어 우울해지고 급기야 어린 자식 둘을 두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 김선주의 논리였고 이는 성욕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진 대한민국 사회를 반영하는 바였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임신부를 폭행하는 일은 문명 국가에서는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가해자 조성민은 임신부 최진실을 폭행했고 그 폭행 사실을 본인이 직접 떠들고 다녔으며 그 폭행의 원인을 피해자 최진실의 탓이라고까지 했다. 즉 조성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설사 그 여자가 자기 자식의 어머니여도 그 여자를 대상으로 온갖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더 나아가 그걸 떠들고 다녀도 사회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남자는 성애로써 여자와 인간관계를 맺을 경우 아무런 심리적 마지노선 없이 그 여자를 대상으로 위법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것이 용인되는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이런 곳에서 여성이 성애로써 남성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김선주는 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투사에 의거해서 글을 써서 최진실을 무뇌아로 전락시켰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
최강민에 따르면 아동 인권, 연예인 인권, 여성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최진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최진실은 그저 '버리짐의 트라우마'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특정 남자에 미친 여자였을 따름이었다. 최강민의 이러한 사고체계는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몰았던 가해자 조성민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이 원한 바대로 잘 처신해 주었다. 최강민은 가해자와 같은 편에 서서 글을 써내려갔다. 또 최강민은 그저 성적으로 문란했던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연상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설명을 늘어놓으며 피해자 최진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에 그렇게 편안함을 추구한 가해자 조성민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최진실은 졸지에 남의 편안함을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최강민의 이런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에서 연하의 여자와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고 이후 그 여자와 재혼을 했다면 배우자 선택에 있어 자신이 분석을 해보니 가해자 조성민은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여자 모두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는 논리였다. 왜 이런 결론을 굳이 도출하고 있는지가 최강민의 포지션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물론 최강민은 가해자 조성민과 한 편에 서있기 때문에 이때는 연하의 여자에게 편안함을 느껴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두둔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자식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맺은 인간관계에 대해 편안함 운운 하는 최강민의 정신 세계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최진실을 다루는 글에 이런 상관없는 서술을 한 것도 지적되어야 할 지점이지만 이것이 위법을 교묘하게 물타기하는 맥락으로 역할하기 때문에 최강민의 노림수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정조 의무 위반 가해자를 갑에 포지셔닝하는 교활한 술수였다. 연상의 이성과 혼인을 하여 정조 의무를 잘 준수했던 혼인자가 성격 차이로 그 혼인에 대해 이혼을 하며 비혼자로 복귀를 하였다가 다른 연상의 이성과 재혼을 한 경우에나 겨우 갖다댈 수 있는 이야기를 위법행위자에게 적용한 것은 최강민의 의도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성민은 5살 연상의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서는 폭력을 비롯해서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었고 3살 연상의 두 번째 배우자는 조성민이 첫 번째 혼인 상태일 때 정조 의무 위반을 저질렀던 대상이자 첫 번째 배우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닐 때 공범이었는데 여기서 조성민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며 조성민이 연상의 여성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 최강민의 정신 세계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최강민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런 사고 메커니즘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최진실을 '버려짐의 트라우마' 소유자로 규정한 최강민의 프레이밍을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해 볼 수 있다. 최강민 본인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와 위법을 저지르고 자식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배우자인 임신부를 폭행한 것과 그 임신부를 2년 후에 또 폭행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두고 정조 의무를 위반한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를 모함하고 다닌 것, 조성민이 유명인이자 임신부인 배우자와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닌 것에 대해 정신병리적 해석을 내놓아야 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한 피해자 최진실만 정신병리적 해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임신부 최진실이 임신 8개월 시점에 이혼하고 싶다고 떠들고 다녔거나 정조 의무를 위반하고 다녔다면 최강민은 역시나 '버려짐의 트라우마'를 거론하며 최진실의 정신병리성을 문제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최강민의 이런 처신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취급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미치광이가 되었던 중세 말기의 세계사적 상황을 연상시키는 행태였다. 또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을 두고 '버려짐의 트라우마' 운운 하는 평가를 한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애썼던 인권운동가 전태일도 '버려짐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안될 이유가 없었다. 최강민의 논리대로라면 전태일도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 친구를 만들거나 변호사를 찾아가 함께 행동을 했으면 되었는데 세상의 외면으로 인한 '버리짐의 트라우마'를 겪다가 분신한 것이 된다. 최강민은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버려짐'이라는 용어를 쓰며 피해자의 능동적 문제의식을 수동적인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처리하는 기득권 사회의 전형적인 행태였고 젠더폭력Archived 2016년 6월 10일 - 웨이백 머신에서 가해자의 편을 드는 남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또한 1973년 5월 성폭행 피해자에게 성폭행 가해자와 결혼하라고 한 대구 고등법원 형사부 판사들과 유사한 정신 세계를 가졌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최강민은 폭행 가해자와 폭행 피해자의 결혼이 해피엔딩인 양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전개시키며 폭행 피해자 최진실의 삶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동아일보기자황호택은 최진실로부터 직접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진실 사망 직후인 2008년 10월 10일 최진실을 마치 광인(狂人)인 양 해석하는 칼럼을 썼다. 황호택은 이 칼럼에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모함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해석했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최진실에게 재결합 운운 했었고 이에 최진실은 재결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바 있는데도 최진실이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글을 최진실 사망 후에 썼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진실은 '단지 한때 부부란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상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너무나 부담되고 싫다.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이는 2008년 12월호 잡지 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해자 조성민이 피해자 최진실에게 저지른 갖은 위법이 은폐되는 효과를 낳았다. 젠더권력을 획득한 가해자 혹은그 가해자 편에 선 자들의 발언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빼앗았다. 더구나 가해자 편에 선 존재가 언론이라면 피해자의 목소리는 빼앗기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뜻과 정반대의 것이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 더구나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 기사에서 이혼해서 남남인 조성민의 사진이 거실에 없다는 둥 비상식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는 황호택이 최진실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황호택은 최진실이 아동의 법률행위대리권자로서 아동의 입장에 서서 한 행동에 대해 마치 누군가에 대한 애정 표현인 것처럼 해석을 함으로써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인 양 여기게끔 하여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 이렇게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은 가해자 조성민이었는데, 조성민은 2002년 12월부터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시작했었고, 2004년 8월에도 자신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해서 말하고 다닐 때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의 여자 문제를 거론했었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론 조작을 했으며, 2008년 10월 여성잡지를 통해서도 최환희와 최준희에 대해 면접교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위법적 행위에 대해 자신의 두 번째 배우자에게 미안한 일이어서 그 짓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자신의 애정 행각과 법적인 의무를 엮어서 '위법 문제'를 '남녀 간의 애정 문제'로 프레이밍을 했었다. 황호택은 이러한 조성민의 프레이밍을 충실히 따랐던 셈이었다. 배우자의 정조 의무 위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모든 혼인자의 법적인 권리였고 최진실 또한 그러한 자유와 권리를 누렸던 것이고, 최진실은 이혼과 관련해서는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 밟으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조성민은 같은 행동을 이혼 후에 비혼자로서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혼인자 상태에서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연애 행위를 했던 것이고 그 행위는 위법한 것이라서 피해자 최진실은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이러한 최진실의 행동은 조성민에 대한 애정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의 법적인 권리를 누린 것일 뿐이었다. 또 조성민은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 절차상 법원에 서류 접수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최진실이 의부증 환자라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지도 못했었다. 비양육친이 면접교섭의 의무 불이행으로 아동을 위기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비양육친이 정상인인 경우보다 양육친이 그 아동의 복리에 대해 더 관심을 쏟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최진실 또한 그러했다. 최진실은 이혼 후에도 최환희와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불편감을 가질 수 있는 입장임을 고려하여 혼인 관련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의를 표시하였고, 최환희와 최준희는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들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뉴스 기사 등을 통해 복기를 하게 되어 있고 최진실 또한 언론을 상대함에 있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언행을 하였다. 황호택이 가해자 조성민을 편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칼럼을 쓴 것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일이기도 한 셈이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의 본심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최환희와 최준희의 어머니에 대한 모욕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진실은 2002년부터 자신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고 다니는 조성민을 향해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대응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동의 친권자로서 2살의 최환희와 태아 최준희가 자신의 이혼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일 수 있음을 상정하였기 때문에 최진실은 이혼 숙려 기간을 충분히 가지는 모양새를 취하며 그들의 입장에 성의를 표시하는 행동을 보였을 따름이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황호택이 최진실을 인터뷰했을 때 최진실이 황호택에게 밝힌 바였다. 즉 햇수로 3년 동안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진 것은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한 행동이었었다고 최진실은 밝혔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가해자 조성민이 좋아할 만하게, 가해자 조성민에게 유리하게 여론이 흐르도록, 최진실의 정신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놓으며 가해자 조성민의 편에 서는 모습을 취했다. 황호택이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을 배우자 삼고 싶어 한 사람인 양 집요하리만치 주장한 행태는 가해자 조성민에게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유도하는 행태였는데 이는 강간 가해자가 강간 피해자와 결혼에 합의를 하게 되면 강간 혐의를 벗겨주는 요르단의 사법기관의 행태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황호택은 증권사 직원들의 여론 조작으로 인해 사망한 최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이 칼럼에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여론 조작을 저질렀고 그 흐름을 2008년에도 이어갔던 조성민 편에 서서 글을 쓰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죽은 피해자 최진실을 조롱했던 셈이다.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최진실을 두고 최진실이 여론 조작 행위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굳이 해석하는 칼럼을 쓴 것은 여론 조작의 고통을 토로하며 죽어갔던 최진실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호택은 2005년 인터뷰에서 조성민의 여론 조작임이 검증된 내용에 대해 마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인 것처럼 처신하며 과거 조성민의 비방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피해자 최진실에게 묻는 만행도 저질렀었다. 또 황호택은 같은 칼럼에서 2004년 8월에 발생한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일방적 폭력 행위에 대해 맥락을 배제한 표현인 '육박전'이라는 용어를 쓰며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육탄전' 운운 하는 황호택에게 대중은 "당신이 길을 가다가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것도 육탄전이냐?"라는 반문이 가능한 행태였다. 이 폭력 행위를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닌 것도 가해자 조성민이었고 이에 황호택은 가해자의 입이 되어 글을 쓴 셈이었다. 즉 2008년 10월 10일의 황호택은 특정 범죄사건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주고 피해자의 말도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침소봉대하여 혹은 왜곡하여 해석을 해준 셈이었다. 다른 측면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 황호택의 이러한 행동은 최진실에 대한 조성민의 여론 조작이 어느 정도까지 대한민국 사회에 먹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젠더폭력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도 보여주는 예였다. 이는 대한민국이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황호택은 최진실의 자택을 방문하여 최진실을 인터뷰하며 젠더폭력과 관련하여 최진실이 토로하는 고통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측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황호택이 2005년에 최진실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변호사 강지원을 통해서라고 황호택 본인이 밝혔으면서도 이 사안의 본질은 망각한 채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인권변호사 강지원은 2004년 8월에 조성민이 최진실을 향해 저지른 폭력 행위와 관련하여 광고주가 폭행 피해자인 광고 모델 최진실을 대상으로 소송 제기를 한 사건에 대해 같은 해 12월에 최진실의 편에 서서 변호를 맡은 인물이었다. 최진실은 조성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신체적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3자로부터 소송도 당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사람이라고 글을 쓴 것은 황호택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이라고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이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황호택 또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 했는데, 이는 폭행범이라고 모함당한 피해자 최진실이 자신을 폭행범이라고 말하고 다닌 가해자 조성민과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했다고 한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황호택이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여겼다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은 최진실뿐 아니라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 최진실의 자녀 최환희와 최준희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에 황호택이 굳이 이러한 해석을 한 것은 더욱 더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조성민의 주장은 법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에 허위의 주장인 것이었고 이에 황호택이 조성민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도 가해자 편에 선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는 황호택은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의 여론 조작에 인공호흡기를 대주는 행동을 한 셈이었다. 이 폭력 행위는 최진실이 일방적 피해자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광고주는 피해자 최진실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인권변호사가 최진실을 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황호택은 마치 폭력 행위의 진위가 규명되지 않은 것처럼 2005년 인터뷰 당시 최진실에게 쌍방 폭행 운운 하며 이 폭행 사건에 대해 물었었고 최진실 사망 후에는 같은 맥락으로 글을 써서 죽은 최진실을 부관참시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것이 최진실에 대한 부관참시와 진배없는 행태인 이유는 최진실이 이 범죄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 조성민의 쌍방 폭행 운운하는 여론 조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진실 본인이 여성중앙 2007년 6월호를 통해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면서 자신이 정상인임을 확실히 한 바 있었다. 그런데도 황호택 같은 사람은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며 최진실의 인격 따위는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태를 보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세상과 싸우느라 힘들다는 표현을 비망록에도 남긴 바 있는데, 조성민은 최진실을 의부증 환자로 모는 여론 조작을 하면서 최진실을 미치광이로 몬 주동 인물이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택은 자신을 광인(狂人)으로 몬 남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최진실을 해석하는 글을 굳이 쓴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상식적인 부모 대부분은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식의 동의'라는 절차를 밟거나 자식이 결혼을 한 후에 이혼을 하거나 하면서 자식에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을 지켜주기 위한 모양새를 취하는데, 최진실 또한 그런 맥락의 태도를 취한 것이었고 황호택은 그런 맥락을 충분히 알 만한 위치의 인물이면서도 마치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이 있어서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처럼 해석하며 가해자 조성민을 기분좋게 하는 글을 썼던 셈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애정이 있다는 말을 대중에게 세뇌하고 있는 셈이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피해자를 비하하게 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 강도를 낮추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한 것처럼 대중이 여기게끔 만들 수 있는 행태였고 이는 제3자는 해당 가해자를 비난할 근거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젠더폭력의 피해자는 절대 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절대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언론인 황호택이 보인 이러한 행태는 결국 여성은 사리분별력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남성은 위법을 저질러도 비호받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인 셈이었다.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것도 조성민이 최진실을 대상으로 이혼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진위가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인터뷰 당시 황호택은 조성민이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한 내용을 또 최진실에게 묻는 무례함을 보였었다. 또 최진실이 폭행범이라는 주장은 동기의 측면에서도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 최진실은 당시 두 건의 광고 계약을 맺고 있어서 위법을 저지를 동기가 없었고 2002년부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어서 더욱 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황호택이 최진실을 통해 보여준 이 모든 상황은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가 여론 조작을 통해 노린 바나 다름없었고 황호택은 조성민 부부가 노린 바대로 움직인 셈이었으며 조성민에 대해 최진실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검증된 사실관계를 대중이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하는 셈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최진실 사망 후에도 조성민은 2004년 8월의 폭력 행위에 대해 여론 조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팀을 이뤄 최진실을 가해자로 몰면서도 조성민 부부가 정작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했던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노리고 한 행동이었던 셈이었다. 이를 통해 피해자 최진실은 마치 가해자인 양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공격을 받았었고 황호택의 행동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조성민과 조성민의 두 번째 배우자는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사업파트너 사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경찰서나 법원은 가지 못하고 기자들만 상대하며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만들어가는 팀이었는데, 이러한 노이즈 마케팅은 황호택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일시적으로 성공적이었고 이에 조성민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자신의 배우자의 사업 수완과 연예계 인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은 최진실과 관련한 기사 거리를 던져주며 기자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서 기자들은 조성민의 말을 사실 검증 없이 받아 써주어 최진실은 광인(狂人)이 되었으며, 조성민은 피해자로 포지셔닝하였다. 이렇게 조성민은 거물급 연예인 최진실에 대한 혐오 세력의 대표 주자가 되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혐오 세력의 다른 한 축인 포털 사이트다음의 '안티최진실카페'는 최진실 사망 직전까지도 카페 웹사이트 첫 화면에 조성민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멍든 최진실의 사진을 걸어두고 최진실을 조롱하며 조성민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설계 속에서 2008년 9월 최진실이 악덕 사채업자라는 소문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졌고 이 무렵 조성민은 여성잡지 두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최진실과 관련하여 피해자 행세를 이어갔다. 이 인터뷰에서 조성민은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말도 하였는데 이는 최진실을 향해 또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이에 최진실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성민에게 경고를 보냈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그 경고를 무시한 채 최진실 사망 후 또 최환희와 최준희를 위기에 빠뜨리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배척되었고 그 여파 속에 두 번째 이혼도 하였으며 자살도 하였다. 최환희와 최준희는 어머니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양육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전적이 있던 조성민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면서 이들은 위기에 처했었다. 한편 조성민은 죽기 직전에도 여전히 남 탓을 하며 피해자 행세하는 것을 잊지 않아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황호택 같은 인물들을 믿고 한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조성민 사망 후 대중문화 전문 기자 백현주가 보여준 행동이 좋은 예였다. 또 조성민은 사망 직전 성인 남성과 관련하여 폭행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였는데, 조성민이 이 폭행 사건의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조성민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서 크게 달라질 게 없었던 것이, 조성민은 2002년 12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임신부 폭행범이라고 자백했었고 그러고도 피해자 최진실을 탓하고 모함하며 잘 살았었고, 2004년에 또 최진실을 폭행하였고 그 후에도 최진실의 자녀에 대한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2008년 10월호 여성잡지를 통해 그 법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았었기 때문이다. 한편 조성민의 사망 장소는 지인의 집이었는데, 이 사망 사건 바로 직전 그 집 주인은 자신을 방문한 조성민에게 연인 관계를 종결하자는 말을 했었다고 하고 이후 그 집 주인은 잠시 외출을 하였는데 그 틈에 그 집에서 조성민은 자살을 한 것이었다. 또 조성민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자신의 누나 조성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 이유로 법적인 분쟁을 들었다. 굳이 그런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면 민법상 그 재산은 최환희와 최준희가 물려받도록 되어 있었고 이 두 아동의 재산관리권자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여서 법적인 분쟁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 운운은 궤변일 뿐이었다. 최진실의 사망으로 최환희와 최준희가 최진실의 재산을 물려받자 조성민은 그 재산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보도 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렸었는데, 그 마음대로라면 자신의 재산을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물려주고도 남아야 하나 실상은 자신의 재산이 최환희와 최준희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또 조성민 사망 후에는 조성민의 어머니와 누나가 피해자 최진실을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진 광인(狂人)으로 모는 일에 앞장서서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최진실을 상대로 저지른 조성민의 위법행위를 희석시키며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성민처럼 피해자 행세[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도 하였다. 최진실은 여론 조작으로 사망한 것이고 이에 최진실의 연예계 활동 기간 20년 동안 이 여론 조작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망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러므로 조성민 집안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평가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짚어야 할 것은 조성미가 조성민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는 조성민이 정옥숙과 최진영을 대상으로 사기를 쳐서 챙긴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요약을 하자면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친 기간 동안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든, 안 가졌든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위법을 저지른 바 없고, 가해자 조성민 편에 서서 사고하는 사람들 말대로 피해자 최진실이 가해자 조성민에게 애정을 가지는 광기를 가졌다고쳐도 그것은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으면 되는 사안이었으며, 무엇보다 최진실은 2007년 6월 '폭력적인 사람은 피하게 좋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남겨둠으로써 이런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을 모욕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된 문제에 대해 황호택은 해결이 안된 문제인 양 자기 멋대로 치부한 채 최진실을 광인(狂人)으로 모는 글을 최진실 사망 후 소위 최진실을 추모한다고 쓴 칼럼에서 서술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황호택의 행동은 2005년에 최진실이 왜 황호택에게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라고 굳이 말했었는지를 말해주는 예가 되기도 했다. 황호택은 2008년 10월 10일 칼럼에서 강지원 변호사의 말을 빌려 심리치료 운운 했으나 최진실의 언행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황호택 같은 인물이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한다고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황호택은 '안티최진실카페' 등의 발호에 불편감을 가졌던 최진실이 전문가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강지원이 말했다고 했는데, 상식적으로 최진실도 심리치료가 사안의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에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라고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안티최진실카페'나 황호택 같은 인물의 여론 조작 행태가 최진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해서 사라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호택의 경우는 최진실로부터 직접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기사로 남아있는데도 최진실의 말과 다른 이야기를 유포하는 뻔뻔한 여론조작 행태를 보인 인물이기도 하였고 이에 심리치료는 최진실이 아니라 황호택 같은 인물이 받아야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2008년 10월 10일 황호택의 칼럼에 따르면 여론 조작 피해자 최진실은 황호택에 의해 여론 조작 가해자와 부부관계를 몹시 맺고 싶어한 광인(狂人)으로 규정되었고 여론 조작 행위자 황호택은 여론 조작에 분노한 피해자 최진실을 두고 치료 운운 하는 상황이었던 셈이었다.
유재순은 이 기사에서 "애시당초 최진실은 조성민과 결혼하면 연기 생활을 줄이고 조성민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도록 내조를 하겠다고 언론을 상대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라고 하면서 '떠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최진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셈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3년 동안 최진실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증거가 나온 바 없었는데도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유책배우자인 양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다. 혼인신고의 전제는 상부상조다. 상부상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혼인을 하는 것이다. 이에 기혼 남성이 '외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고 기혼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결혼을 앞둔 여성이 '내조를 잘하겠다'고 굳이 말했으면 그 결혼 상대 남성은 '그렇게 말까지 해주니 고맙다'가 되어야 상식적이다. 그런데 유재순은 그 말을 물고늘어지며 그 여성을 잡는 거리로 그 말을 악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그 여성은 전업주부도 아니고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그 직업세계에서 매우 잘나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사안이었는데 유재순은 어찌된 영문인지 최진실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보였다. 유재순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최진실은 능력으로든, 재력으로든, 인성으로든, 성격으로든, 외모로든, 남자가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최진실의 결혼 또한 조성민이 매달려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998년 12월에 고등학생 때부터 최진실의 팬이었다며 조성민이 최진실에게 들러붙기 전까지는 조성민을 알지도 못했던 것이 최진실이었고, 1999년 2월에 7년 동안 최진실을 짝사랑했다며 성애적 관계를 원한다는 뜻을 최진실에게 표현한 쪽도 조성민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2008년 10월 최진실의 사망 때까지 최진실을 대상으로 여론 조작을 하며 최진실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최진실의 사망 후에도 최진실의 유가족에게 엉겨붙은 것도 조성민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가 이혼한 부모를 둔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해 최진실에게는 그걸 염두에 둔 행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최진실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서 조성민보다 우위의 인물이었는데도 유재순은 '내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운운하며 평등 사상에 위배되는 행태를 보였던 것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조성민의 편에 선 자신의 포지션을 드러낸 것이었다.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조성민이 최진실을 상대로 끊임없이 무리수를 두고 최진실을 고리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은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우위임을 말해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유재순은 마치 운동선수는 배우자로부터 반드시 수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양 서술하였고, 최진실은 당연히 조성민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라는 듯 서술하였다. 유재순은 최진실이 마치 조성민의 수발이라도 들기 위해 결혼한 것처럼 최진실이 한 말을 따오며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최진실의 책임인 양 말하였다. 즉 최진실의 의례적인 성의 표시를 물고늘어지며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조성민이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비혼자일 때도 보였던 바였고, 조성민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될 일이었다. 요약을 하자면 유재순의 이런 비상식적인 행태는 2002년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통해 보인 행태와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성민은 최진실의 배우자가 되는 일을 추진하다가 그게 막히자 자살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성민이 연예인 최진실을 굳이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으로 선택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즉 유재순과 조성민의 행태는 여성은 남편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비상식적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엎고 최진실을 공격한 행태에 불과했다. 즉 조성민은 최진실의 수발을 들기는커녕 최진실의 명예를 훼손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시간에 최진실은 2살의 아들과 태아인 딸을 양육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우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조성민이었고 유재순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피해자 최진실이 아니라 가해자 조성민이었다. 하지만 유재순이나 조성민은 피해자 최진실을 비방하며 양비론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주입시켰다. 유재순은 또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에 조성민이 기자회견을 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혼 소동' 운운 하며 본질을 호도하였는데, 실체적 진실은 '이혼 소동'이 아니라 여론 조작 사건이었다. 애초에 최진실은 조성민으로부터 유책배우자라고 지칭된 상황에서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하며 조성민에게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라고 한 입장이었고, 조성민이 그런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것은 합의이혼이 불발되었다는 반증이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에 가서 소송이혼 절차를 밟으면 되는 시간에 그런 황당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즉 이혼 문제는 소송이혼이라는 답이 나온 상황이었고 조성민은 가정법원을 통해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는 주장을 입증하여 이혼 판결을 받으면 되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조성민은 최진실과 이혼이 하고 싶다고 했고 최진실이 유책배우자라고 주장했는데, 최진실은 2002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조성민의 여론 조작을 제압해 나갔다. 더불어 유재순의 여론 조작도 제압한 셈이었다. 더구나 최진실은 2002년 6월에도 여론 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어 법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었고 2002년 12월의 여론 조작 사건은 그 내용의 심각성이 더 악질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 여론 조작 행위자가 자기 자식들의 생부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진위를 공개적으로 규명해야 할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