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뉴스] 뉴욕 콜럼버스데이 퇴출에 이탈리아계 '뿔났다' 2021.05.21....미국에서 콜럼버스 데이가 찬밥 취급을 받은 지는 꽤 됐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통치하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고문 등 잔혹 행위를 일삼은 사실이 역사적 고증으로 밝혀지면서, 콜럼버스 데이에 반대하는 운동이 미 전역에서 벌어졌다. 최근 몇년 사이 캘리포니아, 하와이, 시카고, 신시내티 등 여러 주(州)와 도시가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바꿨다.
[이데일리] 최근 증가하는 매독, 증상과 치료법은?.....치료법이 없던 중세 르네상스 시기에 매독은 공포의 질환이었다. 당시 매독을 수은으로 치료하면서 수은 중독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거나 매독균이 열에 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말라리아 균을 접종해 치료하기도 했지만 말라리아 균을 이기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데일리] 최근 증가하는 매독, 증상과 치료법은?.....역사적으로 매독에 감염되었다고 알려진 유명 인물로는 헨리 8세, 금주시대의 마피아 알카포네, 화가 툴루즈-로트렉, 음악가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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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일보] 양태자 박사의 5분 중세사, 옛 유럽인들의 목욕문화.....목욕탕은 음탕한 장소로 변모해 갔다....(중략)...당시에 번지기 시작한 매독과 페스트가 여기에 스며들자 사양길로 들어서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목욕 대신 향수나 파우더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귀족이 나쁜 냄새를 향수로 퇴치하다 보니 향수 문화도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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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olamo Benzoni (1572[1565]), Historia del Mondo Nuovo, Venice, pp. 12–3; English translation: History of the New World by Girolamo Benzoni, Hakluyt Society, London, 1857, p. 17.
[ 다국어성경 HolyBible ] 창세기 3장 9~11절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국민일보] 콜럼버스 매독 전파는 사실”… 美연구진 유럽인 유골 분석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일행이 매독을 유럽지역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가설이 연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고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이 27일 보도했다. 미국 에머리대학과 미시시피 주립 대학 연구진은 ‘매독 신대륙 도래설’의 반박 자료로 제시됐던 1492년 이전의 유럽인 유골 50구에 관한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매독 증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형질인류학 연감 최신호에 발표됐다.
[문화일보] 시카고만국박람회 출품 유물....1893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시카고만국박람회는 박람회 역사상 최초로 국가관이 들어섰고 47개국이 참가했다. 또한 조선이 참가한 첫 박람회였으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린 외교의 장(場)이었다.‘고종실록’ 1893년 11월 9일 기사에는 박람회 책임자로 임명된 참의내무부사 정경원(鄭敬源)이 고종(高宗)에게 그 성과를 보고하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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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조약의 세계사> 미래의 창....1493년 3월, 포르투갈의 주앙 2세가 놀라 자빠질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서인도’를 탐험하고 돌아온 것이다...(중략)...그가 발견한 바하마 제도, 쿠바, 히스파니올라(아이티) 등은 위도상 포르투갈이 이미 확보한 카보보자도르의 선보다 아래에 있었다. 따라서 원칙대로라면 그곳들도 포르투갈 땅이 되어야 할 터였으나, 스페인이 그것을 받아들일 턱이 없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America (교양영어사전1, 2012. 10. 22., 강준만)......피렌체 태생의 상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는 1499년 5월 18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 휘하 선장 가운데 한 사람인 알론소 데 오헤다(Alonso de Ojeda)와 함께 신대륙 항해길에 올라 아마존 강 입구에 도달했다. 그는 거기서 다시 브라질 해안을 끼고 세 번의 항해를 더 감행했다. 베스푸치는 『신대륙(Mundus Novus)』이라는 여행일지를 출판했는데, 그의 항해는 콜럼버스의 항해보다 더 유명해졌다. 1507년 독일의 지도 제작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Martin Waldseemller)가 이 새로운 땅을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기념해 America(아메리카)로 표기함으로써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강혁 <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p127~129.....착취당하는 원주민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던 성직자도 있었다. 바스코 데 키로가,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가톨릭'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야만스런 정복행위를 만천하에 고발했다.
강석영 <스페인,포르투칼사> 대한교과서 1988.4.15 p417...마데이라에서는 초기에 염료 수출용 재목인 용혈수가 많이 수출되었고, 밀의 과잉 생산 현상도 나타났다. 15세기 중엽에는 사탕수수 재배가 성행하여 노예의 일손을 필요로 하게 되자, 나중에는 인구의 1/7을 노예가 차지하게 되었다. 15세기 말엽에는 마데이라가 유럽 설탕의 최대 공급지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체사레 보르자 [Cesare Borgi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1494년 나폴리공국의 왕위 임명을 두고 불만을 품은 프랑스 샤를 8세가 로마를 침공하자....(중략).... 프랑스군이 퇴각하자 프랑스 잔류군을 소탕하였고 나폴리 왕 대관식에 대리 참석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방탕한 사생활로 나폴리에서 매독에 걸려 일생동안 고생하게 된다.
[스포츠 경향] 역사서비스 사실은137, 유럽에서 향수가 뜬 이유....루이 14세는 1년에 딱 한번만 목욕을 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정도로 미(美)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루이 14세. 그러나 정작 그의 몸에는 이가 바글거렸고, 그의 얼굴은 언제나 더러웠다. 이런 그가 택한 악취 대비책이 향수였고, 루이 14세의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다른 귀족들도 루이 14세를 좇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수많은 향수들… 알고 보면 이 향수들은 악취를 감추기 위한 일종의 ‘목욕 대체재’ 역할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향수들을 생산해 내는 프랑스는 역으로 말해 세상에서 가장 안 씻고, 더럽게 지냈기에 이런 향수들을 개발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일보] 콜럼버스는 정말 지구 구형설 선구자인가? 2020-01-18....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도 매한가지다. 그는 일반인에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대에 홀로 지구가 둥글다고 믿고 이를 증명하려 한 사람’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지구 구형설을 믿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중세까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극소수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에라토스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사상가는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지리학과 천문학 연구를 발전시켰다. 심지어 14세기 작가 존 맨더빌은 저작 ‘세상 저 편에 있는 성지와 지상낙원을 찾아서’에서 지구는 둥글고, 그래서 배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에 대한 이런 신화는 그의 전기를 쓴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 탓이다. 어빙은 1828년에 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생애와 항해’에서 콜럼버스와 그와 대립하는 성직자들, 학자들 사이에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에 대해 논쟁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지구 구형설의 선구자로 기억하고 있다.
[VOA Korea] 바이든, 콜럼버스 데이에 '원주민의 날' 선포 2021.10.11....바이든 대통령이 콜럼버스 데이를 앞두고 ‘원주민의 날’을 선포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중략)...바이든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는 많은 유럽 탐험가가 토착민과 원주민 공동체에 가한 옳지 못하고 잔혹한 역사를 인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한 국가로서 과거의 부끄러운 사건들을 묻어버리려고 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하고, 사건들에 빛을 비추며, 우리가 그 문제들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위대함의 척도”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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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지구는 ‘작은 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의지가 있나.....매독은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와 함께 인도, 말레이반도 등으로 퍼졌고, 이 지역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중국인에게 옮겨져 1505년경에는 중국에서도 ‘광동창(廣東瘡)’이란 이름으로 유행했다. 이후 1515년 무렵 조선에 유입된 이 병은 창병(瘡病)이란 뜻에서 ‘당창(唐瘡)’또는 ‘광동창’이라 불렀다. 신대륙에서 유입된 매독이 조선에 이르기까지 20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