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sis of information sources in references of the Wikipedia article "한표욱" in Korean language version.
연희전문학교 제二十회 졸업식을 작十四일 오후 二시반 동교에서 성대히 거행하였는데 각과 졸업생 총계 百四명이오 장학상받은 학생은 다음과 같다. 文科 … 韓豹頊... )
UN食糧農業機構 韓國代表韓豹頊氏는 全體會議에서 韓國이 同機構에 加入하게 되는데 對하여 다음과 같이 謝意를 表하였다. 韓國은 本機構에 加入된 것을 名譽로 生覺한다 大韓民國創設에 있어 UN처럼 偉大한 役割을 한 것은 없었다 貴下들이 韓國에 賦與한 名譽는 韓國國民들이 國家建設을 爲하여 目標에 邁進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韓國은 本機構의 成功을 爲하여 熱心히 事業에 協力하겠음을 誓約한다 韓國은 本機構理事 「드리스ㆍ롯르」 將軍의 韓國援助에 感謝하는 바이다 )
梁大使의 不在中 駐美大使代理의 役割을 맡게 된 韓豹욱氏의 이름은 國內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氏는 第二次大戰直前 延專을 卒業하고 渡美한 後 十八年동안을 美洲에 滯留하고 있는 것이다. 氏는 戰前까지 「하버-드」大學大學院에서 主로 外交學을 專攻하였으며 解放後는 大韓民國臨時政府 美外交委員으로 出發하여 民國樹立後엔 一等書記官으로 任命되었고 其後 參事官을 거쳐 公使職에 이른 것이다. 人材의 貧困을 느끼는 우리나라 外交界에서는 첫째 氏가 多年間 外交學을 專攻하였다는 點 둘째 建國以來 가장 오랜 經歷을 가지고 있다는 點 세째 가장 많이 國際會議에서 參席하였다는 點 等으로 높이 評價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氏는 「칼날」같은 性格의 所有者로서 事務에 치밀하며 果斷機敏하여 過般 「韓國에는 言論의 自由가 없다」고 妄言한 IPI 議長 「모-즈」氏의 發言을 卽刻 反駁하는 聲明을 發表한 事實로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咸南北靑出身 美세라큐즈 大學卒業 當 四十三歲 )
비행기 사다리를 내려오자 出口쪽에서 긴치마자락을 날리며 손을 흐드는 이가 있었다. 그쪽을 향해 뛰어가보니 한표욱 공사와 그 부인 최정임 학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