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한글학회 100년사> 2009년 p31....1911년 9월 3일 (일) 하오 2시에서 4시까지, 주시경 선생 댁에서 가진 1911년 총회에서 학회이름을 "배달말글 몯음(朝鮮言文會)"으로 바꾸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경술국치를 당한뒤 "국어"가 일반적으로 일본어를 가르키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립 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년 2월호] 최초로 한글 띄어쓰기, 존 로스 선교사로부터 시작되다...로스는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가 도입된 한국어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 1877)’을 만들었다. 이는 로스가 자신과 같은 선교사나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책으로, 한글 아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기록됐다. 여기에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가 도입된 것은 로스가 사용하던 영어의 띄어쓰기가 자연스레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실록] 세종 26년, 1444년 2월 20일....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이히생략)
김슬옹 교수 [우리문화신문] 세종은 언제부터 훈민정음 창제를 고민했을까?.....책으로 성인의 도를 깨우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사대부 학자로서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이 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용렬한 선비이다.”라고 조금 과격해 보이는 말로 꾸짖었다. 웬만하면 벌을 잘 안 주는 세종의 정치 스타일로 볼 때 크게 화를 냈음이 분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어연구회 [朝鮮語硏究會] (두산백과)...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모음'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3년 3월 23일 '한글모'로 개칭하였다가..(중략)..1927년 3월부터는 기관지 《한글》을 간행하여 한글의 보급과 선전에 힘썼으나..(이하생략)
[네이버 지식백과] 명 [明] (두산백과)....영락제 이후 명은 퇴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정치적으로는 환관이 다시 득세하여 황제는 정사를 돌보지 못했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중략)...관리는 점차 부패하고 토지를 잃은 유민이 속출하여 명나라의 명운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몽골족과 왜구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후기에는 만주족이 세운 후금(後金 : 이후 청나라가 됨)이 명나라를 압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통제 [正統帝] (두산백과)....1449년 동서 몽골통일에 성공한 오이라트(Oirāt)족의 족장 에센[也先]이 쳐들어옴에 따라, 왕진의 권고에 따라 친히 이를 맞아 싸웠으나 토목보(土木堡) 싸움에서 대패하여 포로가 되었으며, 이 사건을 두고 토목의 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듬해에 석방되었으나 이미 동생 경태제(景泰帝)가 즉위하여 있었으므로, 태상황제로서 남궁(南宮)에 유폐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한글....‘훈민정음’을 줄여 ‘정음’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이름은 훈민정음 해례의 끝에 있는 정인지의 글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언문(諺文)’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는데, 이것은 그 유래가 오래된 말이다. 원래 ‘언’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머 헐버트 [Homer Bezaleel Hulbert] (두산백과)...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에 매료돼 미국 언론과 영문 잡지에 기고를 통해 홍보했으며..(중략)..1896년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당시 주시경과 함께 국문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글을 연구하며 띄어쓰기를 도입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어연구학회 [國語硏究學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창립총회는 1908년 8월 31일 돈의문 밖 봉원사(奉元寺)에서 하기국어강습소 졸업생들과 국어연구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열었다. 이날 김정진(金廷鎭)을 회장으로 뽑고, 사립청년학원(私立靑年學院)에 학회의 위치를 정했다. 주시경의 이력서에 의하여 ‘국문연구회(國文硏究會)’ 혹은 ‘국문연구학회(國文硏究學會)’로 알려져 왔으나, 이규영(李奎榮)이 편찬한 『한글모죽보기』가 발견됨으로써, 이 단체의 정확한 명칭과 연혁이 밝혀졌다.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한글날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한글이라는 이름은 언문, 반절, 가갸글 등으로 불러 오던 훈민정음을 1910년대에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United Nations Homepage] International Literacy Day8 September -- Background....The 8th of September was proclaimed International Literacy Day by UNESCO in 1966 to remi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of the importance of literacy for individuals, communities and societies, and the need for intensified efforts towards more literate societies. The issue of literacy is a key component of the UN'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and the UN's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
unesco.org
en.unesco.org
[UNESCO Homepage] UNESCO International Literacy Prizes....Since 1967, UNESCO International Literacy Prizes have rewarded excellence and innovation in the field of literacy. Over 500 projects and programmes undertaken by government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around the world have been recognized. Through these prestigious Prizes, UNESCO seeks to support effective literacy practices and encourages the promotion of dynamic literate societies. Currently there are two UNESCO International Literacy Prizes: +The 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 (3 awards) : Established in 1989, with the support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It gives special consideration to mother anguage-based literacy development. Each of the three UNESCO King Sejong prizewinners receives a medal, a diploma and US$20.000.